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제천·KAL컵 남자프로배구대회가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삼성화재는 V리그 7연패를 포함해 통산 8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최고 명문 구단이지만 컵대회에서는 2009년 우승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화재가 기본적으로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높은 팀이라 외국인 선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컵대회에서는 아무래도 성적을 내기 힘들었다.

이번 컵대회에서도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타이스 덜 호스트가 네덜란드 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면서 컵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4강에서 크리스티안 파다르가 뛴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를, 결승에서는 알렉스 페레이라가 나선 KB손해보험 스타즈를 꺾고 통산 2번째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신진식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들어올린 우승컵이었다.

삼성화재는 주전 센터 김규민이 대한항공 점보스로 이적했지만 군복무를 마친 지태환이 성공적으로 코트에 복귀했고 또 한 명의 예비역 고준용도 타이스의 빈자리를 잘 메웠다. 하지만 삼성화재의 컵대회 최대 수확은 따로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시장에서 3억8000만 원을 투자해 영입한 송희채가 공수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대회 MVP에 선정되며 삼성화재에 완벽하게 녹아 들었다는 점이다.

시몬-송명근에 가려 수비와 서브리시브를 전담해야 했던 송희채

 
 송희채는 OK저축은행 시절 본의 아니게 공격본능을 감춰야 했다.

송희채는 OK저축은행 시절 본의 아니게 공격본능을 감춰야 했다. ⓒ 한국배구연맹

 
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송희채는 경기대 입학 후 동기인 송명근, 이민규(이상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선배인 김규민, 박진우(상무)와 함께 경기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송명근, 이민규와 함께 '경기대 트로이카'로 불리며 프로 구단들로부터 일찌감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다만 성인 대표팀에도 종종 이름을 올리던 송명근, 이민규와 달리 송희채는 대학시절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진 못했다.

배구단 창단 시기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아프로 서비스 그룹은 경기대 트로이카를 얻기 위해 2013년 팀을 창단했고 러시앤캐시는 신생 구단 우선 지명권으로 송명근,이민규,송희채를 모두 영입했다. 그리고 2014-2015 시즌 쿠바 출신의 '괴물 외국인 선수' 로버트 랜디 시몬을 데려오면서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우승전력을 갖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OK저축은행에 입단한 후에도 송희채의 역할은 경기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시몬과 송명근이라는 걸출한 쌍포를 보유하고 있는 OK저축은행에서 송희채는 공격에서 그리 큰 역할이 필요하지 않았다. 송희채는 입단 후 세 시즌 동안 팀의 서브리시브를 전담했고 공격 득점은 총 459점에 불과(?)했다. 이는 송명근이 2015-2016 시즌에 기록한 공격득점(497점)보다 적었다.

하지만 두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한 OK저축은행은 더 이상 시몬과 함께 할 수 없게 됐고 송명근마저 무릎부상으로 결장이 길어지면서 급격하게 전력이 약화됐다. 이에 송희채는 2016-2017 시즌 서브리시브 점유율을 줄이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비중을 크게 늘렸고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334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다.

OK저축은행은 2017-2018 시즌 송명근이 건강하게 돌아오며 다시 '경기대 트리오'가 뭉쳤지만 외국인 선수 브람 덴 드라이스와 마르코 페레이라가 실망스런 활약을 펼치며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송희채는 2017-2018 시즌에도 329득점과 함께 팀 내 서브시리브를 전담했지만 아쉽게도 송희채의 활약이 OK저축은행의 성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컵대회 준결승-결승 70%의 공격성공률로 MVP 선정
 
 외국인 선수가 없던 삼성화재에서 송희채는 주공격수로 활약하며 삼성화재의 2번째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가 없던 삼성화재에서 송희채는 주공격수로 활약하며 삼성화재의 2번째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 한국배구연맹

 
2017-2018 시즌이 끝나고 OK저축은행의 창단 멤버였던 '경기대 트리오'는 나란히 FA자격을 얻었다. OK저축은행은 이민규를 연봉 4억5000만원, 송명근을 연봉 4억 원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송희채와의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송희채 역시 조금 더 공격비중을 높일 수 있는 팀으로 가길 원했고 때 마침 타이스의 파트너가 필요했던 삼성화재가 3억8000만원에 송희채와의 계약을 따냈다.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타이스와 박철우로 이어지는 리그 정상급 쌍포를 보유하고 있지만 쌍포의 부담을 덜어줄 '제3의 공격수'가 마땅치 않았다. 여기에 서브리시브를 전담하던 류윤식마저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안정된 리시브를 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던 상황. 따라서 평균 이상의 공격력과 안정된 수비를 두루 갖춘 송희채는 삼성화재에 어울리는 퍼즐 조각이었다.

송희채가 삼성화재에 적응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송희채는 컵대회 5경기에서 서브득점과 블로킹 각각 8개를 포함해 총 86득점을 기록하며 95득점의 박철우를 제치고 대회 MVP에 선정됐다. 송희채의 공격력은 대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살아났는데 특히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무려 70.7%라는 믿기 힘든 공격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컵대회에서는 주로 고준용이 송희채와 함께 레프트 한 자리를 맡았지만 V리그가 개막하면 지난 두 시즌 동안 1958득점을 올린 검증된 공격수 타이스가 돌아온다. 베테랑 박철우의 건재를 확인한 만큼 송희채와 타이스의 호흡만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삼성화재는 5년 만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노리기에 손색 없는 팀이 될 수 있다. 컵대회 MVP수상은 송희채의 성공적인 영입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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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제천·KAL컵 남자프로배구대회 삼성화재 블루팡스 송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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