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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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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교통공사에 1999년도에 입사해서 21년째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식당조리원 최명임입니다. 소위 말하는 '밥하는 아줌마'입니다.

평소 '밥하는 아줌마'(관련기사: 이언주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 돼야 하나?")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저희에게 요즘 들어 갑자기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오히려 저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쏟아지는 각종 비난 기사나 글들을 보면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큰 욕심도 없이 그저 새벽 같이 출근해 열심히 설거지하고 밥을 짓고 살아왔는데,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청년 일자리를 약탈하는 파렴치범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자리 세습?

신문을 펼쳐보면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21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금 연봉을 다 합쳐봐야 기껏 3200만 원 남짓인데, 신문에는 7000만 원이 넘는 고액 연봉자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요즘에는 '가짜뉴스'라고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10년 넘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식당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간신히 정규직이 된 제 직장동료는 하루아침에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채용비리자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친인척이 있다고 남들은 채용비리를 저지른 범죄자처럼 말하지만, 그 역시 여지껏 같이 땀 흘리며 일했던 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입사 당시에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면접을 거쳐서 입사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식당 조리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을 치르고 모든 절차를 거쳐서 떳떳하게 입사했습니다.

새벽부터 나와 일해도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비정규직 일자리는 지원하는 이도 별로 없었고, 혹여 면접을 통과해 들어왔다가도 고된 노동에 몇 개월만에 나가는 이가 대다수였습니다. 바로 그 곳에서 그 친구는 10년을 넘게 비정규직으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묵묵히 일해왔습니다.

식기 세척기도 없고, 냉난방조차도 없던 시절에 한여름에는 같이 땀 흘려가며, 한겨울에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같이 일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교통공사에 근무하는 친인척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아침에 '고용 세습'으로 특혜를 입은 비리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들에게 물려줄 정도로 그렇게 좋은 일자리에 우리가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밥하는 아줌마'라고 멸시당할 때 당당하게 맞받아치고 '나 지하철 식당에서 밥 짓는 노동자'라고 자랑하고 다닐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10월 18일 오후 서울시청 후문에서 서울교통공사 ‘특혜입사’ 논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10월 18일 오후 서울시청 후문에서 서울교통공사 ‘특혜입사’ 논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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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넘게 같이 일했던 동료이자 가족과도 같이 지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미안해하며 제 시선을 외면할 때면, 그 친구를 이렇게 매도하는 현실에 슬픔을 넘어 울화통이 치밀 정도입니다. 서울교통공사에 친인척이 근무한다는 사실이 잘못된 겁니까? 그동안 '식당 아줌마'라는 오명을 써가며 묵묵히 일해온 사실을 도대체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저도 채용 비리에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하물며 고용 세습은 더더구나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하는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 한 가지로 모든 사람을 비리 당사자로 낙인 찍는다면, 저희가 성실하게 살아왔던 지난 힘든 세월이 모두 부정되는 듯하여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는 지금까지 교통공사에 있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건 일자리 약탈이 아니고 오히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정규직이 되어 조금 더 좋아진 이 일자리에 조리 자격증을 가진 젊은 청년들이 더 많이 오고 같이 일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식당 찬모'나 '밥하는 아줌마'와 같이 저희를 비하하는 말이 계속된다면 어떤 청년들이 이 일자리에 오겠습니까? 식당에서 일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일하고 월급을 받는 만큼 똑같은 회사의 직원으로 대우 받아야 합니다(관련기사: "찬모 아닙니다"... '세습 논란' 한국당·언론의 오류들).

저희도 아침에 회사의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한 사람의 노동자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깨끗하고 청렴한 서울교통공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러분과 같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태그:#서울교통공사,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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