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 >과 <공작>, 그리고 <버닝>은 올해 영화상의 대세였다. <미쓰백>의 한지민은 저예산 영화의 저력을 과시했고, <소공녀> 전고운 감독은 주요 영화상을 휩쓸면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올해 국내 영화상의 특징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사극보다는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호평을 받았고, 사회 현실을 다룬 영화들이 선택 받은 것이다.
 
6월 항쟁의 역사를 재현한 < 1987 >은 피 흘리며 이뤄낸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영화적으로 평가받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공작>은 남북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시대적 분위기와 호흡한 것이 호평을 받은 모습이다 <버닝>과 <공작>은 올해 칸영화제 초청작으로 이미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라는 점에서 작품성 평가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만장일치 수상은 신인감독상 <소공녀> 전고운 감독
   
각 영화상이 개봉 시기를 기준으로 후보작품을 선정하기에 선택이 다른 부분도 있었으나 올해 국내 영화상의 신인감독상 선택은 만장일치로 <소공녀> 전고운 감독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박열>의 최희서 배우가 국내 영화상의 신인상을 싹쓸이했다면 올해는 전고운 감독이 대종상에 이어 영평상과 청룡상까지 수상하며 3대 영화상 모두의 선택을 받았다. 앞서 지난 부산영화제 기간 중 열린 부일영화상에서도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전고운 감독은 대종상에서 시니리오상까지 받으며 2관왕이 오르기도 했다.

<소공녀>는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집 대신 자신이 삶에서 꼭 즐기고 싶어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친구와 지인 집을 떠도는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이솜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청년 세대의 겪는 주거 문제와 담배값 인상 문제, 빈부격차 등의 사회현실을 그려냈다. 저예산독립영화로 제작돼 5만 9천 관객을 모았지만 만장일치 선택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컸다.
 
최우수작품상은 < 1987 >이 영평상과 청룡상의 선택을 받으며 우세를 보였다. 지난해 연말에 개봉해 올해 초까지 극장가를 장악하며 한국사회를 뜨겁게 했던 지난 시절이 기억을 소환한 작품이 수상의 영예까지 얻은 것이다. 해외에서도 호평이 잇따르고 있는 <버닝>은 대종상을 차지했고, <공작>은 부일영화상의 선택을 받으며 올해 최우수작품으로 평가됐다.
   
감독상은 <공작>의 윤종빈 감독이 역시 영평상과 청룡상을 차지하며 우위를 차지했다. < 1987 > 장준환 감독은 대종상을, <버닝>은 부일영화상이 차지하면서 최우수작품상 만큼이나 감독상 역시 이들 세 작품이 주로 경합을 벌였다.
 
남우주연상은 <공작>의 이성민 배우가 절대적 우세였다. 이성민은 대종상, 영평상, 부일상을 차지했다. 대종상은 함께 호흡을 맞춘 황정민 배우와의 공동 수상했다. < 1987 >은 김윤식 배우가 청룡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 외에 배우들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어둡고 아픈 사회 모습 강조한 여우주연상 한지민
 
여우주연상은 10월 11일 개봉한 <미쓰백>이 변수가 됐다. 수상 후보에 포함된 영평상과 청룡상은 후보작품 개봉 기준일에 가까스로 걸리며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후보작이 아니었던 대종상은 지난해 여우주연상을 휩쓴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배우에게 마지막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부산영화제 기간 중 열린 부일영화상은 <허스토리> 김희애 배우를 선택했다.
   
여우주연상은 수상자 못지않게 한지민 배우의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영평상에서 눈물을 글썽였던 한지만 배우는 청룡상에서도 눈물을 글썽이며 "영화의 진심이 전달된 것과 우리 사회의 어둡고 아픈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에 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여우조연상은 영화상마다 선택이 모두 달랐다. 수상자가 겹치는 상이 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대종상이 <독전>의 진서연 배우를 선택했다면 영평상은 <미쓰백> 권소현 배우였고, 청룡상은 <신과 함께-죄와 벌> 김향기 배우였다. 부일상은 <허스토리> 김선영 배우가 받았다.
   
