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 트리플 픽쳐스

 
나의 시부모님 두 분은 만주에서 만나셨다고 한다.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룬 두 분은 해방과 이어진 전쟁의 격변기에 아이들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오셨다. 시아버님의 형제분은 그곳에 머무르셨고, 시어머님의 동생분들은 고향인 북쪽에 머무르셨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 아버님의 동생분, 시숙부님과 그 식솔들은 '조선족'이 되었고, 시어머님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아마도 시아버님이 내려오시지 않았다면, 남편 일가도 '조선족'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가 품은 '지정학적' 딜레마다. 그 '비극'은 현재로 오면 '편견'과 '사회적 문제'로 귀결된다.

그 역사와 현실의 행간에 대해 재중 동포인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페이소스' 짙은 이야기를 건넨다. 

 사랑, 그 무너져버린 아집의 노래여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시작은 그렇다.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듯한 남자와 여자다. 이른 아침 전북 군산의 터미널에 윤영(박해일 분)과 송현(문소리 분)이 내린다. 윤영은 한때 좋아했던, 선배의 아내인 송현이 이혼을 했다는 소식에 다짜고짜 군산 여행을 제안한다. 윤영 때문에 군산까지 왔다고 타박을 하지만 송현도 '이혼'의 잔영이 남은 서울을 떠난 것이 싫지 않은 눈치다. 윤영과 함께라 더더욱. 

그렇게 막 시작하는 연인처럼 두 사람은 허름한 칼국수 집에서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송현이 먼저 쉬고 싶다며 민박을 수소문한다. 손님을 가려 받는다는 민박집에 다가선 두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CCTV다. 응대하는 건 늙수그레한 남자(정진영 분), 그 남자에게 송현은 대뜸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냐'고 반색하고, 윤영은 어쩐지 그 집에 들어서는 뒤가 무겁다.

아니나 다를까, 민박집에 들어설 때만 해도 설레는 커플이었던 두 사람은 민박집 주인 남자의 등장으로 삼각관계가 된다. 방을 하나 더 잡으며 대놓고 윤영에게 거리를 둔 송현은 "남자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해 줄 것 같다"며 민박집 남자에게 접근한다. 그런가 하면 송현과의 밀월을 꿈꾸다 상처받은 윤영에게는 CCTV의 그림자가 다가선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이 엇갈린 사랑의 계기 중 하나는 '일본'이다. 전라북도 북서부의 중심지인 군산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평야지대의 관문으로 일찍이 고려 말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며 일제 강점기 미곡 반출을 위한 도시로 급성장한 곳이다. 군산에 내리자마자, '일본 같다'고 반색한 송현의 호감은 일본에서 왔다는 교포 민박집 남자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호감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자폐증인 딸을 돌본다는 그의 미담은 '기댈 곳'을 희망하는 윤영의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부풀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송현의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린다. 윤영은 일본이 윤동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하고, 일본스러운 군산에 상흔처럼 남겨진 침략의 증거들을 보여준다.

군산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이곳에 관광객처럼 내려온 송현에게 군산은 그녀를 매료시키는 '일본' 같은 곳 이상이 되지 못한다. 민박집 남자는 아내가 죽음에 이른 사연을 무거운 일본어로 고백한다. 그리고 민박집 딸(박소담 분)의 윤영을 향한 외사랑은 결국 '밀월 여행'이던 송현과 윤영의 여행을 '파국'으로 이끈다. 역사로서의 일본,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 사이의 민박집 부녀, 그리고 인한 오해의 장벽까지. 이는 어쩌면 군산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설렘과 호감으로 여행을 시작한 송현이 자초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파국'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얽혀있는 '현재형'인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상징한다. 

군산으로부터 온 거위 
 
 군산

군산 ⓒ 트리플 픽쳐스

 
그렇게 일본과 한국의 '경계'로 등장한 군산, 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다. 군산 터미널에 내려 익숙해하던 윤영은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면 윤영은 왜 군산에 갔을까. 관객 입장에선 시간 순서상 다소 헷갈릴 수도 있지만, 영화는 후반부에 그가 왜 송현과 군산에 가게 되었는지를 그린다.

