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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강경화 외교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강경화 외교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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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조치는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국내 문제다.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그해 5월 남북교역 중단 등을 위해 내놓은 조치다. 이처럼 순수한 내정 문제를 놓고 엉뚱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승인' 문제를 운운했다. 한국이 자국의 승인을 받아야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망언은 한국인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불쾌하게 하는 것들이 꼭 미국에서만 날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도 미국을 숭상하는 세력이 있어 이따금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런 세력이 다져놓은 유산 중 하나가 '미 국무부' 또는 '미 국무성'이라는 표현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친미파가 즐겨 사용한 용어다. 해방 직후에는 후자가 더 많이 쓰이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전자가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시작은 외교부 혹은 외무부

한국에서 '미 국무부'로 불리는 관청은 미합중국 최초의 연방 관청이다. 이 관청은 처음에는 외교부 혹은 외무부란 명칭으로 출발했다.
 
"재무부나 사법부보다 더 오래된 국무부는 1789년 의회의 법에 의해 외무부(Department of Foreign Affairs)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동년 9월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나이젤 보글스와 로버트 맥마혼의 <미국 정치와 정부> 중에서
 
1789년 7월 27일 외무부로 출발했던 부서가 2개월도 안 돼 국무부로 개칭된 것은, 1789년 9월 개편과 함께 이 부서가 합중국의 내부 사무까지 처리하게 됐기 때문이다. 합중국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사안도 함께 취급하는 부서가 된 것이다.
 
"1789년 9월 15일 법(22 U.S.C 2651)에 의해 국무부로 개칭되면서 옥새(Great Seal) 보관, 의회에 의해 제정된 법률의 출판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04년에 발행한 <주요 제국의 행정제도 동향 조사: 미국의 연방정부조직> 중에서
 
옥새 보관이나 법률문서 출판은 합중국 내부의 문제다. 최초의 연방 관청이 이런 국내 사무와 외교 사무를 함께 관장한 것은, 이때만 해도 연방정부의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연방 관청은 한 번에 생기지 않고, 오랜 기간을 두고 필요에 따라 하나씩 생겨났다. 그래서 최초의 관청이 국내외 사무를 함께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나라는 국가, 즉 스테이트(state)들의 연합으로 출발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합중국 바깥에도 state가 있고 안쪽에도 state가 있었다. 그래서 바깥의 state와 안쪽의 state를 동시에 상대하는 이 부서의 명칭으로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보다는 Department of State가 더 적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연방정부는 영향력이 약했다. 미합중국의 내부 통합력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를 즈음한 시점부터 연방당이 목소리를 낸 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때만 해도 연방주의세력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합중국으로 통합돼 있었다면, 연방 통합을 외치는 연방당이 존립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연방당이 사라진 것은 1820년대다. 1820년 제9대 대통령선거에는 후보도 내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 역시, 역설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 시기에 합중국의 정치적 통합이 상당 부분 이뤄졌기에, 연방당이 더 이상 존재의의를 갖기 힘들었던 것이다.

1820년께야 연방 통합이 고도화됐다는 것은, Department of State가 창설된 1789년 당시만 해도 주(state)의 발언권이 매우 높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당시의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합중국 바깥의 state를 상대하는 것 못지않게 합중국 내부의 state를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Department of State는 당시로서는 적절한 명칭이었다.

그런데 여타 연방 관청의 신설과 함께 국무부의 권한이 점차 축소됐다. 1789년에 재무부·국방부가 신설된 데 이어, 오랜 세월 뒤인 1849년에 내무부, 1870년에 법무부, 1889년에 농무부, 1913년에 상무부가 설치됐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국무부는 외교문제만 전담하는 부서로 축소돼 갔다. 그래서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라는 원래 이름으로 환원했어야 옳지만, 오랜 관행 때문에 Department of State란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국무'라는 용어의 사용법
 
미국 국무부.
 미국 국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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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Department of State는 직무상으로 보면 한국의 외교부나 외무부에 상응한다. 하지만 그렇게 번역하기에는 state라는 말의 어의가 너무 좁다. 이 단어에서 외교나 외무란 뜻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외교 부서를 국무부로 번역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이는 한자문화권의 용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가간(國家間)을 의미하는 국제(國際)란 한자를 사용해 국제부로 번역하는 등등의 대안이 없지 않는데도 이를 국무부로 번역하다 보면, 국무(國務)란 말이 한자문화권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때부터 국무원이란 기관을 뒀다. 1961년 5.16 쿠데타까지는 대한민국정부에도 있었다. 국무원 수장인 국무총리는 외교를 포함한 국정 전반을 통괄했다. 북한에서도 '국무'는 동일한 뉘앙스로 쓰인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정부 직함이 국무위원장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국무원 총리도 외교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총괄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외교 부서를 국무원으로 번역하면, 국무부가 국제사무와 국내사무를 통괄하는 기관인 것 같은 느낌도 들 수 있고, 국무부가 여타 국가의 외교부보다 상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 수 있다.

국무부란 번역어는 19세기 동아시아 역사와도 충돌한다. Department of State와 명칭이 비슷한 관청이 1861년 청나라에서 설치됐다.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란 관청으로, 대외사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이 관청은 총서(總署)라는 약칭으로도 불렸지만, 외국 사무를 총괄하는 관청이었으므로 총리각국사무아문이란 여덟 글자의 핵심은 각국아문(各國衙門)이었다. 그렇다면 Department of State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총리각국사무아문 정문.
 총리각국사무아문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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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사를 연구하는 동아시아인 학자들은 총리각국사무아문을 국무부로 번역하지 않는다. 약칭을 써서 총서로 부르든가 아니면 외교부로 번역한다. 이처럼 동아시아에 있었던 동종 관청은 외교부로 부르고 미국에 있는 동종 관청은 국무부로 부르는 것은 균형을 상실한 번역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Department of State 속에 국가를 뜻하는 state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국무원으로 번역하는 것은, 이 부서의 연혁과도 맞지 않고 한자문화권의 용례와도 맞지 않다. 또한 청나라 총리각국사무아문에 대한 번역어와도 맞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요청하지도 않은 국무원이란 번역어를 사용함으로 인해, 한미간의 국제사무까지도 마치 미국 국내사무로 취급되는 것 같은 인상을 우리 스스로 만들 여지가 없지 않다.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 국무총리의 카운터파트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여지도 없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경솔한 언행을 문제 삼기 전에, 해방 직후의 친미세력이 다져놓은 우리 내부의 숭미적 요소부터 먼저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태그:#트럼프 승인 발언, #국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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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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