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서경수)이 '바보 같은 큐피트'를 부르고 있다.

델(서경수)이 '바보 같은 큐피트'를 부르고 있다. ⓒ 쇼미디어그룹

 
"오 큐피트 그만 나를 말려줘" 우연히 본 뮤지컬 <오!캐롤> 영상에는 핑크색 수트를 입은 한 남자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능글맞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온갖 끼와 흥이 가득한 춤도 춘다. 보고 있으면 몸이 저절로 들썩였다. 바로 공연 예매까지 하게 만들었던 이 노래는 뮤지컬 <오!캐롤>의 '바보 같은 큐피트'다.
 
파라다이스 리조트에서 펼쳐지는 사랑
 
<오!캐롤>의 배경은 파라다이스 리조트다. 이곳을 배경으로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데 작품은 이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혼식을 앞두고 헤어진 커플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그런데 남자 이름으로 예약된 스위트룸에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이곳을 찾은 두 여자는 바로 결혼식 당일 남편에게 바람 맞은 마지와 그녀의 친구 로이스였다. 위로 여행을 온 마지는 약혼자 레오나드를 다시 한 번 이 호텔에서 만나게 된다.
 
귀여운 허세남과 연상녀
 
리조트에는 유명 가수 델이 있었다. '바보 같은 큐피트' 노래를 부르던 귀여운 허세 가득한 모습은 물론이고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갖췄다. 다만 늘 여자들을 밝히고 치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 그의 옆에는 항상 연상녀 스텔라가 있다. 유일하게 델을 조련할 줄 아는 사람이랄까.
 
음악으로 맺어진 사랑
 
음악을 사랑하며 작사가의 꿈을 꾸고 있는 로이스와 리조트의 직원이자 델의 친구인 게이브는 서로에게 뭔지 모를 끌림을 느낀다. 음악적 교감이 잘 통하는데 우울할 때 위로 해주는 사이로 발전한다.
 
오랜 사랑? 오랜 우정?
 
리조트의 주인인 에스더와 그녀의 곁을 수십 년 지켜온 허비는 매일 리조트에서 열리는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들이다. 작품을 깔끔하게 끌고 가는 진행자로 여겼지만 알고 보면 가장 오랜 시간 마음을 숨기고 사는 애틋한 커플이다. 묵묵히 서로를 지켜보고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오!캐롤>은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는 루이스와 마지, 에스터와 그녀의 친구 수잔처럼 진한 우정도 담겨있다.
 
닐 세다카의 노래로 만들어진 <오!캐롤>
 
 뮤지컬 <오!캐롤>의 한 장면.

뮤지컬 <오!캐롤>의 한 장면. ⓒ 클립서비스

   
처음에는 한 작품 안에 이 모든 내용들이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그런데 <오!캐롤>은 음악극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파리다이스 리조트의 곳곳에서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다가 리조트의 쇼가 시작되면 노래를 통해 이들의 감정을 전달한다. 무대도 리조트의 쇼 모습을 그대도 재현했는데, 밴드가 무대 위로 올라와 있다. 덕분에 밴드의 연주를 눈으로 보며 노래를 즐길 수 있었고 에스더와 하비가 쇼를 진행하는 것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오!캐롤>에 나오는 모든 노래들이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곡이다. 그의 음악을 즐겼던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부르고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중독성을 안겨준다. 특히 '캘린더 걸', '바로 같은 큐피드'처럼 정확히는 다 따라 부를 수 없어도 어렴풋이 익숙한 멜로디들은 작품을 더 친근하게 만든다. 이러한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자칫하면 노래들을 잇기 위해서 이야기가 어색해지거나 단조로워질 수도 있는데 <오!캐롤>은 '공연'이라는 소재를 택해 자연스럽게 극이 흘러가도록 했다.
 
델이 없는 <오!캐롤>은?
 
 델과 마지가 바라보고 있다.

델과 마지가 바라보고 있다. ⓒ 쇼미디어그룹

   
'바보 같은 큐피트'를 부르던 델의 매력에 빠져 극을 예매했던 게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이 없는 <오!캐롤>은 <오!캐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데이트 약속도 까먹고 여자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밉지 않은 캐릭터다. 작품의 1막은 거의 모두 델이 책임진다.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의 배경과 설정을 초반에 잘 잡아준다.

거기다 중간 중간 위트 있는 손동작과 애교로 객석을 빵빵 터뜨린다. 노래를 부르다 '천사 같은'이라는 가사에서는 갑자기 점프를 하면서 손으로 파닥파닥 날개 짓을 하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다 흥이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공연 도중 객석에서 큰 웃음이 나올 때면 거의 백발백중 델 때문이었다. 델이 재치 있고 귀여울수록 매력적인 <오!캐롤>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오!캐롤> 속 밝은 인물들
 
델 말고도 <오!캐롤> 속 모든 인물들은 유쾌하고 밝다. 고난이 있어도 씩씩하게 헤쳐 나간다. 한편으로는 연인들의 다툼, 친구 사이의 오해 등 다소 갈등이 너무 쉽게 풀리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보는 동안 재미있었고 보고 나서도 <오!캐롤>하면 미소가 지어지는 걸로 봐서 이런 동화 같은 내용을 <오!캐롤>의 특색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마냥 쇼적인 요소만 가득한 쇼뮤지컬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힌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익숙한 노래에 화려한 춤, 거기다 웃음 포인트까지 가지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의 입 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매력이 충분하다.
 
잠시 델이 그리웠던 순간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2막에서 지루하게 느껴진 부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다 보니 풀어나가야 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모든 커플, 친구들마다 갈등을 푸는 노래가 한 곡 이상씩 나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커플의 상황이 무사히 끝났는가 싶으면 또 다른 커플이 나오고, 사랑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친구들끼리 싸우고. 이 과정이 반복되자 저절로 델을 찾게 됐다. 그가 나와서 잠시 분위기를 전환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델을 더 간절히 원하기 전에 극은 다시 <오!캐롤>스러운 활기찬 분위기로 돌아왔다.
 
<오!캐롤>을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다. 이제는 닐 세다카의 노래를 '좋은 노래'로만 즐기는 게 아니고 <오!캐롤>의 이야기와 그 속에 있는 통통 튀는 귀여운 인물들로 기억 할 예정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오!캐롤>에 나오는 인물들이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찾아 온 것처럼 나도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생각하며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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