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포스터

영화 <미쓰백> 포스터 ⓒ (주)리틀빅픽처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쓰백>은 앞서 개봉한 <암수살인>과 <베놈>, 후발주자인 <퍼스트맨> 등의 화제작 사이에서 흥행 여부가 불투명해보였다. 그러나 경쟁작의 덩치보다 더 취약한 지점은 신인 여성 감독의 여성 배우 원톱 영화라는 것이었다. 손익분기점이 80만 명일 정도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 아니지만, 여성영화 기근에 시달리는 충무로에서 <미쓰백>의 한 방은 그 어느때보다 필요했다.

그 결과, 개봉 열흘차인 21일 현재 40만 관객을 목전에 두며 손익분기점의 절반을 꼬박 넘었다. 유례 없는 박스오피스 역주행의 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는 <미쓰백>은 어떤 의미를 담은 작품일까.

여성 연대의 새로운 차원
 
 영화 <미쓰백> 장면

영화 <미쓰백>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주인공 백상아(한지민 분)는 고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하려 한 가해자를 칼로 찔러 전과와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다. 그를 더 아프게 만든 기억은 술에 취하면 자신을 때리던 엄마의 학대. 백상아는 본명이 아닌 '미쓰백'이라 불리거나, 스스로를 '미쓰백'이라 부르며 속 깊은 인간관계를 거부한 채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간다.

영화는 추운 겨울날 겉옷도 입지 않은 채 골목을 헤매던 아이 김지은(김시아 분)을 백상아가 발견하며 사건국면에 들어선다. 지은은 친부와 친부의 애인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지은과 같은 경험을 지닌 상아는 그를 결코 외면할 수 없고, 아이를 향하는 실체적 폭력과 공권력의 무심함에서 지은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미쓰백>이 그간의 아동학대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과 결을 달리하는 이유는 피해자와 구원자의 관계가 색다르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먼저 구원자의 성별이 여성일 때, 그 행위는 여성의 모성에서 추동된다는 클리셰를 <미쓰백>은 거부한다. 상아는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사랑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으니, 상아는 모성과 가장 멀리 서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은을 구하는 상아의 모습에선 모녀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가 더 짙게 드러난다. 여성 원톱의 액션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이 대게 어머니의 형상으로만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백상아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어른과 아이 관계의 새로운 지향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상아는 <아저씨>(2010)의 원빈처럼 힘세고 강력한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도희야>(2014)의 배두나처럼 공권력에 속한 인물도 아니다. 세차장과 마사지숍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아픈 기억에 묶여 성장하지 못한 '어른 아이'일 뿐이다. 그렇기에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하는 상아의 태도는 아주 서툴거나 차갑다. 이것은 어른의 아이를 향한 일방향적 구원이 아닌, 쌍방향으로 호흡하는 관계를 만들었다.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미쓰백과 미쓰백보다 더 큰 어른이 될 아이에 관한 영화다.

15년 차 한지민의 '발굴'
 
 영화 <미쓰백> 장면

영화 <미쓰백>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미쓰백>은 배우 한지민이 15년간 쌓아온 필모그래피의 전환점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수의 멜로드라마 '여주인공'으로서 흥행작을 보유한 한지민도 <역린>(2014)과 <밀정>(2016) 등의 대작 영화에서는 보조적인 캐릭터를 맡는 것에 그쳤던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여성 원톱영화의 타이틀 롤이 그에게 돌아갔다. 메가폰을 잡은 이지원 감독도 "처음엔 한지민 캐스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밝혔을 만큼, 미쓰백은 한지민이 배우로서 걸어온 길과 괴리가 큰 역할이다.

그러나 '한지민의 이미지'를 극복한 것은 결국 한지민 본인이었다. 한지민은 러닝타임 내내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연기로 미쓰백 캐릭터에 개연성을 더했다. 주황색 염색머리와 짙은 자주빛 립스틱, 화장기 없는 거친 피부표현으로 캐릭터를 한껏 생동감 있게 만들었고, 딱딱한 말투로 격동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불안을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미쓰백 캐릭터는 배우 이희준이 연기한 장섭과 만나 더욱 생동감을 얻었다. 극 중 백상아의 유일한 동행자에서 특정 국면 이후엔 추적자로, 그리고 또 다시 동행의 역할로 변모하는 장섭은 여성 중심 서사에서 적절한 보조자로서의 남성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다. 이희준은 <최악의 하루>(2016)와 <미옥>(2016) 등에 이어 여성 중심 서사에 보탬이 되는 남성 캐릭터를 맡아 인상을 남겼다. 아동학대를 방기하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공권력에 대한 여전한 기대와 희망이 정의로운 형사인 장섭의 얼굴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사회비판과 화해를 동시에 사려 깊게 그려낸다.

우리 앞에 반갑게 도착한 여성영화 <미쓰백>
 
 영화 <미쓰백> 장면

영화 <미쓰백>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미쓰백>은 여성영화를 응원한다는 점에서 극장을 찾아도 좋은 영화이지만, 그 자체로도 많은 장점을 지닌 영화다. 다만 아동학대를 둘러싼 선악구도가 다소 납작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나 대사쓰임이 어색한 순간들이 있다는 건 한계점으로 보인다. <미쓰백>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제기되는 비판은 영화에서 폭력이 꽤나 직접적인 수준으로 재현된다는 것인데, 피해 아동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낮게 유지하다가도 상처 입은 아이의 신체를 부감으로 잡는 등 재현의 윤리를 앞에 두고 카메라가 다소 혼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 아동을 연기한 배우 김시아가 상황에 몰입하지 않도록 제작진이 세심하게 신경을 쓴 부분이나, 스태프 대부분을 여성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여성 중심 영화에 목마른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며 '입소문 흥행'에 불을 붙였다.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우가 <리틀 포레스트>와 <마녀>, <허스토리>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쓰백>의 흥행이 염원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쓰백>은 폭력에 물 들은 가정이라는 어두운 사각지대에 가장 평범한 여성을 구원자로 등장시키며 사회 문제를 폭로함과 동시에 힘 있는 여성서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쓰백>이 대규모 제작비나 스타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것이 아니라, 여성 영화의 성공을 바란 관객들이 직접 역주행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은, 남성 중심 충무로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질 만한 현상이다.
미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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