직업은 시인이지만 시를 쓴 지는 어언 10년이 넘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에게 용돈이나 타 쓰는 허우대 멀쩡한 백수 신세인 윤영. 그러나 그와 아버지는 한집에 살면서도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이다.

아버지는 연변에서 일하다 온 도우미에게 대놓고 '빨갱이'라 욕을 해대고 아직도 해병대 옷을 입고 전우회에 출근하며, 밤이면 그녀의 방 손잡이를 들썩인다. 이런 아버지에게 그 누구라고 정을 붙이겠나. 윤영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친구분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고 농담한다. 이 말에 진담이 살짝 녹아있는 것 같다면 과한 해석일까.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그런 그가 '아버지가 마당에서 기르는 거위에게 '영아'라며 말을 건넸다'며 치매를 걱정하는 도우미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계시는 전우회에 수박과 참외를 사 들고 찾아간다. 그리고 송현과의 밀월을 핑계로 군산을 찾아간다. 

윤영을 "영아"라고 부르던, 잘 웃으시던 어머니의 고향이 군산이다. 그런데 윤영은 어릴 적 중국인 친구를 둔 아버지 때문에 화교 학교에 다녔고, 술이 취해 '거위를 노래하다(咏鹅)'를 부른다. 또 거리에서 시위하는 연변 동포의 진위를 대번에 알아볼 만큼 '연변' 말에도 해박하다.

그런가 하면 윤영은 도우미 아주머니의 고향이 윤동주 시인의 고향이었으며 윤동주 시인과 인척 관계라는 사실을 듣고 친척이라도 만난 양 반색하며 두 손을 잡는다. 과연 그에게 익숙한 연변어와 친숙한 중국어, 그리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반가움 이상의 울컥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군산이 고향이라던 그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송현이 말하던 윤영의 어중간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중일에 얽힌 비극적인 역사 트라우마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장율 감독은 군산과 서울을 오가며 전작 <춘몽> <경주> <이리>처럼 지정학적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 머무는 인간들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는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배경으로 흩어진 '한민족'의 서로 다른 운명이 빚은 아이러니한 관계를 짚는다. 

윤동주가 작은 할아버지인 도우미는 오늘날 한국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고, 송현은 자신을 중국 동포라고 착각하는 아줌마에게 불쾌감을 표한다. 한때 '운동권'이었고 연변동포 시위에 참가하기까지 한 송현인데도 말이다. 한편 송현은 일본스러운 군산과 일본에서 돌아온 재일동포에 대한 무한한 호감도 드러낸다. 이는 2018년에도 지속되는 아이러니한 한중일 관계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일본에 대한 현대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역사 문제에 있어선 반일 감정이 여전히 극심하지만, 일본 여행은 수년째 해외여행지 1순위로 꼽히고 일본 제품이나 일본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하늘을 찌른다. 반대로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라면 일단 얕잡아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중국 제품을 무시하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리의 '허위의식'은 지정학적 조건으로 규정돼 얽힌 인연 모두를 '타자'로 만든다. 밤이 돼서야 비로소 백화(문숙 분)의 칼국수 집을 찾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민박집 딸처럼, 어머니나 아내를 대놓고 그리워하지 못하는 윤영과 그의 아버지처럼, 일본-한국-중국 그 모든 인연을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만든다. 

그 정답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 <삼포 가는 길>(1975)과 영화 <군산>의 연결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삼포 가는 길>에서 술집에서 도망쳐 영달이 사준 삼립빵 2개와 달걀 2개를 받아 들고 고향으로 떠났던 백화(문숙 분)는 <군산>에서 그 이름, 그 모습 그대로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쩌다 군산 한 귀퉁이에서 일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며 살고 있게 된 걸까. 백화는 "머무는 곳이 고향"이라며 탁배기 잔을 쓸쓸하게 기울인다. 마치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처럼. 그러나 우리는 유행가도 아는 그 사실을 떨쳐내지 못한 채 여전히 각자의 가슴에 낙인처럼 떠나온 곳의 이름표를 다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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