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워크숍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낭희섭 대표

독립영화워크숍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낭희섭 대표 ⓒ 독립영화협의회

 
"독립영화 외길 30년" 영화계 인사들은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30년 넘게 변함없이 독립영화 열정을 쏟고 있는 외길 인생을 부르는 말이다. 그 모습 그대로라는 '독립영화워크숍'은 올해 33년을 맞았다.
 
일반 관객들에게 독립영화워크숍은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80년대 초중반에 영화를 시작해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여러 감독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직접 거친 교육 과정이다 보니 영화감독들이나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독립영화워크숍에서의 오래된 기억들이 있다. 대학의 영화과가 몇 안 되던 시절, 영화를 갈망하던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영화를 직접 제작해 볼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작하는 영화는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었다.
 
출발점은 1985년 군사독재의 암흑 시기, 영화운동으로 시작된 '작은영화워크숍'이었다. 80년대 문화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던 '신촌 우리마당'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에 대한 고민은 주로 8mm 단편영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35mm 중심의 상업영화가 아닌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속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려는 운동이었다. 당시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던 영화법 개정을 목표로 한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운동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철권통치 시절이라 공개적인 문제제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워크숍의 형태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자본의 간섭과 검열을 거부하고자 한 독립영화운동의 첫 시작이었던 셈이다. 영화를 사회변혁운동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당시 충무로로 상징되는 제도권 밖의 비주류 한국 영화운동 진영이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에 이뤄낸 성과물이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 영화운동이 이뤄낸 성과
 
 지난 2015년 발간한 책 <독립영화워크숍 그 30년을 말하다>

지난 2015년 발간한 책 <독립영화워크숍 그 30년을 말하다> ⓒ 목선재

 
1985년 1월 시작한 작은영화워크숍은 8mm 워크숍이었고, 기자재가 부족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33명이 온전히 수료를 하는 획기적인 사건을 만들어 낸다. 이때 강의는 고 홍기선 감독이 활동했던 서울영화집단이 담당했고, 낭희섭은 실습조교를 맡게 됐다.
 
작은영화워크숍은 대학영화운동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작은영화워크숍을 거친 대학생들이 학내에서 영화동아리 결성을 주도했고, 당시 제대로 된 영화동아리가 서울대 얄라셩 하나뿐이었던 현실에서 10개 대학에서 동아리가 생겨났다. 대학동아리가 허가제였던 시절이라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대학영화제 개최가 필수적이었는데, 작은영화워크숍이 필름과 영사 기자재를 구해 무상으로 지원한 덕분이었다.

1989년까지 이어져 오던 작은영화워크숍은 이후 1990년 독립영화협의회가 발족하면서 이름도 독립영화워크숍으로 바뀐다. 장소도 신촌 우리마당을 시작으로 대한극장 별관을 거쳐 2010년 서울영상미디어센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독립영화워크숍은 이론보다는 직접 영화를 만들게 했고, 그러면서 현재 한국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감독들이 많이 거쳐갔다. <싱글즈> <원더풀 라디오> <관능의 법칙>을 연출한 권칠인 감독과 <집으로>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대표를 역임한 김형구 촬영감독 영화평론가 변재란 교수 등은 작은영화워크숍 1기 출신이다. <다방의 푸른꿈> 김대현 감독도 이 과정을 거쳐서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한국영화의 대표적 감독이 된 <베테랑> <군함도> 류승완 감독은 1993년 독립영화워크숍을 통해 영화수업을 받았다. 이후 2000년 <다찌마와 리>를 만들었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독립영화로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과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도 독립영화워크숍을 통해 영화를 공부했다. 현재까지 33년간 교육을 수료한 인원만 약 2000명에 달한다.
 
국내외 대학 영화과가 많이 늘어난 가운데서도 독립영화워크숍이 호응을 받은 이유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한 수료자는 "비전공자로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거나 영화에 대한 적성을 능동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공동 제작을 통해 실습 작품을 만들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다 보니 영화제작 과정의 전반을 짧게나마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렴한 수강료도 한몫했다. 영화제 자원봉사 경험자 등에게는 수강료의 절반을 할인해 주는 등 큰 부담 없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쏟을 수 있게 해준다. 예산을 깨끗하게 공개하는 것도 지금껏 큰 잡음 없이 30년 넘게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영화 진입 문턱 낮춘 독립영화워크숍 
 
 독립영화워크숍의 단편영화제작 현장.

독립영화워크숍의 단편영화제작 현장. ⓒ 독립영화협의회

 
지난 보수정권 시절의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영화워크숍을 지원해 독립영화 탄압에 대한 비난 여론을 희석하고자 한 듯하다. 당시 자격 미달자에게 운영을 맡겨 공모심사 부정 논란이 있었던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을 낭희섭 대표에게 직접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영화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는 낭희섭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꼿꼿하게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자신의 진의를 얄팍한 술수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넘어가지 않고 거부한 것이다. 영진위 직원들이 사는 밥 한 끼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낭 대표는 지난 정권 영진위의 제안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영진위가 직영하던 충무로 서울영상미디어센터가 올해 말로 문을 닫고 민간위탁으로 전환을 준비하면서 독립영화워크숍도 존폐 위기를 맞게 됐다. 영상미디어센터를 통해 공간과 기자재를 저렴하게 지원받던 독립영화워크숍 입장에서는 강의 공간과 영상 기자재 확보가 어렵게 된 것이다. 서울영상미디어센터는 2019년 예산 확보가 불발되면서 위탁운영 계획마저 당분간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수강료를 올리면 되지만 영화 만드는 문턱을 낮추겠다는 지금까지의 기조를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낭희섭 대표는 국내 영화인들에게 지금 처한 상황을 솔직히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14일 저녁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워크숍 후원의 밤

14일 저녁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워크숍 후원의 밤 ⓒ 독립영화협의회

 
그래서 33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영화워크숍 '후원의 밤'이 열린다. 오는 12월 1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영상자료원 2관에서 열리는 후원 행사는 독립영화워크숍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연대를 요청하는 자리다.

오래 전 독립영화워크숍을 거친 류승완 감독과 <부산행> 제작자 영화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등이 후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영화운동에 헌신한 활동가를 위해 응원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낭 대표는 이런 행사를 여는 것 자체를 꺼려했으나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낭희섭 대표는 "이번 후원은 독립영화워크숍의 제작기반을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이라며 "그간 비판과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이 지지와 성원이 있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고자 자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영화제작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독립영화워크숍은 이날 후원의 밤을 통해 33년간의 결과물로 한국독립영화역사의 자료이기도 한 필름보존 문제에 대한 고민도 나눌 예정이다.
 
독립영화워크숍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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