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큰 퍼터가 첫 등장하는 장면이다.

프랑큰 퍼터가 첫 등장하는 장면이다. ⓒ 알앤디웍스

 
빨간색 반짝이 코르셋, 짙은 스모키 화장, 깊게 파인 옷 등 뮤지컬 <록키호러쇼> 공연장의 로비는 무대 대기실인가 싶을 정도로 화끈한 복장을 입고 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망사 스타킹은 지극히 평범해 보일 정도로 자유롭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록키호러쇼> 공연장은 뜨거운 날씨보다 더 후끈했다. '범우주적 섹시 컬트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답게 공연 내내 화려하고 화끈한 무대가 펼쳐지는 것은 당연했고, 관객들도 공연을 즐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렜다. 공연장 문을 연 순간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외계인들의 성이라고?
 
결혼을 약속한 자넷과 브래드 커플은 모범생답게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 스캇 박사에게 인사를 하러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잃어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따라 한 성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

동물 박제,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한 음침한 성의 주인은 양성애자이자 외계인 과학자인 프랑큰 퍼터였다. 그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오더니 휙 던져버리고는 섹시한 춤을 춘다. 커다란 진주 목걸이, 가터벨트, 코르셋, 높은 하이힐까지...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 반짝했다.

프랑큰 퍼터는 자넷과 브래드에게 "마약상인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고 말하며 안내했다. 물론 전혀 친절한 안내는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욕망 덩어리 외계인들이 살고 있는 성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외계 행성 트랜스 섹슈얼에서 온 프랑큰 퍼터와 그의 하인 리프라프, 마젠타. 이들이 지구에 온 이유는 인간들에게 욕망을 일깨우기 위해서가 분명하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음흉한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 자넷과 브래드의 옷을 모두 벗겨버리고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그중 외계인들은 극중 인물들도 모자라 관객들까지 욕망의 세계로 인도한다. 바로 'The Time Warp'다. 이 곡은 외계인들이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리프라프는 "다 일어나"라며 관객들까지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 관객들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

두 손을 번쩍 올리고 점프도 하고 엉덩이를 돌리는 등 간단하면서 신나는 안무다. 안무를 완벽하게 외워오는 관객들도 상당수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외계인들과 한바탕 놀고 나면 관객과 배우들은 비로소 프랑큰 퍼터의 성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이외에도 <록키호러쇼>에는 중독적이고 신나는 노래들이 이어진다. 프랑큰 퍼터가 만든 인조인간 록키가 탄생할 때 나오는 'The Sword Of Damocles', 프랑큰 퍼터의 옛 애인 배달부 에디가 등장해 시원 시원한 록앤롤 무대를 만드는 'Hot Patootie', 본능에 눈을 뜬 자넷이 록키를 유혹하는 'Touch-A Touch-A Touch Me', 프랑큰 퍼터를 따라 욕망의 세계로 향하는 인물들이 부르는 'Rose Tint My World' 등 50~70년대를 강타했던 펑크와 글램록, 록앤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록키호러쇼>의 넘버들이 특별한 이유는 관객과 끝임 없이 호흡하는데 있다. 신나는 곡에서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것을 물론이고 프랑큰 퍼터가 섹시한 자태를 뽐낼 때는 공연장이 떠나가라 환호를 한다.
 
관객들이 완성하는 공연
 
아직 관객들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박수와 환호, 타임워프 댄스로는 부족했는지 공연 내내 '콜백'이 이어진다. 콜백이란 환호, 야유, 인물 대사 따라 하기 등 작품에 관객들이 참여하는 걸 뜻한다.

지난해 공연 후 1년 만에 돌아온 <록키호러쇼>는 이번 시즌 콜백의 종류를 더 늘렸다. 폭우를 맞은 자넷과 브래드를 위해 손전등을 켜주기도 하고 슬퍼하는 브래드를 위로 해주기 위해 무대로 빵을 던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고무장갑 튕기기, 대사 치기, 레이저총 쏘기 등 다양한 콜백들이 이어진다.
 
사실 처음 <록키호러쇼>를 접했을 때는 뭐 이렇게 관객들이 해야 할 일이 많나 싶었다. 색다른 공연 방식에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막상 공연장에 가니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춤을 추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모든 넘버들을 일어서서 같이 즐기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기도 했다.
 
가장 완벽한 B급 뮤지컬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한 장면.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한 장면. ⓒ 알앤디웍스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전세계 초연은 1973년이고 한국 초연은 2001년으로 배우 홍록기가 연출과 주연을 맡아 공연했다. 이후 한동안 공연 되지 않다가 작년 대극장으로 새롭게 옮겨졌고 올해 1년 만에 돌아왔다.
 
<록키호러쇼> 하면 '신나고 야한 공연' 'B급 뮤지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보러오라"는 홍보 문구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가면 마냥 흥을 내며 볼 수 있는 공연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록키호러쇼>는 '완벽한' B급 뮤지컬이다. 개연성이 없는 것 같고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 때도 있지만 장면이나 인물들을 하나씩 파헤쳐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SF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게 많다. '플래시 고든' '지구 최후의 날' 등 SF 영화의 조각을 이어 붙인 것 같은 노래 가사도 있다. 또 풍자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의 대상이던 성적 형태, 파격적인 옷차림, 외계인 등을 소재로 삼아 빗댔다.

각 인물들이 상징하는 의미도 있다. 프랑큰 퍼터는 쾌락주의자, 콜롬비아는 당시 문화에 심취한 10대, 브래드와 자넷은 모범생, 스캇 박사는 기성세대를 뜻한다. <록키호러쇼>에 담긴 다양한 장치들 덕분에 코미디, 호러, 19금, 판타지를 아우르는 독특한 B급 작품이 탄생했다.
 
 프랑큰 퍼터가 노래하고 있다.

프랑큰 퍼터가 노래하고 있다. ⓒ 알앤디웍스

    
<록키호러쇼>를 보러가는 날은 일상 속 작은 일탈을 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과감한 옷도 입어본다. <록키호러쇼>에서는 뭐든지 해도 된다. 잠시나마 욕망에 솔직해지기도 하고 신나면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른다. 앞장서서 욕망 덩어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외계인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동참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이 프랑큰 퍼터처럼 성적인 형태일 수도 있고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평소에 프랑큰 퍼터처럼 다 드러내고 다니지는 못 할 때가 많으니 <록키호러쇼>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솔직해지면 어떨까. 공연을 보러가는 길부터 로비, 공연 도중, 다 같이 뛰어노는 커튼콜까지 제대로 즐기게 해주는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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