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 영진위

 
내년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 예산 편성에서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독립예술영화 관련 지원 사업들이 동결되거나 오히려 삭감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화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영진위 측은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관련 예산 편성이 막혔고 일부 사안에 대해선 오해가 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예산 증액을 기대했던 독립영화진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18일 열린 영화진흥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영진위 관계자에게 "예술영화 지원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냐"며 독립예술영화 쪽 예산 확보가 안 된 문제를 거론했다. 최 의원은 "영진위의 관련 예산 삭감 관련 독립영화인들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문재인 정부의 의지에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오석근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하고 피해 복원을 약속했는데 오히려 내년 사업에서 독립예술영화와 관련된 개별사업들 예산이 대폭 삭감되거나 동결됐다"고 밝히면서, 구체적 삭감 내역을 공개했다.
 
독립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영화교육 지원사업'의 경우 올해 예산이 10억 9000만 원이었다. 내년엔 여기서 4억9000만 원이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또 올해 예산이 26억 2900만 원이었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은 내년에는 3억1000만 원이 줄어든 23억1600만 원으로 책정됐고,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사업'과 '독립예술영화 개봉 지원 사업'은 각각 3년 연속 동결됐다고 밝혔다.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이 2016년 1039건에서 2017년 1237건으로 19.1% 급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과 개봉지원 예산의 3년 연속 동결은 사실상 삭감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오석근 영진위원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정부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저희들의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라고 국회 차원의 대책을 요청했다.
 
"기획재정부 심의에서 삭감됐다" 
 
 지난 9월 18일 한국독립영화협회 20주년 행사에 참석해 인사하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지난 9월 18일 한국독립영화협회 20주년 행사에 참석해 인사하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 김일안


독립예술영화 삭감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계는 영진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한 중견 영화인은 "정말로 소가 웃을 결정"이라며 "한국영화가 재벌기업의 제작과 배급 그리고 상영의 수직계열로 상업영화의 장터로 변한 지 오래되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정책과 결정이 한심하다"라고 비판했다.

한 독립영화 감독은 "믿을 수 없다"며 실망하는 표정을 보였고, 일부에서는 "도종환 장관과 문재인 정부의 수준"이라거나 "적폐 청산을 말로만 하고 있다"는 등의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영진위 측은 영화계의 비판에 적극 해명을 내놓고 있다. "영진위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심의 과정에서 독립영화지원예산을 감액했다"는 것이다.

영진위 실무 관계자는 "기재부가 다른 예산들은 받아주면서 독립영화 지원 예산은 삭감했다"며 "영진위 차원에서 위원장까지 나서 노력을 했으나 정부 심의과정에서 기재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독립영화예산이 영진위 내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상영관 지원과 영화제 지원은 우선순위로 설정했으나 기재부에서 통과시키지 않았고, 다큐멘터리 지원 예산과 단편영화 지원 예산은 늘었다"고 해명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이어 "영화교육 지원사업은 삭감이 아니고 동결"이라며 "충무로에 있는 서울영상미디어센터 직영을 중단하고 위탁으로 방향을 정하면서 그 운영예산이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진위 측은 "위탁 예산을 다른 항목에 넣었는데, 그 마저도 배정을 받지 못해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영진위 전체 예산 14.1% 늘었는데...

최근 영진위에서 예산 관련 설명을 들은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제작 지원 등의 예산은 계속 줄이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위원장이 나름 열심히 노력은 했으나 기재부에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삭감된 예산이 생겨나면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영진위 내부의 문제의식과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독립영화 감독은 "블랙리스트 때문에 피해 본 게 대부분 독립영화 쪽인데, 의지와 문제의식이 있었다면 당연 예산에 반영되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독립영화 감독은 "영진위의 예산 확보 전략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내년 영진위 전체 예산이 14.1% 증가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예산만 늘지 않은 터라, 영진위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진위 측은 독립영화진영의 강력한 반발에 곤혹스러워하면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진위 실무 관계자는 "국회를 통해 빠진 예산들을 보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서 "기재부에서 막혔지만 독립영화 예산은 영진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어떻게든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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