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콘셉트 사진.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콘셉트 사진. ⓒ 서울예술단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 서울예술단의 2018년 신작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종연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다. 한 달이나 지난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연의 장점이 바로 그것 아닌가.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클래식'으로서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이다. 이 리뷰는 이 작품이 그렇게 되길 바라기 때문에 꺼내는 이야기다.

우선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자. '요절한 천재작가'로 불리는 고 박지리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1~9지구(등급)로 나뉘어진 가상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21세기 근미래 정도로 보이는 배경이지만, 합법적으로 주거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계급이 나뉘어졌다.

그리고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1지구 최상위 명문학교인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소년 다윈 영이 마음에 둔 소녀 루미 헌터와 함께 과거 있었던 '12월의 폭동'에 관해 조사를 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그들은 이 사건을 조사하며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에서 벌어진 위험한 사건들,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최근 국내에서 서사를 바탕으로 한 예술 작품들의 흐름은 동시대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어떤 개인(집단)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 뒤 그것이 현재의 시간에 포개질 때 느껴지는 감동과 사유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떤 때는 영화 <베테랑>처럼 직접적으로 '어이가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보여주기도 하고, 조선시대나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두고 현재의 국제 갈등, 계급 갈등의 정서를 풀어내기도 한다.

4일 공연을 마치는 국립극단의 연극 <오슬로> 역시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한국의 최근 정세를 느끼게 한다. 물론 이것은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며 인간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되풀이될 주제기도 하다. 예컨대, 오슬로 협정이 2018년의 우리를 염두에 두고 벌어진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을 풀어간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주거지역에 따른 계급제도를 보여줌으로써, 21세기의 한국의 모습을 소설 속에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포스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포스터. ⓒ 서울예술단

 
그러나 이것을 똑똑하면서도 사회에 길들여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관점을 더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를 군인도 시민도 아닌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시각으로 풀어낸 영화 <택시운전사>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박지리 작가의 글재주, 범상치 않은 시선이 여기서 빛난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희망적이고 활기차거나, 힘들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나서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서 상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것을 '추리'라는 포맷에 넣음으로써 사건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긴장감과 재미를 제공한다.

그리고 서울예술단의 2018년 신작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잘 무대화했다. 프레임이 강조된 무대는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고, 추리의 포맷을 살려 이야기의 몰입도도 잘 살렸다. 음악 역시 멜로디 위주로 드라마를 살리는 여타 작품들과 차별점을 뒀다.

'불협화음'의 대가 손드하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상황과 음악의 미스매치를 의도해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배우들의 넘버 역시 '대극장 뮤지컬'에서 원하는 강력한 '한 방'이 있다. 최우혁은 '벤허', '프랑켄슈타인', '금강 1894'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힘을 여기서도 보여준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서울예술단

 
그렇지만, 상업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무대화하는 건 무척 위험한 시도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작은 프로덕션으로 만들 수 없지만, 긍정적이거나 밝은 요소가 없고 대중성을 얻기 힘든 내용과 분위기기 때문이다(도리어 프로덕션 자체는 더 대형이지만 소규모,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제작이 가능한 영화에서는 이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다룬 다양한 시도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물론 대학로의 중소극장 규모 작품에서는 다양성을 살린 이야기들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지만, 대극장 규모의 창작 뮤지컬에서는 '사랑'이 아닌 감정을 메인 테마로 다루는 것은 거의 보기 드문 케이스다. 공공성을 담보로 하는 서울예술단이 가지는 특수성이 빛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꾿빠이, 이상'에 이어 다른 의미와 다른 형태로 만들어낸 '서울예술단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장편 소설이 무대화될 때 겪기 쉬운 이야기의 축소, 건너뜀 등은 여기서도 동일하며 추리의 포맷을 맛깔나게 살리기 어려운 공연예술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창작 초연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완성도와 방향성이 엿보이기에, 이 작품이 꼭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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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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