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포스터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포스터 ⓒ 넷플릭스

 
지난 2일 넷플릭스가 제작·배급하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의 마지막 시즌이 공개되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팬이라고 밝혔던 만큼, 백악관을 주요 무대로 미국 정계의 복잡한 셈법과 권모술수를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하우스오브 카드>는 2013년 첫 번째 시즌이 공개될 때부터 그 반향이 대단했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첫 번째 드라마인데다가, 해당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배급 방식은 당시 혁신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 감독 데이빗 핀처와 스타 배우 케빈 스페이시의 조합은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작품이 공개된 이후에는 완성도 높은 정치스릴러로 추앙 받으며, 평론가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유주얼 서스펙트>, <아메리칸 뷰티> 등 화려한 영화 필모그래피를 가진 세계적인 배우 케빈 스페이시. 그는 야심만만하고 노련한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를 무자비한 악역 캐릭터로 그려내며 호연을 선보였다. 시즌 내내 케빈 스페이시는 그야말로 <하우스오브카드>의 대표적 초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여섯 번째 시즌에서 돌연 그는 종적을 감췄다. 케빈 스페이시가 거침없는 야욕을 드러내며 앉았던 자리는, '클레어 언더우드'(혹은 '클레어 에일')를 연기한 배우 로빈 라이트가 차지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먼저 작품 외적인 이유가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여섯 번째 시즌이 제작되던 당시, 미투가 할리우드를 강타했다. 과거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가 쏟아졌다. 이에 넷플릭스 측은 상당한 금전적인 손실에도 불구하고, 케빈 스페이시와 더 이상 작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케빈 스페이시가 없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상상할 수 있을까. 많은 시청자들이 우려했지만, 사실 다섯 번째 시즌에서 이미 '프랭크 언더우드'의 권력은 '클레어 언더우드'로 이양되었다.
 
'클레어 언더우드'는 '프랭크 언더우드'의 와이프이지만, 그런 꼬리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섬세함과 친화력, 외향적 매력까지 골고루 갖춘 그녀는 시즌 초반부터 '프랭크 언더우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존재감을 뽐냈다. 물론 이는 배우 로빈 라이트의 압도적 연기에 힘입은 바도 크다. 남편과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우아하고 세련되게 목적한 바를 성취하던 클레어. 그런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권력의 규칙에 익숙해져 가던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랭크 언더우드'와 점점 닮아가더니, 이윽고 그를 내치고 권좌의 꼭대기에 앉는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6 포스터.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6 포스터. ⓒ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마지막 시즌에서 미국의 첫 번째 여성대통령인 클레어의 입지를 부각시키며, 사면초가에 몰린 그녀가 냉혹하게 주변의 정적들을 제거해가는 서사를 골격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클레어는 거침없이 여성연대를 외치는 동시에 이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한다.
 
더 이상 자신의 것인지도 모를 욕망에 충실히 복무하며 어느새 괴물이 되어가는 클레어. 조금 생경하다. 시즌 초반 클레어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던 시청자라면 그녀의 변화에 더욱 실망할 수도 있다. 물론 총 6개의 시즌, 73회에 달하는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클레어의 다층적인 백그라운드가 간간이 제공되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그녀는 변모해왔기 때문에, 캐릭터의 개연성에 문제제기를 할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시청자로서 클레어에게 느끼게 되는 낯선 감정은, 무엇보다 클레어는 '그'가 아니라 '그녀'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미국 대통령까지 된 여성이 악인이라니. 그럼에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굳이 클레어의 야욕과 악행에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권력을 탐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유사한 캐릭터로 치정스릴러 <나를 찾아줘>(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에이미 던(로자먼드 파이크 역)이 떠오르지만, 명백히 남성 배우의 영역이라고 인정되는 정치스릴러에서, 유혈이 낭자한 암투를 이겨내고 백악관에 입성한 여성 주인공은 그 존재 자체가 색다르다. 이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견주어 볼 때 더욱 그렇다. 특히 한국 상업 영화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 자체를 찾아보기 아직 어렵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 김혜수씨는 앞서 영화 <미옥>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여성 영화의 소중함을 언급한 적이 있다(관련기사: "분량 보다 메시지"... 김혜수가 빛낸 '여성' 캐릭터들). 정의로운 투사이든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인이든, 서사를 이끌어가는 자가 여성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여성이 영화 포스터에 메인으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최근 선전한 영화 <미쓰백>에서 주연배우 한지민의 변신에 환호하는 팬들이 시사하는 바처럼, 한국 영화계에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갈구하는 관객층이 존재한다. 이들이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인물은, 비단 여성 정체성으로 무장한 캐릭터만은 아닐 터, 그저 '여자라서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이 배제된 인물일 것이다.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클레어의 얼굴들'을 한국 영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영화 하우스오브카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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