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 (주)우리네트웍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사회는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을 하나의 규범으로 설정하고 그것이 수호해야 할 최상의 가치인 것처럼 말하지만, 왜 세상에는 가족 간의 갈등과 충돌 심지어 관계의 파탄까지 그리는 영화와 소설들이 넘쳐날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얼마전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을 다시 보면서였다. 이 작품의 내용은 별다른 축약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한데, 뿔뿔히 흩어졌던 한 가족이 장례식을 통해 다시 모이지만 결국 서로를 견디지 못해 다시 갈라진다는 것이다. 망가지는 게 그 가정 뿐이랴. 이 집안의 첫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 분)는 이혼을 전제로 남편과 별거 중이고 둘째 카렌(줄리엣 루이스 분)의 약혼자는 결혼 전부터 바람을 피울 궁리나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 가족의 유일한 문제점은 다른 집안은 하나만 겪을 문제를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품위와 교양을 방패처럼 두르고 있던 주인공들이 나중에는 우악스럽기 그지 없게 다툼을 벌인다는 점에서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아주 탁월한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이야 괴롭기 그지 없겠지만 멀찍이서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헛웃음을 참을 도리가 없다. 처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객석에 몸을 푹 묻고는 내내 낄낄거리길 반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순간이 단 하나 있었다. 딸들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던 바이올렛(메릴 스트립 분)이 구토를 호소하며 차를 멈추고, 그러다 홀린 듯이 시골의 벌판을 달리는 장면. 바바라는 그런 자신의 엄마를 쫓아가며 이렇게 말한다.

"대체 어딜 가는거야, 갈 데도 없는데."

'가족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만드는 갈등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 (주)우리네트웍스

 
이 작품에서 바이올렛은 영화의 시작부터 남편을 잃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이미 오랜 시간 구강암을 앓아 왔으며 '입이 타들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제에 의존한다. 홀로 남겨진 병에 걸린 약물중독자의 삶. 나는 바이올렛이 어디로 가고 싶어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는 알고 있다.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상처와 고통만 남은 삶으로부터. 씁쓸한 것은 그녀가 비빌 언덕이 결코 자신의 가족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 바이올렛이 차라리 허허벌판을 달리기를 선택했겠는가. 심지어 이 영화의 결말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결국 모든 가족이 떠나고 그녀가 스스로를 의탁한 사람은 남편이 죽기 전에 고용한 입주 가사노동자 조나였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바이올렛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녀와 가장 먼 존재, 가족이 아닌 완벽히 낯선 타인에게 몸을 기댔다는 점이 의아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 중 어느 누구도 규범화된 '가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엄마인 바이올렛은 가족들을 보듬기는 커녕 시종일관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첫째 딸인 바바라 역시도 부모를 돌보기는커녕 이미 그들을 떠나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물론 나는 이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나는 오히려 '딸'이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역할이 부과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기 때문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이는 끝까지 갈등의 도화선으로 남는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해주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가령 바이올렛만 해도 영화 내내 바바라에게 '내가 아플 때는 오지도 않더니'라는 볼멘 소리를 하고 결국 잘될 일도 그르친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여기에서 훨씬 자유로운 조나가 마지막에 바이올렛의 옆에 남을 수 밖에 없다.

혈연 중심인 '정상 가족'의 한계와 '다른 가족'의 가능성
 
 영화 <당신의 부탁> 스틸 컷.

영화 <당신의 부탁>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 가족'과 다른 가족 관계가 오히려 더욱 서로를 배려하고 긴밀해지기 유리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영화 <당신의 부탁>은 그런 '다른 가족'이 전면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 효진(임수정 분)은 2년 전 죽은 남편이 자신과 결혼 전에 낳았던 아들 종욱(윤찬영 분)과 갑자기 함께 살게된다. 종욱을 돌봐주던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 이유다. 물론 이들의 관계가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않다. 종욱은 효진에게 거짓말을 하며 친엄마를 찾겠다고 돌아다니고 효진은 그런 종욱이 행여나 돌아오지 않을지 불안해한다. 두 사람이 결국 충돌하게된 날, 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는 효진에게 종욱은 그녀가 자신만 보면 "무슨 사고 안 치나" 하는 눈빛인데 무슨 말을 하냐고 응수한다.

흥미롭게도 종욱의 이 대사와 비슷한 말을 효진은 영화 초반에 자신의 엄마인 명자에게 한다. 왜 종욱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냐는 명자의 다그침에 효진은 항상 자신만 다 틀렸고 부족하고 뭘 모른다고 하는 엄마에게 어떻게 말하겠냐고 대답한다. 아마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가족들과 비슷한 다툼을 해보지 않았을까.

가량 나만 해도 20대 후반 때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이 들면 '그러게 내 말대로 공무원 시험을 안 봐서'라는 부모님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어렵게 본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혹은 새로운 진로를 선택해도 가족들과 말하기를 꺼려했었다. 미워서 싫은 소리를 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가족이라면,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상대방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굴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기대가 무너지면 상대방의 선택을 부정하고 쓴 소리를 하게 된다. 아마 효진도 초반에는 '정처없이 떠밀려 온 아이'인 종욱에게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자신의 엄마와 똑같이 그를 대했을 지도 모른다.

가족 관계에 진정으로 필요한 신뢰
 
 영화 <당신의 부탁> 스틸 컷.

영화 <당신의 부탁>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당신의 부탁>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효진에게 종욱은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효진은 예상 밖의 답을 한다. 그렇다고 나는 모른다고. 스쳐가듯 지나가는 대사이지만 나는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 임신한 친구의 아이를 맡아 함께 키우려는 종욱에게 효진은 그의 선택을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아이를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말을 들으면 너희가 맞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누가 키우지 말아야 할지 따져보면 그것 역시 너희'라는, 종욱을 맡으려 했을 때 자신이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 종욱은 묻는다. 왜 자신과 같이 사냐고. 그러자 효진은 살다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뭔가를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한 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해."

나는 효진의 이 말이 깨달음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뢰를 표하고도 있다고 생각했다. 효진의 말처럼 그녀는 종욱을 모른다. 임신한 10대 소녀 주미(서신애 분)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효진은 그들이 무슨 선택을 해야할지 강요하거나 혹은 내린 결정을 부인하지 않는다. 단지 담담히 모든 선택에는 뒤따르는 것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결국 최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우리가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있는 더 나은 결정과 행동이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이 갑자기 아이를 맡든,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든, 멀쩡해 보이던 결혼 생활을 정리하든 간에 말이다.

나는 이런 태도가 상대방과 나의 간극을 확인하고 끝끝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좌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끝끝내 서로를 완벽히 알 수 없고, 때로는 그래서 상대방이 나의 예상과 엇나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선택을 믿는다는 굳은 신뢰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혈연이나 그것에 기반한 역할의 기대가 아니라 이런 믿음이 아닐까.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과 종욱은 영화 내내 그런 관계를 쌓아나간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가족 관계에서건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당신의 부탁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가족 가족 다양성 신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