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축구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 경기력을 조금 숨겨왔던 것처럼 한국 U-19 축구대표팀이 다른 팀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후반전 초반에 1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전반전을 원하는 대로 완성시킨 덕분에 별 걱정 없이 결승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빠른 선수들로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재배치하여 높은 위치부터 압박 전술을 펼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정정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19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일 오후 6시 인도네시아 보고르에 있는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카타르와의 준결승전에서 전세진(수원 블루윙즈)의 2득점 활약에 힘입어 3-1로 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완벽한 전반전
 
한국 U-19 대표팀 정정용호가 중동의 카타르를 잠재우고, AFC U-19 챔피언십 결승에 올랐다.

한국 대표팀이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 대한축구협회


역시 축구는 상대 팀의 성향과 대응 전술에 따라 실제 경기 내용이 확 달라질 수 있는 스포츠다. 준결승전에 오르기까지 한국 팀은 전반적으로 실수가 너무 많았고 수비 조직력이 쉽게 흔들렸다. 반면에 카타르는 실점이 많은 팀이지만 간판 골잡이 압둘라시드 우마루의 결정력이 매우 놀라워 한국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부진했던 한국이 몰라보게 다른 팀이 되어 카타르를 휘어잡고 말았다. 특히, 전반전은 성인 대표팀 경기들을 포함해도 근래에 보기 드문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간판 공격수 조영욱을 벤치에 대기시킨 상태에서 임재혁을 원톱 자리에 세우고 전세진과 엄원상을 양 측면에 배치했다. 빠른 전방 압박으로 카타르의 빌드 업을 적극 차단하겠다는 포메이션인 것이다. 

우리 코칭 스태프의 이 판단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카타르도 그렇게 느린 팀이 아니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맨 앞부터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에 패스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크게 흔들리는 장면이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선수들은 공 소유권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침착하면서도 정확하게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주도권을 쥔 우리 선수들은 23분 만에 멋진 선취골을 만들어냈다. 오른쪽 옆줄에서 스로인으로 공격을 재개하는 순간 발 빠른 엄원상을 제대로 활용한 것이다. 오른쪽 끝줄 바로 앞으로 빠져들어간 엄원상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로 낮게 깔린 크로스가 전세진의 왼발 득점을 빛냈다. 골문 바로 앞으로 달려드는 전세진에게도 달라붙는 카타르 수비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10분 뒤에 한국은 귀중한 추가골을 터뜨리며 완승의 조건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발 빠른 엄원상이 프리킥을 얻어냈는데 카타르 골문으로부터 약 31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직접 프리킥이 조금 멀게 느껴졌지만 이번 대회 득점 감각이 가장 탁월한 전세진의 오른발 감아차기가 수비벽을 쌓은 카타르 수비수 호맘 아흐메드의 머리를 살짝 스치며 오른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카타르 골키퍼 셰하브 맘도우가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랐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구석에 날아가 꽂힌 것이다. 

결승 상대는 일본 물리친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전반전 추가 시간 2분도 거의 끝날 무렵 한국의 놀라운 추가골이 나왔다. 세트 피스를 처리하기 위해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이재익이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몰다가 기습적으로 찔러준 오른발 패스를 엄원상이 골문 정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오른발로 차 넣었다. 

카타르가 조별리그부터 8강에 이르기까지 수비 조직력이 허술하여 실점이 가장 많은 팀이라는 것을 우리 선수들이 정확하게 파악한 효과가 나타난 셈이었다. 