남우조연상은 <독전>의 고 김주혁 배우가 대종상과 청룡상을 받아 2관왕이 됐다. 고 김주혁 배우는 개봉 전 유명을 달리해서인지 수상자로 호명될 때마다 김주혁 배우를 그리워하는 동료배우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공작>의 주지훈 배우는 영평상과 부일영화상을 차지했다.

신인여우상은 <마녀> 김다미 배우가 대종상과 청룡상에 부일영화상까지 받으며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영평상은 <박화영> 김가희 배우를 수상자로 선정해 다른 선택을 보였다. 신인남우상은 <안시성> 남주혁의 우세였다. 남주혁은 영평상에 이어 청룡상이 선택을 받았다. 대종상은 <폭력의 씨앗> 이가섭 배우였다.
 
수상 결과를 종합해 보면 기본적으로 대작 흥행 상업영화들이 강세가 일반적인 가운데, 이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예술영화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영평상과 대종상이었다.<미쓰백> 권소연 배우나 <폭력이 씨앗> 이가섭 배우, <박화영> 김가희 배우 등은 흥행 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작품에서의 열연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수상이 돋보였다.
 
권위 없는 대종상, '조선일보 영화상' 한계 청룡상
 
올해 영화상들은 수상 결과의 차이는 있었으나 심사 잡음이 없었다는 점에서 대부분 영화상이 수상자 논란은 생기지 않았다. 영평상과 청룡상은 심사에 외부 관여를 배제하면서 독립적이고 공정한 수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대종상은 한동안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김홍준 감독이 대종상 심사위원장을 받고 정성일 평론가와 김영 프로듀서, 달시 파켓 등 국내 대표적 영화인들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심사 독립성을 확보한 덕분에 특정 작품 몰아주기 시상의 폐해가 사라졌다. 흥행 상업영화가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으나 최근 2년 간은 작품성 있는 독립예술영화들도 수상자로 선정되며 적어도 심사에서 만큼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행사 주체인 영화인총연합회가 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영화인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점은 대리수상 논란과 파행적 운영으로 심사 공정성을 묻히게 만들었다. 10월에 시상식이 열리면서 추석 개봉 영화들은 후보작이 될 수 없었고, 수상자 절반이 나오지 않아 대리수상이 일반화되면서 시상식이 비웃음 거리로 전락했다는 것은 영화상으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영화인총연합회 산하단체 회원들이 참여하는 예심 방식도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행사를 주최하는 영화인총연합회가 발전기금을 받고 대종상 조직위원회에 전권은 넘기는 구조 자체가 영화상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이어서, 전체 영화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영화상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전처럼 문체부나 영화진흥위원회가 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영평상은 영화평론가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잡음이 없는 영화상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TV생중계를 하지 않고 영화인들이 모여 함께 축하해 주는 시상식을 지향하기에 사전에 수상자들이 발표되면서 대리 수상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래전부터 작품성있는 영화들을 선정하고 있어 상의 순도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청룡상은 대종상의 추락과 함께 국내 영화상으로서 신뢰도가 커졌다. 공중파 생중계를 통해 대외적인 위상도 높아진 게 현실이다. 수 년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영화인은 "심사에 <조선일보>든 뭐든 간에 일체의 간섭이 없으며 심사위원들 모두 영화 말고는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면서 '조선일보 영화상'으로 각인된 부분은 청룡상의 한계로 지적된다. 단적으로 올해 칸영화제 출품작인 <버닝>이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 선정을 거부했다는 것은 청룡상의 치명적 약점이자 굴욕이었다. <조선일보>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워낙 많이 제기되고 있다는 상황에서 '조선일보 영화상'으로 가질 수 있는 권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