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블하는 손흥민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드리블하는 손흥민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이 변했다.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2018년 하반기를 보내고 있는 손흥민이 득점보다 도움에 집중하고 있다. 손흥민의 역할 변화는 벤투호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파울로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16일 오후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 대표팀 친선전에서 파나마와 2-2 무승부를 거뒀다.

아쉬운 무승부였다. 한국은 나흘 전 우루과이전 승리의 기세를 이어 전반 35분까지 상대를 압도하며 스코어를 2-0까지 벌렸다. 선수들의 기민한 움직임과 천안에 모인 만원 관중의 함성이 더해져 한국의 득점이 계속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슛하는 황의조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황의조가 슛을 하고 있다.

▲ 슛하는 황의조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황의조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이 방심한 틈을 타 파나마가 반격에 성공했다. 전반 막판 세트피스 상황에서 아브디엘 아로요에게 헤더 만회골을 내준 한국은 후반 초반에는 롤란도 블랙번에게 동점골까지 허용했다. 경기 종료 직전 상대 공격수의 헛발질이 없었다면 굴욕적인 역전패도 가능했을 정도다.

이날 경기에서 주장 손흥민은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왕성히 누볐다. 경기 종료 후 "많이 힘들어요"라는 말을 남긴 것이 무색하게 경기장에서는 앞장서 몸을 던졌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과 과감한 태클로 상대의 빌드업을 방해한 손흥민이다.



파나마전은 대표팀에서 완전히 변한 손흥민의 역할을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손흥민은 철저히 '도우미'로서 기능했다. 과감한 슈팅보다는 크로스와 침투 패스로 동료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여름 있었던 아시안게임부터 이어진 흐름이다.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의 성적보다는 금메달이란 목표가 절실했던 손흥민은 슈팅을 최대한 자제하고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황의조, 이승우 등이 날선 득점력을 보여줬기에 손흥민은 그들의 돕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역할의 변동은 성인 대표팀에도 이식됐다. 이제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공격 지역 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통하는 공격수의 속도와 드리블, 패스 능력은 벤투호의 스피디한 공격에 큰 힘이 됐다.
 
방향 전환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손흥민이 방향전환으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있다.

▲ 방향 전환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손흥민이 방향전환으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이 슈팅을 아끼자 덩달아 다른 공격수들의 공격 리듬이 살아났다. 과거 손흥민에게 무리하게 최종 슈팅을 요구하던 기조와 달리 손흥민을 미끼로 활용해 패널티 박스로 적극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전반 32분 터진 황인범의 골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용이 패스를 받아 패널티 박스 오른쪽 지역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에게 파나마 수비수 세 명이 붙었다. 손흥민은 굳이 무리하지 않고 공의 소유권을 지켰고, 깔끔한 왼발 크로스로 황인범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손흥민이 막히면 득점이 요원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완벽히 팀 플레이에 녹아든 손흥민 덕에 다른 공격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벤투호는 손흥민의 득점 없이도 점수를 만들 수 있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서 필요한 손흥민의 득점력

공격에 있어서 손흥민의 득점력에 많은 것을 기대야 하는 점은 수년간 한국 축구의 고민거리였다. 벤투호가 이러한 고민을 평가전 네 경기 만에 일정 부분 해소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손흥민의 장점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계속해서 부여한 것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여전히 손흥민은 한국 축구가 보유한 가장 날카로운 창이다. 어떤 상대든 뚫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특별한 그의 득점력을 굳이 우리 스스로 봉인할 필요는 없다.

손흥민의 득점은 벤투호가 다가오는 2019 AFC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한 골이 대회의 명운을 가르는 메이저 대회에서 치명적인 킬러의 활약 여부는 두말 하면 입 아프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위력을 몸소 느꼈다.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에서 손흥민은 개인 능력으로 환상적인 골을 터뜨려 16강 진출에 불씨를 살렸고, 3차전 독일과 경기에서는 폭발적인 속도로 쐐기골을 넣었다.

2015년에 있었던 아시안컵도 마찬가지다. 8강전 우즈베키스탄과 120분 간의 혈투에서 멀티골, 결승전 호주와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뽑아낸 주인공 모두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의 등장 이후 한국 축구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대부분 손흥민이 함께 했다.

손흥민이 도움보다는 득점에 특화된 선수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상급 공격수치고는 투박한 터치와 단순한 드리블, 부족한 헤더 능력 등 단점이 뚜렷함에도 손흥민이 EPL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폭발적인 속도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한 득점력 때문이다.
 
파나마와 무승부... 지친 선수들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2-2 무승부로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

▲ 파나마와 무승부... 지친 선수들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2-2 무승부로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이 정교한 패스를 장착한 선수여서 그를 '도우미'로 활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모두가 알듯이 손흥민의 최대 강점은 슈팅이지 패스가 아니다. 파나마전에서도 좋은 패스만큼이나 아쉬운 패스 시도로 상대에게 공을 내준 손흥민이다. 

또한 간결한 슈팅 시도 대신 동료와 협업을 위해 공을 오래 잡고 있다 보니 공의 소유권을 잃는 횟수가 전보다 급격히 늘어났다. 남태희, 황인범을 비롯해 구자철 등 공을 잘 다루는 우수한 공격형 미드필더를 대신해 굳이 손흥민이 공을 길게 소유할 이유가 없다. 손흥민의 역할 변화를 인지한 파나마가 시간이 흐를수록 손흥민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손흥민의 득점력 회복이란 숙제가 주어진 벤투호다. 아시안컵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문제 해결이 시급하지만, 이제 아시안컵 본선까지 손흥민을 차출할 수 없다. 손흥민 없이 손흥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벤투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에 잠긴 벤투 감독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대한민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 생각에 잠긴 벤투 감독 16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나마의 경기. 대한민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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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벤투호 파나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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