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의 신곡 'Wannabe Rapper'가 힙합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산이의 신곡 'Wannabe Rapper'가 힙합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 브랜뉴뮤직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어. 텔레비전에 래퍼가 된다면' 천진난만한 분위기의 코러스, 짧은 음절 단위로 끊는 랩, 무거운 베이스와 함께 전환되는 곡 분위기. 그리고 롱테이크로 촬영된 뮤직비디오까지.

래퍼 산이의 신곡 'Wannabe Rapper'를 접한 순간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도널드 글루버)의 'This Is America'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요즘 한국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Wannabe Rapper'가 뜨거운 감자다. 긍정적인 의미로 뜨거운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오마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곡과 뮤직비디오는 어디까지나 'This Is America'의 오마주(Hommage)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마주는 '존경'이라는 프랑스어에서 온 용어로서, 예술가의 특정 작품의 핵심적 요소를 차용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Wannabe Rapper'는 원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지 못했다. 랩의 플로우, 비트가 진행되는 방식, 뮤직비디오의 구성 등 원본의 모든 작법을 그대로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팬서비스로 만든 패러디 영상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아티스트의 이름을 붙여 발표한 작업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Wannabe Rapper'에 대한 힙합 팬들의 시선은 유독 차갑다. 우선 그가 '오마주'한 원본이 몹시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선 'This Is America'가 왜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응을 얻었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This Is America'는 파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도널드 글루버가 기괴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총으로 합창단을 쏴 죽인다. 계단에서 차 위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나,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파격적인 형식미 아래에는, 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그의 과장된 표정과 춤은 시대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짐 크로우법'으로 상징되는 흑백 인종차별의 역사를 꼬집었고, 현재 흑인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과거 켄드릭 라마가 그랬듯, 백인 중심의 사회에 기여하는 흑인들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8년 현재, 지금도 미국에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총을 맞아 죽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음악이 시대와 맞물리면서, 'This Is America'는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뮤직비디오 속 도널드 글루버는 그 기괴한 표정으로 '이게 미국이다'라고 절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이의 '수박 겉핥기', 더 깊이 있는 자세 필요해
 
산이가 'This Is America'에 영감을 받았다면,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재치있게 풍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빌려온 것은 말 그대로 껍데기 뿐이다. '대한항공', '남북', '한남', '김치', 'OECD 자살률 1위' 등 언론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나열하고 있긴 하다. 어디까지나 나열하는 정도다. 그의 가사에서 특별한 통찰력은 찾아볼 수 없다. 산이의 가사는 무게감없는 양비론, 그리고 정치혐오적 정서에 기대고 있다. 

"걔넨 걍 hate all 남북 편 갈러 한남 김치 좌익 우익 (fight) 싸움 구경 (yap yap)
우린 달라 우린 틀려 모 아님 도 흑 아님 백" - 'Wannabe Rapper(산이)' 중


사실 무엇이든 가볍게 접근하려는 산이의 방식은 새롭지 않다.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당시 발표한 '나쁜 X'(Bad Year)은 시류에 편승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훗날 절친한 버벌진트가 비판했던 것처럼, 그는 '저항 대상(박근혜)의 여성성'을 공격하는 오류까지 저지른 바 있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그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넘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도
말 안 되는 거 작동 안 되는 거 산이에겐 미안하지만
상대는 더 해상도 높은 Vision으로 까야만 한다는 거"
- '그것이 알고싶다'(버벌진트) 중

"여혐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너 나/오 제발 please 모두 시끄러!"
- 'I Am Me'(산이) 중


산이는 해상도 높은 비전으로 재무장했을까? 그렇지 않다. 2017년 발표한 'I Am Me' 역시 그저 얕은 자세로 일관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갈등을 '의미 없는 바보짓'으로 뭉뚱그린다. 특정 진영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가치도,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산이의 접근 방식은 최근 KBS <개그콘서트>가 보여주는 시사 개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이슈를 언급하기만 한다고 해서 박수를 받는 시대는 지났다. < #mentalhealth&socialissues >라는 앨범 제목이 무색하다.

물론 산이는 랩을 잘 한다. 빈틈없는 라이브 실력과 장난스러운 콘셉트, 기발한 라임 구성은 여전히 그의 무기다. 발라드 래퍼라며 비난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산이의 실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쇼미더머니4>의 실질적 우승자는 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았는가(참고로 우승자는 베이식이다).

그러나 'Wannabe Rapper'를 듣고 있으면, '랩을 잘하는 것'과 '음악을 잘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느끼게 된다. 산이는 이 곡을 통해 '모두가 내 발아래(2014년)'에 이어 최악을 갱신하고 말았다. 그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길 바란다. 적어도 '한 여름밤의 꿀'이나 'Me You'는 유쾌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었다.  
산이 워너비래퍼 차일디쉬 감비노 오마주 THIS IS AMERICA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