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까지 찰리 모튼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때까지 모튼은 가능성만 있는 선발 투수였다. 2008년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그는 다음 해 피츠버그로 팀을 옮겨 활약을 이어갔지만, 특출난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1시즌 모튼은 데뷔 후 처음으로 10승과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장차 피츠버그 선발진을 이끌 선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 9경기 출전에 그치며 성적도 2승 6패 4.65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2016시즌까지 평범한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모튼은 FA 자격을 획득한 뒤 2년 14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휴스턴에 둥지를 틀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휴스턴 이적 후 모튼은 급격하게 구위가 상승했다. 평균 92마일을 밑돌았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95마일을 상회할 정도로 상승했고, 싱커 역시 평소보다 1마일 정도 오른 95마일을 기록했다. 여기에 자신의 장점이었던 커브의 위력도 증가했다.

구위가 좋아지면서 성적도 자연스럽게 동반 상승했다. 14승 7패 3.6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당당히 휴스턴 선발진의 일원이 되었다. 시즌 도중 들어온 벌렌더를 필두로 카이클, 모튼, 맥컬러스 주니어, 피콕으로 이어졌던 휴스턴의 선발진은 팀 타선과 함께 정규시즌 우승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모튼의 활약은 정규시즌에 그치지 않았다. 2013시즌 피츠버그에서 포스트시즌 무대를 딱 1번 경험했던, 모튼의 2번째 포스트시즌 초반은 험난했다.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 경기에서는 3.2이닝동안 7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모튼의 패배 이후 휴스턴은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양키스에 월드시리즈 티켓을 내줄 뻔했다.

하지만 모튼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완벽하게 사용했다.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선발 투수로 나선 모튼은 5이닝동안 2피안타 1볼넷 무실점 피칭을 선보이며 양키스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모튼의 활약 덕에 휴스턴은 양키스를 4-0으로 물리치고 월드시리즈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감을 찾은 모튼은 생애 처음 나선 월드시리즈 무대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비록 불펜의 난조로 인해 승리를 챙기진 못했지만, 6.1이닝 3피안타 1실점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7차전 불펜 투수로 나선 모튼은 4이닝을 2피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공은 바로 모튼이 던진 공이었다.

이렇게 최고의 시즌을 보낸 그는 다음 시즌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96마일까지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모튼은 자신이 가장 많이 구사했던 싱커의 비율을 줄이고 포심 패스트볼의 비율을 10%에서 30%까지 끌어올렸다.

전략을 바꾼 모튼은 시즌 초반 엄청난 페이스를 보였다. 전반기동안 11승 2패 2.96의 방어율. 탈삼진 146개를 기록한 모튼은 팀 동료인 벌렌더, 게릿 콜과 함께 최강의 쓰리 펀치를 구축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고, 후반기 더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후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였지만, 모튼의 구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시즌 막판 부상을 당하면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최종 성적 15승 3패 3.13 탈삼진 201개를 기록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탈삼진 200개를 돌파했고, 오랜만에 165이닝 이상을 소화했기에 만족할 만한 성적이었다.

이렇게 고생 끝에 전성기를 맞은 모튼은 FA를 맞았다. 만 35세의 선수이기에 다년 계약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구속이 오르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충분히 좋은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2016년 리치 힐이 계약했던 3년 4800만 달러 수준이 그의 계약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모튼이 이번 FA 시장에서 얼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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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6기 이정엽
야구 MLB 찰리모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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