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과 정우영이 빠진 미드필더진은 불안했다. 전반전 수비와 공격 과정 모두에서 그들의 부재를 실감했다. 하지만 후반전으로 넘어가면서 '플랜 B'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있어 분명한 소득이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17일 (토) 선코프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11월 A매치 평가전 호주와의 맞대결에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전반 22분 황의조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종료를 앞두고 루옹고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최대 화두는 역시 기성용, 정우영이 빠진 수비형 미드필더, 즉 3선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였다. 붙박이 주전 미드필더 기성용이 컨디션 조절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명단에서 제외됐으며, 그의 짝 정우영도 발목 부상으로 끝내 원정길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이들을 대신할 벤투 감독의 선택은 구자철과 황인범이었다. 사실 이 두 선수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는 아니다. 구자철은 보다 공격적으로 올라섰을 때 힘을 발휘하는 선수고, 황인범도 소속팀에서 3선보다 2선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이 두 선수 모두 공을 쉽게 뺏기지 않고, 패스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비슷한 장점이 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후방 빌드업에 힘을 더할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호주의 압박에 빌드업과 수비 모두 고전한 구자철-황인범

하지만 전반 초반부터 이 조합은 삐걱거렸다. 호주의 강한 압박에 빌드업은 물론 수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전반전에만 상대에게 열 차례 이상의 슈팅을 허용했다. 게다가 슈팅을 허용한 위치가 바로 구자철과 황인범이 지킨 3선에 맞물려있었다. 호주는 이날 중거리 슈팅을 아끼지 않았다. 전반 3분 로기치가 첫 슈팅을 기록한데 이어, 수비수 리스던까지 전진하며 슈팅을 시도했다. 구자철과 황인범은 어떻게든 상대 공격수들의 슈팅을 방해해야 했으나, 중원에서 상대 미드필더들을 놓치지 일쑤였다.

황인범과 구자철은 후방에서 공을 전진시키지 못하고 백패스나 횡패스를 반복했다. 이들이 높은 위치에서 힘을 쓰지 못하니 황의조는 쉽게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활로를 찾고자 번갈아 수비수 사이로 내려가서 패스를 시도했다. 실제로 전반 15분 내외부터 황인범은 센터백과 동일한 라인 선상에 서며 수비 안정과 점유율을 높이고자 힘썼다. 하지만 호주의 공격진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방해했고, 부정확한 롱 킥이 반복될 뿐이었다. 황의조가 전반 22분 선제골을 넣은 후 다소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아쉽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빌드업을 풀어간 것은 2선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이었다. 김민재가 롱 킥으로 황의조의 선제골을 도왔고, 그 이후 호주의 뒷공간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비수들은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고 한 번에 공격진에게 연결하는 패스로 공격을 시도했다. 2선의 이청용과 문선민도 위치를 가리지 않고 중앙까지 활동량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자철은 전반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볼 경합과 상관없는 과정에서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구자철, 황인범 조합은 45분 만에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포메이션 변경 이후 새로운 가능성 보여준 중원 조합

구자철의 부상 이후 황의조까지 볼 경합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며 대한민국은 선수 변화가 불가피했다. 벤투 감독은 구자철을 대신해 주세종을, 황의조를 석현준으로 대체하며 4-2-3-1 포메이션에서 4-4-2 포메이션으로 변경했다. 전반전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남태희가 라인을 올리며 석현준과 투톱을 맡았고, 황인범과 주세종이 같은 중앙 미드필더 라인에 서며 다소 공격적으로 올라섰다.

전반전 고전한 중원 조합은 후반전 포메이션 변경 이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황인범이 라인을 올리며 중원의 활기가 돌았다. 기성용이 좌·우로 벌리는 장거리 패스가 강점이라면 황인범은 그보다 짧은 패스로 공격수의 침투에 맞춰 전진 패스를 자주 시도했다. 그는 전반전보다 뛰어난 패스 템포와 정확도로 공격을 지원했다. 동료 선수와 3~4번 짧은 패스를 주고받다 상대가 압박에 들어오면 한 템포 빠르게 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로 공격진에게 여러 차례 위협적인 기회를 공급해줬다.

교체되어 들어온 주세종도 좋은 컨디션이었다. 주세종은 이번 원정을 앞두고 정우영을 대신해서 발탁된 선수였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력은 정우영의 공백을 메꾸기에 적합하다는 평이었다. 구자철의 부상으로 예상치 못한 시점에 투입된 그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황인범의 옆에서 그는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볼 배급으로 공격과 수비의 연결고리를 담당했다. 후반 26분 라이언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득점으로 이어질만한 프리킥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비 시에는 포백 라인 앞에서 한 겹의 수비 라인을 더하며 탄탄한 짜임새를 가져갔다. 

험난한 호주 원정에서 승리를 눈앞에 둔 대한민국은 종료 직전 루옹고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1대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이날 경기의 중원 조합이 기성용과 정우영의 부재에 적절히 대처했다고는 볼 수 없다. 미드필더진 깊숙한 곳에서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볼 배급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보여준 주세종과 황인범의 조합은 기존 4-2-3-1 포메이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원 플랜을 제시해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20일 (화) 우즈벡과 평가전을 펼친다. 호주전에서 기성용, 정우영이 빠진 중원 조합의 명과 암을 함께 확인한 벤투 감독이 어떤 조합을 선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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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대한민국 호주 경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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