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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위령제에서 박수를 치며 웃는다. 눈물을 흘리며.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70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한을 거두기 위해선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희망은 영원한 청춘으로 남아 펄떡거리며 외친다. "여순항쟁 특별법을 제정하라!"
 
20일 팔마경기장에서 열린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상생의 띠잇기' 시민 행렬과 유족이 함께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하라" 촉구하고 있다.
▲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 20일 팔마경기장에서 열린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상생의 띠잇기" 시민 행렬과 유족이 함께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하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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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순천팔마경기장에 위치한 여순사건위령탑에서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사)여순사건순천유족회가 주최, 순천시와 시의회가 후원, 순천시의회여순사건특별위원회, 한국전쟁전국유족협의회, 광주·전남한국전쟁전후유족연합회, 전남동부지역여순사건유족협의회,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가 협력했다.

이날 허석 순천시장을 비롯하여 시의원과 도의원 및 민주당 지역위원장 등 정치인들이 참석했으며, 김영록 도지사는 조화를 보냈다. 한편, 특별법을 발의한 다른 지역구 출신 정인화, 이용주 국회의원이 직접 방문하여 추모사를 한 반면, 정작 순천 지역구인 이정현 의원은 불참하고 단지 안내책자에 글만 남겼다.

1시 40분에 흰 옷에 가장자리만 거뭇하게 염색된, 학을 닮은 한복을 입은 동래학춤 이수자인 박소산씨가 객석에서부터 진혼무를 추며 위령제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지난 위령제와 달리 유족들이 직접 제례의식을 거행했다.
 
20일 팔마경기장 내 위령탑 앞에서 여순 유족들이 직접 제례를 지내며 70년 전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 여순 유족들이 거행한 제레 20일 팔마경기장 내 위령탑 앞에서 여순 유족들이 직접 제례를 지내며 70년 전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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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추모식에서 부친을 잃은 장옥자 유족의 아들인, 희생자 3세대 출신 노광흔 씨가 추모시를 낭송하자 객석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렸다. 노씨는 현재 순천시립극단 소속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깜짝 손님도 등장했다. 당시 순천여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중에 끌려가 노래 봉선화를 부른 후 처형된 고 김생옥 선생의 16세 제자가 86세의 할머니가 되어 와서 울먹거리며 증언을 했다. 그는 당시 4살이던 고인의 아들과 며느리, 김성진 성악가와 함께 '봉선화'를 부르며, 억울하게 작고한 스승의 넋을 위로했다. 
 
