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포스터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지난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FAN)에선 9편의 북한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부천국제영화제 공식상영작 중 하나였던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는 벨기에, 영국, 북한 감독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이따금 곡마단이 들어와 공연을 펼치곤 했다. 천막 안쪽에 깔린 가마니가 관중석이었는데, 난 그곳에 앉아 까마득히 높은 꼭대기에서 그네를 타고 공중제비를 돌아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곡예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죽인 채 곡예사를 지켜보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멋진 곡예사의 공중곡예를 보면서 '한 번쯤은 나도 곡예사로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북한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는 그 곡예사가 나온다. 영화는 광부의 딸인 탄광노동자가 계급과 편견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의 어릴 적 꿈인 곡예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영화를 보면서 탄광촌 출신 소년이 편견에 맞서 발레의 꿈에 도전하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엘리어트>가 떠오른 것은 주제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곡예사를 꿈꾸는 광부의 딸 영미

주인공 영미(한정심 분)는 탄광노동자인 광부의 딸이다. 어렸을 적에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자신도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곡예사를 꿈꾼다. 탄광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영미의 아버지는 광부의 딸인 영미가 교예(acrobatics)에 관심을 갖는 것이 못마땅하다. 반면 영미의 할머니는 영미의 꿈을 이해하고 응원한다.
 
평안남도 탄광노동자인 영미는 우수노동자로 선정돼 평양에서 한 달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영미는 평양에 가면 일류 곡예사 리수연의 곡예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들뜬다. 하이힐은 곱게 싸서 가방에 넣고 평소에 신던 신발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가 구두를 꺼내 갈아 신는 모습, 할머니가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으로 싸준 음식 보따리 등은 1970~80년대 도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상경하던 농촌 청년들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평양에 다다른 영미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체사상탑, 천리마 동상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영미가 평양에 온 날 평양예단의 공연이 열린다. 영미는 리수연의 동생이라며 티켓도 없이 공연장에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숨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리수연의 분장실에 들어가게 된 영미는 리수연을 만난다. 리수연은 영미에게 교예단원을 뽑는다며 시험에 응해 볼 것을 권한다. 이후 시험에 응시한 영미. 고소공포증이 있는 영미는 힘겹게 사다리를 오르지만 공포에 질려 묘기를 보이기도 전에 떨어지고 만다.
 
리수연의 파트너인 장필(박충국 분)은 잘생긴 일류 곡예사지만 콧대가 높다. 우연히 장필을 만난 영미가 자신이 공중 곡예를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코웃음을 치며 영미를 모욕한다. 하지만 영미의 꿈을 알고 있는 작업반장은 영미가 고소공포증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미와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노동자공연단을 만들어 모든 노동자가 한 가지씩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노동자 축제를 연다. 노동자 축제에서 영미의 공연을 본 장필은 영미를 과소평가했던 것을 후회한다. 작업반장은 영미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류 곡예사인 장필을 영미의 선생으로 초대하지만 장필에게 모욕을 당했던 영미는 장필에게 교예를 배울 기회를 거절하고 탄광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과연 곡예사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의 한 장면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의 한 장면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필은 영미를 포기하지 못해 영미의 집으로 찾아가 영미를 교예단 단원으로 합류시키는데 성공한다. 영미는 장필과 함께 맹렬하게 훈련을 한다. 늦은 나이에 호된 훈련을 견뎌내는 일, 어린 아이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던 영미는 호된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공중곡예를 위해 첫 무대에 서게 된다. 그녀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반대하던 아버지가 딸의 첫 무대를 보러 오고 탄광 노동자의 명예를 걸고 멋진 곡예사가 되라며 응원하는 모습을 비롯해 마지막 순간에 탄광 노동자의 딸답게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모습, 마을 사람들의 열띤 응원에 마침내 두려움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 등은 감동적이다.

'하늘'은 아마도 공중제비를 돌며 공중에서 묘기를 보여주는 공간만이 아니라 무한하게 펼쳐진 가능성의 공간, 꿈과 비전의 공간을 복합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리라. 인간 누구에게나 무한히 펼쳐진 꿈의 공간이 하늘이라면 그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은 개인이 지닌 이루고 싶은 생의 목표일 것이다.
 
영화의 주제가  보편적인 '사랑과 꿈'인 만큼 이념의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한 인간이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청춘 남녀가 주인공인만큼 남녀 간의 관심과 사랑의 감정이 싹터가는 과정도 복선으로 깔려있다. 다만 과정은 1970년대 식으로 순수하게 표현됐다. 아들이 관심 갖는 여자를 미래 시어머니 눈길로 바라보는 것, 자녀의 일과 결혼에 절대적 결정권을 지닌 가부장 사회 아버지의 모습은 북의 현실적인 가정과 사회적 의식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더 공정하게  열려있는 것 같다. 영재성이 확인되면 모두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가 콜롬비아 몸의 학교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무용수들을 길러 냈듯이 말이다.

남북간 문화 예술 체육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저 문화 예술 체육으로 만나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70년 분단의 벽을 허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영화를 통한 이해와 공감은 대중적이니 더욱 중요하다.

이념의 전파를 위한 선전용이 아닌, 이번 영화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북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마련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감독) 안야 다엘레만스, 니콜라스 보너, 김광훈/북한, 벨기에, 영국/81분
북한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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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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