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 SBS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소환됐다. 압수 수색은 18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물벼락 갑질' 전 조현민 진에어 이사장, '운전기사 폭행' 이명희 일우 재단 이사장까지 구속영장만 다섯 번 발부되었다. 그런데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조양호 회장은 건재하다. 심지어 땅콩 회항으로 잠시 배제된 조현아 부사장은 3년 4개월 만에 일선에 복귀했다.
<SBS 스페셜>은 총수 일가의 경영, 각종 갑질과 인성 논란이 반복되는 '오너 중심'의 우리 기업 문화에 대한 화두를 내건다. 'ceo, 사표를 쓰다' 편을 통해 방송은 오너 일가 중심의 황제경영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외국 사례를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쫓겨나는 미국의 CEO들
이제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화의 여정에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의 과거가 있음을 기억한다. 과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이폰'의 신화는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황제경영은 그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나아가 적폐로 기능할 수 있다고 다큐는 꼬집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던 우버 택시. 이 화제의 우버 택시 사주는 실업자가 됐다. 108개국에 우버 택시 앱을 개설하여 80조 원의 이익을 남겼던 스타트업 신화를 쓴 CEO는 지난 2017년 전격 사퇴했다.
<포츈> 지의 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취재한 트래비스 갈라익 우버 택시 창시자는 강한 개성과 전투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기 전까지 그는 실패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만큼 사업에 실패했다. 4번의 사업 실패로 밑바닥에 있던 그는 우버 택시를 성공시키며 인기와 명예를 얻었다.
그 전투적인 리더십이 원인이었다. CEO로서는 부적절한 여성 차별적 발언들, 여성을 배려치 않는 사내 문화 등은 우버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가 미투 운동의 촉발자가 되도록 했다. 무인 차량 개발을 위해 타사의 사내 비밀을 훔친 사건 등은 우버의 비도덕적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게 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트래비스 갈라익은 최악의 평판을 얻게 됐다.
탁월한 경영 감각을 가졌지만,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던 트래비스에 대해 이사회는 사임을 결정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그가 더이상 경영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한 건 그의 비행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 그의 (부적절한) 태도들이 스스로 하여금 직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서로 다른 분쟁을 해결하는데 보낸다면, 어떻게 CEO 업무를 볼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그가 해고됐다고 생각한다." - 아담 라신스키, 우버 인사이드
CEO도 자르는 미국의 이사회
▲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 SBS
여기서 이 다큐가 주목한 건 바로 CEO도 자를 수 있는 미국의 이사회 제도였다. 우리나라에도 사외 이사 제도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외 이사들이 과도한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 뉴스로 나올 뿐 한국의 사외 이사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기업 임원들에 비해 사외 이사 비중이 크지 않을뿐더러 오너 일가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라 독립성은커녕 황제경영에 힘을 싣는 구조가 되기 십상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사회는 권력의 중심이다. 이사회에는 외부 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 이사들이 있다. 우버 택시에서 트래비스에게 사퇴 결정을 내린 이사진들 중 에릭 홀더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독립 이사진의 역할이 컸다.
이들의 입장은 단 하나다. 남의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하는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 문화에서 경영은 스포츠팀과 같다. CEO는 황제가 아니다. 스포츠팀의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잘 나갈 때 감독은 칭송받지만 팀이 패배하면 그에 책임을 지듯 경영상 문제가 있을 경우 CEO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파파존스 피자의 존 슈내터 역시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해당 브랜드를 성공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전화로 회의하던 중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게 알려지며 주가를 폭락시키자 마찬가지로 사임 당했다.
독단을 막는 경영
▲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마윈의 모습이다. ⓒ SBS
이렇게 미국은 CEO의 독단적 경영을 제어하기 위해 이사회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같은 이사회지만 독일의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르다.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 로스만을 보자.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진 이 가족 기업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공동 경영을 한다. 하지만 경영 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유럽에서 3500여 개의 점포를 통해 100억 달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비가족 CEO 두 명과 함께 공동 경영 체제를 갖췄다. 거기에 다시 외부 고문단을 꾸렸고, 노동자들이 이사회에 참여해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게 했다.
"알리바바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입니다." - 마윈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적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 창설 19주년이 되던 날 은퇴를 선언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 시가 총액 4000억 달러의 회사를 물려받은 이는 그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11년 전 알리바바에 합류해 능력을 인정받은 조력자 장융이었다.
1999년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 회장. 그는 회사가 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2005년부터 승계를 준비해 왔다. 승계에 앞서 그는 한 개인의 역량이 지배하는 조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집단 지도 체제인 '파트너십' 제도를 만들었다. 6명의 대표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이 집단 경영 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직의 신선함을 유지 시켰다. 일정 나이가 되면 파트너에서 물러나도록 제도화하여 현재는 1970년 이후 출생자들로 조직이 채워져 있다. 뿐만아니라 여성들의 파트너십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미국, 독일, 중국 등의 세계적 기업이 보여주는 경영의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윈이 말하듯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때 위험성이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십 체제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 기업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조직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버 택시처럼 한 개인이 만든 기업이라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자본이 유입된 경우 더이상 개인에 의존한 기업이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지킨다.
이런 세계적 기업 사이에서 황제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부도덕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을까? 자본은 변화요, 흐름이다. 과연 그 흐름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다큐는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