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춘천, 춘천> 포스터

영화 <춘천, 춘천> 포스터 ⓒ 무브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소라의 명곡 '바람이 분다'의 가사 중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구절이 있다. 함께한 추억을 남긴 연인이라도 서로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그 감정이 다르게 남는다는 의미다. 감정은 그때의 느낌만으로 남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한다. 그러기에 추억이란 시간은 고정적이지만 추억의 서술은 유동적이다.
 
영화 <춘천, 춘천>은 춘천이라는 공간적 장소를 중심으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이 해석하는 춘천이란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춘천과 거리가 멀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 속 춘천은 낭만적이다. 통기타 하나 메고 떠나고 싶은 청춘의 느낌과 서정적인 멜로디 같은 가을의 정취가 반겨줄 것만 같다.
 
허나 영화가 그려내는 춘천에는 낭만도 서정적인 감성도 없다. 이는 춘천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청년 지현(우지현 분)의 이야기에서 도드라진다. 서울에 면접을 보고 춘천으로 돌아온 그의 꿈은 상경이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한 그이지만 춘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의 제약이 따른다. 재개발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춘천은 그에게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에게 춘천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장면은 세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재개발 지역을 향하는 장면이다. 그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재개발을 위해 해체한 지역에서 소리 없이 절규한다. 지현에게 서울이 재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를 의미한다면 춘천은 재개발을 위해 해체된 잔해를 의미한다. 그는 이 잔해를 벗어나 높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로 오를 수 없다.
 
두 번째는 마라톤 장면이다. 지현의 주변으로 달리고 있는 남자들은 모두 중장년층이다. 젊은이인 그는 뛰지도 걷지도 않은 채 그들 사이에서 바라보고만 있다. 그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곳에 속해 있다. 세 번째는 유람선을 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중 두 번째 장면이 인상적이다. 지현은 갑판으로 나왔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문이 잠겨 있다.
 
두들겨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현의 모습은 갑판 위의 추위와 아무도 없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막막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지현의 '춘천'과 대비되는 게 흥주(양흥주 분)와 세랑(이세랑 분)의 '춘천'이다. 두 사람에게 춘천은 우연이다. 우연히 온라인상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고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바꾸고자 한다.
  
 영화 <춘천, 춘천> 스틸컷

영화 <춘천, 춘천> 스틸컷 ⓒ 무브먼트

 
이 두 사람이 지현과 대비되는 이유는 공간에 있다. 지현이 차가운 야외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재개발 지역에서 절규를 하는 반면 흥주와 세랑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하루를 보낸다. 흥주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두 사람은 손님으로 식사를 한다. 젊은 세대인 지현은 춘천에서 좋지 못한 기억만 쌓아가는 반면 흥주와 세랑은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 간의 격차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주와 세랑은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 속 중년 커플처럼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서로에 대한 어색함이 풀린 후에도 두 사람은 말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만 있다. 청년은 우연히 태어난 고향에서 떠나기를 바라고 중년의 커플은 운명처럼 만남이 지속되길 원한다. 하지만 청년에게 고향은 운명이고 중년 커플에게 춘천은 다르게 적힐 수 있는 우연의 만남을 이룬 장소다.
 
지현과 흥주, 세랑은 같은 장소에서 다른 에피소드를 겪지만 그들이 관객에게 주는 감정은 같다. 이는 우연의 반복이 결국 운명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장소에 적히는 추억은 다르지만 사람이 겪는 감정이라는 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청춘이 청춘의 고민이 있고 외로움이 있는 거처럼 중년 역시 중년의 고민과 외로움을 안고 있다. 감독은 같은 장소에서 추억을 만드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세 남녀를 통해 자연스러운 공감 여행을 이끌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춘천,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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