전반전 끝나기 전에 보기 드물게 3-0 점수판을 만든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에 한결 여유 있는 경기 운영을 펼칠 수 있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카타르 선수들은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겨우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카타르 선수들은 1골이라도 따라붙을 기회를 잡은 것이다. 52분, 한국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의 간격이 벌어진 틈을 타 후반전 교체 선수 압둘라 알무리시가 오른쪽 끝줄 방향으로 파고들었고 기막힌 타이밍의 전진 패스가 그에게 이어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컷 백 크로스가 간판 골잡이 압둘라시드 우마루 앞으로 굴러왔다. 이에 한국 센터백 이재익이 바짝 따라붙었지만 압둘라시드 우마루가 방향을 슬쩍 바꾼 공이 이재익의 발에 맞고 방향이 바뀌어 굴러들어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재익의 자책골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카타르의 1골이 후반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나왔고 이 흐름이 한국의 조별리그 경기력 앞에 놓였다면 크게 흔들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1실점 이후 전반전에 펼친 적극적인 전방 압박 전술을 다시 펼쳐들며 밸런스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64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구본철 대신 플레이 메이커 박태준을 들여보내 중원에서 더 침착하게 공 돌리기를 주문했고, 83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고재현 대신 센터백 이지솔을 들여보내 5-4-1로 포메이션 변화를 주면서 2골 차 완승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카타르 선수들은 60분 이후부터 다시 공격 흐름이 자주 끊기자 쉽게 흥분했고 무우드 본야디파드(이란) 주심을 조롱하는 추태까지 보이며 스스로 주저앉았다. 45분에 이미 경고를 받았던 수비형 미드필더 나세르 알아라크는 90분에도 한국의 발 빠른 날개공격수 엄원상을 잡아 넘어뜨리며 두 번째 카드를 받아 쫓겨났다. 카타르의 플레이 메이커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 알아라크는 피치를 떠나기 직전에 본야디파드 주심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얼굴 바로 앞에서 박수를 쳐 매너조차 형편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다음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이 2022년 11월 21일 카타르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 19세 이하 선수들 중 일부는 성인 대표팀으로서 다음 월드컵 본선에 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퇴장은 당했지만 나세르 알아라크는 센터백 바로 앞에서 빌드 업 출발점이 되는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맡았고, 10번을 달고 뛴 중앙 미드필더 칼레드 모하메드의 드리블과 패스 기술도 돋보였다. 

그리고 맨 앞에서 이례적으로 7번을 달고 원톱으로 뛰는 압둘라시드 우마루는 정말로 월드컵 멤버에 뽑힐 수 있는 빼어난 골잡이다. 이미 이번 대회 득점왕을 7골로 예약한 상태나 다름없을 정도로 상대 팀 위험 지역을 폭넓게 뛰어다닌다. 탄력도 뛰어나 높은 공 다툼도 잘하고 드리블과 공간 침투 능력은 당장 성인 대표 레벨에 올려놓아도 눈에 띌 정도다. 

한국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오른다는 것을 가정해도 조별리그부터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토너먼트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적어도 압둘라시드 우마루의 공격력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결승전에 오른 한국은 오는 4일 오후 9시 30분에 일본을 2-0으로 물리친 사우디 아라비아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마지막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2018 AFC U-19 챔피언십 준결승 결과
(1일 오후 6시, 파칸사리 스타디움-인도네시아 보고르)

★ 한국 3-1 카타르 [득점 : 전세진(23분,도움-엄원상), 전세진(33분), 엄원상(45+2분,도움-이재익) / 이재익(52분,자책골)]

◇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한국 49.1%, 카타르 50.9%
유효 슛 : 한국 5개, 카타르 4개
슛 : 한국 13개(박스 안 7개), 카타르 8개(박스 안 1개)
가로채기 : 한국 10개, 카타르 10개
오프사이드 : 한국 2개, 카타르 2개
코너킥 : 한국 7개, 카타르 1개
패스 : 한국 343개, 카타르 371개
롱 패스 : 한국 51개, 카타르 54개
패스 성공률 : 한국 77.8%, 카타르 73.6%
크로스 : 한국 23개, 카타르 10개
태클 : 한국 11개, 카타르 15개
태클 성공률 : 한국 63.6%, 카타르 73.3%
파울 : 한국 24개, 카타르 24개
경고 : 한국 3장(58분 황태현, 65분 이재익, 80분 김현우)
경고 : 카타르 7장(32분 알민할리, 45분 나세르 알아라크, 57분 모함메드 와드, 74분 알리 하심, 86분 호맘 아흐메드, 88분 압둘라시드 우마루, 90분 나세르 알아라크)
퇴장 : 카타르 1장(90분 나세르 알아라크)

◇ 결승전 일정(11월 4일 일요일 오후 9시 30분)
☆ 한국 - 사우디 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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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U-19 챔피언십 U-20 월드컵 전세진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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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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