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참 통쾌했다. 아이유의 신곡 '삐삐(작사 아이유, 작곡 이종훈)'를 듣자마자 '간섭'을 '관심'으로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타인의 간섭에 불편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삐삐'는 도를 넘은 관심에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이다. '삐삐'를 통해 대인관계에서 꼭 필요한 심리적 거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확실하게 선 긋기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카카오M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시작해요 서론 없이' 아이유는 시작부터 단도직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곧이어 '스킨십은 사양할게요'라고 자신의 선을 명확히 밝힌다. 귀에 착 감기는 후렴구들에서도 마찬가지다. 'Yellow CAR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라고 경고하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왜 아이유는 지금 이렇게 작정하고 선을 긋는 걸까? 두 번째 소절, 아이유는 '오늘은 몇 점인가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사람들은 평가의 기준을 말한다.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꼿꼿하게 걷다가 삐끗 넘어질라,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라며 괜한 걱정을 해댄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옷을 입는 것, 표정을 짓는 것, 몸매의 변화가 과연 평가받을 만한 것일까? 취향이나 감정, 신체적 변화는 오롯이 한 개인의 사적인 것으로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할 거리가 못된다. 꼿꼿이 걷는 것은 개인의 습관일 뿐이며, '수군대는 건' 그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몫이고 누구랑 어울리는지 역시 사생활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취향이나 성향, 사적인 일들을 존중하기는커녕,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해 수군대며 심지어 충고까지 한다. 지금 아이유는 이런 평가적인 시선에 'No'라고 분명히 말하며 존중해 달라고 호소하는 중이다. 선을 확실하게 그으면서 말이다.

선을 긋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카카오M


아마 단칼에 선을 긋는 이런 모습이 좀 어색한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단호하게 'No'를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여겨져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절한 선긋기, 분명하게 거절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인관계 기술 중 하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주장(assertiveness)'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가장 손쉽게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가 타인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평가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아이유가 속삭이는 'jealous, jealous'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기제다. 이들은 타인을 '걱정이야 쟤도 참' 혹은 '문제야 쟤도 참'이라고 깎아내리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럴 때 타인의 '다름'은 '열등한 것'이 되고 이런 태도가 뒷담화 수준을 넘어 일반화 되면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바로 자기주장, 그러니까 한계를 정해서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침범당한 선을 알려줌으로 해서 나를 지키는 행위인 것이다. 자신의 선을 지켜주길 바라는 사람은 타인의 선도 함부로 넘으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상담현장에서 거절을 잘 하지 못하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자기주장훈련'을 통해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도록 도우면, 이들의 대인관계가 월등히 개선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즉, 선 긋기, 그러니까 분명하게 'No'라고 말하기는 서로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꼭 필요한 자세인 것이다.

만일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 '어 거기 너 내 말 알아들어? 어?'라고 되물어보자. 그래도 '또 나만 나빠'라고 한다면 아이유처럼 'Enough 더 상대 안 해' 라며 관계에 거리를 두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상대방에 휘둘리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필요한 거리두기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아이유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디지털 싱글 '삐삐'를 발표했다. ⓒ 카카오M


그렇다면, 나의 한계를 알려주고 선을 긋는 것은 뒷담화를 하는 타인들에게만 하면 되는 걸까? 사실, 거리가 먼 사람들보다는 속내를 털어 놓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 심리적 상처가 더 크고 아프다. 때문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지켜야할 선을 알려주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없을 경우, 부모는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자녀에게 투사하고, 그 꿈을 대신 이루도록 자녀를 통제하게 된다. 이럴 경우 자녀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생각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는 엄연히 다른 독립된 사람들이다. 각자의 독립성을 침해할 만큼 심리적으로 의존한다면 서로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불행을 낳을 뿐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녀는 'No'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의존하는 자녀에게는 'No'라고 말하며 독립을 독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부나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다 들어주거나, 상대방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나의 결핍된 욕구를 상대방이 채워주기를 바라거나, 내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된 듯 행동하는 것은 결국 관계를 질식시킨다. 각자가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있을 시간과 적절한 거리를 확보할 때 관계는 숨을 쉴 수 있고 서로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그다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타인이 내 선을 넘는 것은 불쾌감을 유발할 뿐이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선이 무너지게 되면, 한 사람의 독립과 자율이 침해되는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심지어 정체감 형성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때문에 '거리 유지해'라는 아이유의 호소는 친밀한 관계에서 더욱 잘 지켜져야만 한다.

아이유는 노래 초반 'balance, balance'라고 슬며시 내뱉는다. 어쩌면, 대인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balance)'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무게중심이 집단내의 동질성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다수가 혹은 권력을 가진 자가 가진 기준이 법칙이 되고 이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행동이나 개성은 가십거리나 열등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문화. 이제 동질성을 강조하는 이런 문화를 좀 더 균형 있게 바꿔 가면 어떨까?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사생활이나 취향에 대해서는 평가의 잣대를 거두고 쿨하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라고 노래하는 아이유처럼 말이다.
 
이젠 정말 "왜 애가 하나 밖에 없니?" "살 좀 빼라~" 같은 타인의 참견엔 'Stop it,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라고 잘라 말하고 싶다. 부모님이 내 미래를 계획하고, 파트너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의 선을 넘어올 때에도 'Stop it 거리 유지해'라고 명확히 선을 그어 볼 테다. 'It's me 나예요 다를 것 없이'라는 이 노래 속 가사처럼, 나의 정체감을 지켜낼 때 관계 역시 더욱 편안하고 친밀해질 것이라 믿는다.
 
아이유 '삐삐' 중에서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시작해요 서론 없이
스킨십은 사양할게요 back off back off
이대로 좋아요 balance balance

It's me 나예요 다를 거 없이
요즘엔 뭔가요 내 가십
탐색하는 불빛 scanner scanner
오늘은 몇 점인가요? jealous jealous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it's ma ma ma mine
Please keep the la la la line

Hello stu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cause we don't know know know know
Comma we don't owe owe owe owe
(anything)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 not my business
이대로 좋아요 talk talkless

Still me 또예요 놀랄 거 없이
I'm sure you're gonna say "my gosh"
바빠지는 눈빛 checki cheking
매일 틀린 그림 찾기 hash tagging

꼿꼿하게 걷다가 삐끗 넘어질라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
문제야 쟤도 참
(후략)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아이유 삐삐 타인의취향 심리적거리 자기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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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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