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첫 팀이 결정됐다. 10월 19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열렸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디펜딩 챔피언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꺾고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월드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레드삭스는 이번 시즌이 21세기에 들어와서 10번째 포스트 시즌 진출이다.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헐값에 팔아 넘기기 전 마지막 월드 챔피언이 1918년이었는데, 그 이후 2004년까지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한 번도 가져오지 못하는 밤비노의 저주에 무려 86년 동안이나 시달렸다.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 3연승-3연패-8연승으로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레드삭스는 그 이후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 더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같은 시기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가 2009년 한 번 밖에 우승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저주를 깨고 난 뒤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드래프트 1순위 출신, 보스턴 입성 이후 기대에 못 미쳤던 프라이스

21세기에 들어와서 벌써 4번째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레드삭스의 팀 업적도 빛났지만, 사실 이 날 경기에서 빛을 본 진정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2012년에 20승을 달성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지만, 그 동안 포스트 시즌에서는 한 번도 선발승을 거두지 못했던 왼손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였다.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휴스턴 챔피언십 5차전 경기,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모습.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휴스턴 챔피언십 5차전 경기,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모습. ⓒ AP/연합뉴스


프라이스는 1985년생 미국 테네시 주 출신으로 2004 드래프트에서 19라운드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 대신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2007 드래프트에 다시 나와서 전체 1순위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에 지명되었고, 마이너리그를 평정하고 2008년 가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창단 첫 월드 시리즈까지 경험했다.

2009년부터 풀 타임 선발투수가 된 프라이스는 풀 타임 2년차인 2010년에 32경기 208.2이닝 19승 6패 평균 자책점 2.72에 188탈삼진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올랐다. 이 해에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매리너스)가 득점 지원 부족으로 13승에 그쳤을 뿐이지 그 이외의 지표에서 압도적인 임팩트를 보였기 때문에 프라이스는 워렌 스판 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빠른 공과 슬라이더 위주의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추가한 프라이스는 2012년 31경기 211이닝 20승 5패 평균 자책점 2.56에 205탈삼진을 기록했다. 제레드 위버와 공동 다승왕이었으며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따낸 프라이스는 사이 영 상 수상에 성공했다.

몸값이 수직상승하기 시작한 프라이스는 201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고, 2015년에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팀들이 데려오길 원하는 에이스로 군림하는 듯 했다. 2015년 시즌을 마친 뒤 프라이스는 FA 대박을 터뜨리며 레드삭스와 7년 2억 17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프라이스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보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은 레드삭스 팬들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투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레드삭스 이적 이후 장타를 맞는 일이 잦아졌고, 2017년에는 부상 여파로 인해 불펜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손목터널 증후군에 시달렸다. 그 여파로 프라이스는 전반기 19경기 10승 6패 4.42로 부진했다. 그러나 후반기에 부상 복귀 이후 11경기에서 6승 1패 2.25를 기록했고, 부상으로 이탈했던 크리스 세일을 대신하여 후반기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후반기에 부활한 프라이스, 징크스 깨뜨리고 PS 첫 선발승

사이 영 상도 한 차례 수상하고 정규 시즌 커리어 299경기(289선발)에서 1922.1이닝 143승 75패 평균 자책점 3.25 1853탈삼진을 기록했던 프라이스였지만, 그도 사람이었던 만큼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포스트 시즌 성적이 그랬다.

사실 유명한 에이스들 중에서 포스트 시즌만 되면 정규 시즌 커리어와 큰 차이를 보이는 투수들은 여럿 있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레그 매덕스도 포스트 시즌과는 그다지 좋은 인연이 아니었으며, 현역 투수들 중에서도 포스트 시즌에서만 충격적인 패배를 몇 차례 당했던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래도 한국 팬들에게는 류현진의 팀 동료인 커쇼의 포스트 시즌(27경기 22선발 9승 8패 1세이브 4.11)이 더 알려져서 그렇지 프라이스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커쇼보다 더욱 안쓰럽기까지 했다. 프라이스는 이전까지 포스트 시즌에서 2승 9패에 그치고 있었는데, 그 중 선발승은 한 번도 없었다.

프라이스는 이전까지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 기록을 보면 11경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9패에 그치고 있었다. 물론 퀄리티 스타트도 3번(2010년 ALDS 5차전 6이닝 3실점, 2011년 ALDS 3차전 6.2이닝 3실점, 2014년 ALDS 3차전 8이닝 2실점)이 있었지만, 3실점 이내로 막았던 경기가 11경기 중 4경기에 불과했다(1.2이닝 3실점 1경기).

