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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 전국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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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처럼… 그의 대기실에도 '컵라면' 3개 (MBC <뉴스데스크>)
故 김용균 씨 '컵라면 유품' 공개… 서부발전, "2인 1조" 뒷북 공문 (KBS <뉴스9>)
유품으로 남은 컵라면… 故 김용균 씨 생전 모습 공개 (SBS <8뉴스>)
어느 하청 노동자의 죽음… 가방 속에는 또 '컵라면' (JTBC <뉴스룸>)


15일 방송 뉴스는 일제히 '컵라면'에 주목했다.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유품은 2년 전 구의역 사고로 숨진 19살 비정규직 김군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이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김씨 부모의 동의를 얻어 공개한 유품은 2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 없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하고 비참한 노동 환경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다. 사고현장을 함께 조사했다는 한상진 민주노총 조직국장이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적은 글 역시 그러한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13일 노동조합과 유가족이 함께 사고현장 조사를 했습니다. 운전원 대기실에서 故 김용균 노동자의 유품을 확보했습니다. 동료들에 따르면 고장난 손전등은 회사가 지급했던 것과 다르다고 했으며, 한 동료에 따르면 김용균 노동자가 헤드랜턴을 쓰고 일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수첩과 슬리퍼 곳곳에도 탄가루가 묻어있습니다.

지시에 따라 수시로 낙탄을 치우는 작업에 투입돼 휴게시간,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라면과 과자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어머니가 '일할 때 우리 아들한테 영상통화하면 매번 탄 치우러 간다고 하는데, 밥은 어떻게 먹냐?'고 물었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원청이 지시 내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낙탄 치우라고 수시로 지시가 내려온다. 언제 지시가 올지 몰라 식사 시간이 없어서 매번 라면 끓여 먹이고 그랬다'(고 답했다)."


스물넷 청년의 환한 얼굴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 전국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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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신입사원인 데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던 김용균씨는 지급받은 모자 랜턴을 이틀 만에 분실했고, 그 뒤 추가 지급 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용 문제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추궁받을 것을 염려했던 것이란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김씨 유품 중 하나인 손전등이 회사에서 지급한 제품과 달랐던 것도, 사망 현장에서 불빛이 환한 휴대폰이 발견됐던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에 필요한 손전등과 건전지는 김씨가 사비로 구입했던 것들이었다.

물티슈와 샤워도구, 면봉 그리고 컵라면 등 김씨의 유품들은 모두 이 24살 비정규직 청년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었다. 지난 14일 YTN 생방송 뉴스에 직접 출연한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역시 24살 아들이 일했던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그 아들이 가졌던 '목표'를 언급하며 비통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로서 너무 미안하고 한스럽습니다. 저희가 이런 곳을 일하는 데라고 보냈고... 진짜 저는 모르는 상태에서 아들은 그냥 괜찮은 일자리라고 이야기하고. 어려운 것도 해봐야 된다고 얘기하고. 저번에 한번 휴일이 2~3일 정도 생겨서 왔는데 왔다 갔다 너무 시간도 걸렸어요.

그래서 자주 오는 것도 잘 못 하고, 와서 힘들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그랬는데 아들은 내가 힘든 것도 참아가고 그리고 원래 한전이 목표이니까 거기서 경력을 쌓아가지고 그래서 자기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김용균 씨의 부모님이 공개한 생전 사진.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김용균 씨의 부모님이 공개한 생전 사진.
ⓒ 전국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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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씨의 희망과 목표는 유족들이 공개한 동영상 속 생전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영상에는 유품 속 컵라면과 함께 비통함과 미안함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꽃다운 청년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 15일 <뉴스데스크>는 김씨의 생전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말끔한 양복을 입은 24살 청년. 새 양복과 넥타이, 구두가 어색한 듯 수줍게 웃고 있는 화면 속의 청년은 고 김용균씨입니다. 지난 9월, 첫 직장 출근을 며칠 앞두고 경북 구미 자택에서 찍은 동영상에는 사회초년생의 해맑은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김씨는 부모님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착한 외아들이었습니다."

이 휴대폰 속 김씨의 생전 영상은 본의 아니게 또 다른 가슴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 당시 침몰 직전 세월호 선실 안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던 단원고 아이들의 모습 말이다.

4년 전,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살고 싶다"거나 부모님이 "보고 싶다",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던 그 아이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아이들이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4년 후인 2018년 첫 직장 출근을 앞둔 스물넷 김용균씨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국사회는 2년 전 구의역 김군에 이어 또 하나의 비정규직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많은 이들이 김용균씨의 죽음을 두고 대한민국이 여전히 세월호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개탄하는 것 역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우리 아들 하나면 되지, 제2, 제3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최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고 김용군씨의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군의 아버지가 눈물을 참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최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고 김용군씨의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군의 아버지가 눈물을 참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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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취업한다고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마지막에 구한 곳이 여기였습니다. 대통령이 일자리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되고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로만입니다. 저는 못 믿습니다. 실천하고 보여주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행동하는 대통령이 되기 바랍니다. 두서없는 말 마치겠습니다."

지난 14일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씨의 부모 김해기·김미숙씨는 입장 발표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결국 '공기업' 한전 입사를 목표로 했던 스물넷 청년은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논리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처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13일 YTN 라디오 <생생경제>에 출연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의 설명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원래 이렇게 매출이 엄청난 공기업이잖아요. 사실은 일반 민간 기업과 달라서 이윤만 추구하거나 주주에게 배당을 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 절감에 목매달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한국전력이었던 것을 이렇게 분할해서 공기업으로 만들었던 역사부터가 어떤 것이냐면, 공기업이 비대하니까 분할해야 하고, 또 일부 민영화한다는 신자유주의적인 논리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조금 작게 만들고, 시장이라는 큰 시장에 가급적이면 맡긴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겠지만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이윤논리 때문에, 비용 효율 논리 때문에요. 너무나 많은 참사가 발생한 역사가 있는데, 우리 한국도 그것을 그대로 답습했던 거죠. 그래서 서부발전이 발전회사로 이렇게 쪼개져있는데, 그 발전회사 안에서 또 위험한 업무나 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업무는 최소 입찰로 하도급을 주는 겁니다."


16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역시 김용균씨 사망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국회는 법·제도적 보완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최근 주요 사고와 노동재해의 공통적 특징으로 '사내하청'과 '청년'을 꼽았다. 최근 몇 년간 노동현장에 일어난 사망 사건의 핵심을 짚은 것이다.
 
11일 숨진 채 발견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생전 사진.
 11일 숨진 채 발견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생전 사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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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생전의 김용균씨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손피켓을 든 채 '인증샷'을 찍었다. 그 사진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스물넷 청년의 절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제(15일) 열린 2차 촛불 추모제 참가자들은 오는 21일 비정규직 철폐 집회와 함께 청와대로의 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아들 하나면 되지. 제2, 제3의 아들 같은 그 아이들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수차례 위와 같이 한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 세월호 세대의 아이들을, 청년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곪을 대로 곪은, 그 위험 신호가 청년들의 죽음으로 나타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생전 문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다는 스물넷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늦었지만 '어른'들이 응답해야 할 때다. 더 늦게 전에,  "제2, 제3의 아들 같은 그 아이들"을 또 다시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기 전에.

태그:#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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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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