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포스터

<마약왕> 포스터 ⓒ (주)쇼박스

 
1970년대 대한민국에 마약이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현실처럼 다가온다. 70년대 당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으며 국민들은 산업 역군이라는 사명을 지니고 근면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강요당했다. 여기에 당시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건 물론 나태함의 길로 이끄는 마약 유통은 의외로 여겨진다. 당시 마약이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에 있다. 첫 번째는 한탕주의, 두 번째는 반일감정이다.
 
<마약왕>은 70년대 마약 유통을 통해 찬란하지만 암울했던 그 시대를 조명한다. 극 중 하급 밀수업자인 이두삼(송강호 분)은 우연찮게 마약 밀수에 가담하다 마약 유통과 제조 사업에 눈을 뜨게 된다. 두삼은 마약 유통의 명분으로 반일감정을 든다. 일본으로 마약을 유통시켜 죄다 중독시켜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애국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돈을 푼다.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바쳐 길을 뚫은 것이다.
 
공직자들의 한탕주의와 이두삼의 반일감정. 이 두 가지는 묘한 일치로 이두삼을 '마약왕'으로 만든다.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공직에 있을 동안 최대한 많이 돈을 벌어먹자는 생각에 뇌물을 받고 그의 뒤를 봐준다. 이두삼은 애국을 빌미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직접 일본까지 향해 마약 유통 시장을 개척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두삼은 이 마약의 브랜드 이름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정한다.
  
물질 만능주의와 한탕주의를 보여주는 <마약왕>
 
 <마약왕> 스틸컷

<마약왕> 스틸컷 ⓒ (주)쇼박스

 
그가 애국을 들먹이는 마약 유통은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부끄러운 행동임에도 버젓이 그 앞에 국가 이름을 단다. 그리고 두삼은 정치권에도 연줄을 맺고 반공, 경제 관련 모임에서 직책을 맡게 된다. 70년대 국가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혜택을 맛본 이들은 소수의 권력층 뿐, 대다수의 국민들은 저임금 장기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두삼은 밀수업을 하지 말라는 부인에게 '다 같이 굶어 죽을 순 없잖아'라고 말한다. 정직하게 돈을 벌어서는 잘 먹고 살지도,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는 시대라는 걸 두삼은 알고 있었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으로 '마약'을 택한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과 연관되어 있다. 마약은 다른 이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 작품에서 마약상들은 절대 마약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마약을 하는 순간 삶은 파탄난다.
 
그 사실을 알고도 마약을 유통한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성공하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70년대 당시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통해 성립되었고 계엄령을 선포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억압했다. 간첩을 조작해 누명을 씌웠고 베트남 파병, 독일 파견 등 국가를 위해 국민들에게 호소했지만 당사자에게 돌아온 혜택은 적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승자가 되는 이 구조는 마약을 통해 '돈'이란 무기를 손에 넣은 두삼을 자신만 아는 괴물로 바꿔버린다.
 
두삼을 노리는 검사 김인구(조정석 분)가 공안 출신이면서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이 일하는 공간 안에 비밀 사무실을 둔 것도 이런 아이러니에 기인한다. 한강의 기적과 전태일 분신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애국을 말하면서 마약사업을 하고 국가를 말하면서 국민을 괴롭히는 그 모순을 영화는 보여준다. 두삼은 한 줄의 대사를 통해 70년대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요약한다.
  
 <마약왕> 스틸컷

<마약왕> 스틸컷 ⓒ (주)쇼박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아니라 정승한테 써야 되는 것이지요."
 
그에게 돈이란 정승처럼 점잖고 품위 있게 쓸 수 있는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위협받지 않기 위한 일종의 도구이다. 밀수업을 하던 시절 그는 붙잡혀 죽을 뻔도 하지만 돈의 힘으로 살아난다. 두삼에게 돈을 버는 일이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다. 피부로 와 닿는 위험 속에서 돈이 있고 입에 애국을 달고 살아야만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는 배우게 된다.
 
영화 <마약왕>은 특정시대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나만 아니면 된다'는 한탕주의가 팽배한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생각을 자신들에게 주입하며 점점 망가져 가는, 이 작품 속 마약중독자와 같은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70년대 마약 유통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보인 이 작품은 시의성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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