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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 젊지는 않으신 분이셨다. 그분께서는 90년대 초에 다시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셨다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사라진 것이다. 학교에 계속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학생이 따로 무언가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차저차 해서 만난 학생은, 앞으로 휴거(일종의 종말)가 올 것이니 공부는 안 해도 된다며 오히려 당당하게 나와서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휴거가 예정되어 있으니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정된 휴거일이 지나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휴거를 믿은 학생의 대학 입시 결과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른바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90년대 초에 한 단체가 시한부적 종말론을 주장해 많은 사람들이 믿은 사건)이었다.

우리는 2018년을 살고 있기 때문에, 90년대 초에 종말론을 주장한 단체의 주장이 틀렸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에는 상당 수의 사람들이 휴거를 믿었다. 딱히 특정 시점에서 세계가 필연적으로 멸망해야 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도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존재한다.
 
왜사람들은이상한것을믿는가
 왜사람들은이상한것을믿는가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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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와 개연성이 부족한 현상을 믿는 풍조를 비판하는 책이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다. 제목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과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 과학 저널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이다. 그는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 과학과 싸워 온 전사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사이비 과학과 미신을 비판한다. 물론 이런 저자의 태도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자의 태도도 지나치게 확정적인 태도의 일종의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때문인지 저자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이 진보적인 까닭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진보란 시간에 따른 지식 체계의 누적적 증가이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은 진보적이지 않은데, 과거를 토대로 지식 축적을 허용하는 목표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전에 이루어진 잘못이 계속 반복된다.

저자가 책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비판하는 것들은 텔레파시를 비롯한 초능력, 임사체험, UFO에 의한 민간인 납치론 등이다. 동아시아보다는 비교적 영미권에서 성행하는 이야기들이기에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폭넓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에서 비판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임사 체험의 신빙성이다. 둥둥 떠서 유체를 이탈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 몸이 보이는 경험, 터널이나 나선형 방을 통해 환한 빛을 향해 가서 저편 세계로 나아가는 경험, 저편 세계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나 신을 보는 경험 등을 말하는데, 저자는 이들 중 일부는 환각적인 소망 경험일 확률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저자는 임사 체험을 겪는 사람의 상당수가 유대 기독교적 세계관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들 상당수는 사후 세계에 관한 비슷비슷한 관념을 줄곧 듣고 살았다.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한 경험의 근본을 생화학적 원인이나 신경생리학적 원인을 찾는 편이 낫다고 본다.
 
 임사 체험은 아직까지 설명되지 못한 뇌의 한 현상이라는 주장, 우리가 늘 진실이기를 바라 왔던 것, 곧 영생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주장,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개연성이 높은가? -159P
 
저자는 외계인 납치 음모론에 대해서도 강도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납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하나 하나 반박하며, 악마나 외계인이 끊임없이 인간을 학대한다는 설명보다는, 사람들이 환상을 겪으며 각자의 나이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환상을 해석한다는 설명이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의 기억은 굉장히 불완전하다. 그들의 기억은 UFO 영화, 공상과학 소설이 넘쳐나는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외계인 납치 현상은 특이하게 변성된 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편 과학적인 증거가 부족한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UFO에 의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를 확인했다.
 
생각과는 달리 그들이 전혀 미친 사람도, 무지한 사람도 아님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분별 있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만 비합리적인 경험을 하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그 경험을 진짜로 겪었다고 확신했다. 환각이니 자각몽이니 거짓 기억이니 내가 내놓을 수 있었던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그들을 달리 설득하지 못했다. -183P
 
딱히 이상한 사람들이 비과학적인 것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책은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게 되는 이유로 총 25가지 오류를 든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증명 책임을 혼동하거나, 소문과 실상은 같지 않은데 소문을 실상으로 믿거나, 대담한 진술이면 참이라고 믿거나, 일화를 들으면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한 것을 믿게 되는 오류가 25개나 된다니, 너무 많아서 기운이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는 긍정적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잡거나, 불관용을 고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 무수히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책이 출간된 지는 다소 오래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 읽어도 낡고 오래된 책은 아니다. 음모론이나 미신은 인류가 함께하는 역사 대부분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비과학적 현상에 대한 생각이나, 사고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이 예로 드는 사례를 볼 때마다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2007)


태그:#과학, #회의, #미신, #심령, #점성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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