20일 오후 2시 순천역에서 출발하여 팔마경기장에 입장하는 '상생의 띠잇기' 시민행렬을 맞이하는 박소산 무용가와 유족들
▲ 시민행렬을 반기는 사람들 20일 오후 2시 순천역에서 출발하여 팔마경기장에 입장하는 "상생의 띠잇기" 시민행렬을 맞이하는 박소산 무용가와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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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오후 2시 순천역에서 집결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생의 띠잇기' 행렬이 3㎞를 행진하여 3시 반 경 도착했을 때 위령제는 절정에 이르렀다. 박소산씨는 훨훨 학춤을 추며 시민 행렬을 반겼다. 어린이부터 노인, 회사원과 전업주부, 시청 공무원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자 유족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웃으며 기뻐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문선영 가수가 여순사건을 소재로 부른 노래를 들으며, 유족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여순항쟁 희생자 3세대 노광흔 씨의 추모시 낭독에 눈물을 흘리는 유족
▲ 울먹이는 유족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여순항쟁 희생자 3세대 노광흔 씨의 추모시 낭독에 눈물을 흘리는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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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 시장은 대학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항해 학생운동을 할 때 다들 대부분 6개월, 1년을 못 버티었다며, "저는 끝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우리 여수 순천 출신은 좌가 됐든 우가 됐든 나서면 다친다.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께, 할아버지께 듣고 자랐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정의감에 앞장서다가도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학생운동을 포기"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대학 3학년 때 인천에서 7년 동안 공장을 다니고 내려와 노동자, 농민, 시민을 위해 살았다"며, "언젠가 여수, 순천 사건도 진상이 규명되리라 생각을 했다. 오늘 이렇게 공개적으로 여순 영령을 위로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사가 열린 것을 뜻깊게 생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여순사건 때 사망한 사실도 고백하며,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 순천시장으로서가 아니라 순천시민의 한 명으로서, 전남 동부권 주민 한 명으로서 특별법 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인화 의원은 "여순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라며, "어린 시절 지금은 작고한 어머니로부터 여순사건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지금도 여순사건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기억"되어 있다 전하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20일 거행된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순천역에서 출발한 '상생의 띠잇기' 시민행렬이 입장하자 유족과 시민들이 박수와 눈물로 반겼다.
▲ 시민 행렬을 반기는 유족과 시민들 20일 거행된 여순 합동위령제에서 순천역에서 출발한 "상생의 띠잇기" 시민행렬이 입장하자 유족과 시민들이 박수와 눈물로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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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변화된 분위기에 김광호 전국유족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이전에는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쳐 한 적이 없었다"며, "정말 어떤 형태로든 시민혁명이라 본다. 이 학생들은 감히 말하자면 작은 독립군이라 불러주고 싶다"며 크게 반겼다. 그리고 "시민의식이 젊은이로부터 확산되어 승화되어서 여순'반란'이 여순'사건'이 되었듯이, 이젠 여순'항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순천시장의 연설에 대해 "인식 자체에 변화가 왔다. 지자체장들은 선출직이다. 임명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당당하게 표현"해 준 것에 고마워하며, "문재인 정부가 되면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에 전날 여수에 있었던 돌발상황을 언급하며 씁쓸해 했다. 앞서 19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고효주 집행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하던 중에 "극렬 좌익군인들의 반란과 학살로 시작된 사건", "대한민국 헌정체제를 부인하고 인민군을 끌어들인 것" 등이라 말하여 유족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김 위원장의 증조부는 항일운동을 했으며, 조부는 만세사건으로 19살 때 옥고를 치르고 건국독립훈장을 받았으나, 보도연맹 사건으로 1950년에 학살을 당했다. 경남 10대 재력가인 부친은 1960년에 결성된 전국유족회에서 총무간사를 하며 272구 시신을 수습, 김해 진영 보도연맹 사건 위령제를 한 죄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수감된 바 있다. 아들은 딴지일보 편집장으로 5대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일 열린 위령제에서 당시 여순항쟁 때 학살된 순천여학교 고 김생옥 선생의 유족과 제자가 성악가와 함께 <울 밑에선 봉선화>를 부르고 있다. 좌측부터  고인의 아들, 당시 16세인 제자, 성악가 그리고 고인의 며느리이다.
▲ 합창하는 고 김생옥 선생의 유족과 제자 20일 열린 위령제에서 당시 여순항쟁 때 학살된 순천여학교 고 김생옥 선생의 유족과 제자가 성악가와 함께 <울 밑에선 봉선화>를 부르고 있다. 좌측부터 고인의 아들, 당시 16세인 제자, 성악가 그리고 고인의 며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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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에서 제14연대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한 시발점인 순천은 민선7기로 취임한 허석 시장이 순천대 부설 여순연구소와 다양한 여순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서정진 순천시의회 의장이 여순특별위를 만들고 시의원들이 상생 띠잇기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주빈도시로 선정되어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19일 리퍼블릭 페스티벌 개막식 첫 공연으로 여순의 한을 다룬 '애기섬' 무용이 선보였다.

순천에서 위령제가 열린 2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는 순천시 후원으로 17일 여수에서 출발하여 순천시청에서 출정식을 갖은 자전거 순례단이 3박 4일 423.6㎞을 달려 동참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순천시와 순천대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학술대회가 순천대에서 열리며 주제발표 이외에 유족 증언 청취도 있을 예정이다.
 

태그:#여순항쟁, #여순위령제, #여순특별법 제정, #상생의 띠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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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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