커쇼가 2013년 NLCS 6차전 4이닝 7실점, 2014년 NLDS 1차전 6.2이닝 8실점(7회에만 6실점) 2경기가 강렬하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듯이 프라이스도 그러한 경기가 있었다. 2013년 ALDS 2차전에서 바로 레드삭스를 상대로 7이닝 7실점을 기록한 것이다(당시 레드삭스 월드 챔피언 등극).

그래도 2014년까지의 프라이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실점은 많이 하더라도 8이닝 경기가 한 차례 있었듯이 선발투수로서의 최소 역할은 하는 투수였다. 그러나 2015년 ALCS 6차전(3.1이닝 5실점)을 시작으로 프라이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4경기 연속으로 5이닝 미만 투구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특히 이번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는 양키스를 상대로 1.2이닝 3실점에 그쳤다.

그러나 레드삭스에게는 프라이스의 역할이 꼭 필요했다. 에이스 세일이 건강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고, 2016년 사이 영 상 수상자였던 릭 포셀로도 포스트 시즌 커리어 성적이 15경기(6선발) 1승 3패 5.09에 그칠 정도로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프라이스는 ALCS 2차전에서도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4.2이닝 4실점에 그쳤다. 애스트로스 타자들은 프라이스의 투심과 컷 패스트볼(아래 커터)을 집중 공략하며 홈런을 포함하여 프라이스를 조기에 끌어 내렸다. 다만 팀 타선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패전만 당하지 않았을 뿐이다.

1차전에 등판했던 세일의 어깨가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고, 세일은 1차전에서 4이닝 2실점(86구)으로 조기에 강판당했다. 안 그래도 디비전 시리즈에서 1차전 선발 등판 후 3일만 쉬고 4차전 구원 등판을 했던 세일이었기 때문에 알렉스 코라 감독은 세일에게 충분히 휴식을 준 뒤 6차전을 준비하게 했다.

결국 2차전에 등판했던 프라이스가 3일만 쉬고 5차전에 선발로 등판하게 됐다. 게다가 맞대결 상대는 잠시 팀 동료로 같이 지내봤던 저스틴 벌랜더였다. 벌랜더는 신인상을 수상했던 2006년부터 월드 시리즈를 경험하며 포스트 시즌 통산 25경기(24선발) 13승 7패 3.19로 강한 투수였다.

프라이스는 지난 2차전과 달리 체인지업을 39구나 던지면서 애스트로스 타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가장 빠른 공도 올 시즌 가장 빠른 시속 95.6마일까지 나왔다. 그 결과 프라이스는 6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펼치며 벌랜더와의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93구).

먼저 WS 올라간 레드삭스, 펜웨이 파크에서 상대 기다린다

프라이스가 포스트 시즌에서 6이닝 이상 던지면서 실점하지 않은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대 투수 벌랜더는 신인 시절인 2006 월드 시리즈 5차전을 제외한 나머지 4번의 일리미네이션 게임(지면 탈락)에서 4연승으로 위기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강한 투수였다(일리미네이션 이전 5경기 4승 1패 1.21).

그러나 이번만큼은 기필코 스스로 불운을 떨쳐내겠다는 프라이스의 강력한 의지는 결국 개인 포스트 시즌 첫 선발승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포스트 시즌 통산 선발 12경기 1승 9패 5.63). 반면 벌랜더는 1번의 완봉승을 포함한 일리미네이션 게임 연속 무실점 기록이 26이닝에서 중단되었고, 6이닝 4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프라이스가 호투하자 레드삭스의 팀 동료들도 그의 징크스를 깨뜨리기 위해 도왔다. 프라이스가 마운드에서 내려간 뒤, 7회말 2사 후 애스트로스가 마윈 곤잘레스의 홈런으로 4-1 3점 차를 만들었다.

그러자 레드삭스는 3차전 선발투수였던 네이선 이볼디가 하루만 쉬고 구원 등판하는 투혼을 발휘, 1.1이닝 무실점으로 애스트로스의 추격 의지를 꺾어 버렸다. 9회말 마지막 수비는 마무리투수 크레이그 킴브렐이 올라와서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3번째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던 2013년 이후 5년 만에 월드 시리즈 무대에 올라간 레드삭스는 이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의 승자를 기다리게 됐다. 정규 시즌 30팀 중 승률 전체 1위였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 모든 라운드 홈 어드밴티지를 확보한 레드삭스는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로 돌아가서 상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2004년 와일드 카드로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던 레드삭스는 2007년과 2013년에는 정규 시즌 승률 1위를 차지한 뒤 월드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을 경우 우승 확률 100%를 유지하고 있다. 프라이스 개인의 저주도 풀어낸 레드삭스가 21세기 월드 시리즈 진출시 우승 100% 확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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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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