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첫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김숙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첫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김숙 ⓒ KBS


"(대체) 천상여자가 뭘까요?" 

지난 8일 첫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 첫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김숙의 이 한마디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천상여자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주야장천 들어온 말이고, 여자라면 응당 천생 여자다움을 갖추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천상여자가 뭔지 모르겠다.

천상여자라고 하니, 문득 어릴 때 살던 지역의 한 여자고등학교의 교훈이 생각났다.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여고 건물에 쓰여 있던 교훈은 '정숙'이었다. 기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학교 건물에 붙어 있던 '정숙'이라는 문구는 떼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 여고의 교훈은 계속 정숙이었다. 

'정숙'이 정확히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1. 곧고 곱다 2. 여자로서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고움"을 뜻하는 단어였다. 아마 그동안 김숙에게 섭외 요청했던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이 원한 여성 캐릭터는 대체적으로 '정숙'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상에 기인한듯하다. 예전처럼 마냥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성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활발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면서도 때로는 여성스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말이다.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첫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김숙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첫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김숙 ⓒ KBS


하지만 김숙은 우리 사회에서 고정적으로 박혀있는 여성상을 거부했고, 그 결과 김숙은 예능인으로서 오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김숙을 다시 스타덤에 올린 JTBC <님과함께2-최고의 사랑>(이하 <님과함께2>) 출연은 정말 우연이었다. 애초 윤정수의 파트너로 내정되었던 출연자가 돌연 하차하면서, 첫 녹화를 며칠 앞두고 소위 '땜빵'으로 김숙을 부랴부랴 섭외한 것이다. 덕분에 김숙은 제작진의 어떠한 지시나 강요 없이 김숙 자신만의 캐릭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김숙이 <님과함께2>에서 보여준 가모장 캐릭터는 <대화의 희열>에서 쏟아진 극찬대로 가히 예능계의 혁명이었다. <님과함께2>에서 윤정수와 가상 부부로 출연한 김숙은 여러 사건·사고로 위축되어있던 윤정수를 당당하게 리드하는 여전사였다. "남자가 감히", "남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만 잘하면 돼" 하면서 집안을 이끄는 가모장 김숙은 사회, 특히 가정에서 고정된 성 역할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쾌감까지 안겨주었다.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한 장면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한 장면 ⓒ KBS


때마침 김숙이 <님과함께2>로 다시 주목받을 시점에는 여성 예능인에 대한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었고, 예능계 트렌드 또한 MBC <무한도전>,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등으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적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생활 밀착형 관찰 예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님과함께2>를 통해 확실히 재기한 김숙은 이후 100% 여성 출연자로 구성된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다른 여성 출연진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진행력을 인정받았고, 현재는 SBS<동상이몽2-너는 내운명>,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김숙을 향한 뒤늦은 각광은 시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대화의 희열>에 따르면 김숙은 데뷔 때부터 할 말 다하고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었지만 그런 김숙을 받아주는 방송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한 장면

지난 8일 첫 방영한 KBS <대화의 희열> 한 장면 ⓒ KBS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시청자들은 <님과함께2> 김숙의 가모장 캐릭터에 열광을 보냈고, 김숙처럼 기존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뽐내는 여성 예능인들이 더 많아지길 원한다. 그러려면 역시 여성 예능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져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김숙과 더불어 이영자·최화정·송은이·박나래·장도연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여성 예능인들이 증가하고 있고, 김숙·박소현·박나래·써니처럼 여성 예능인이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예능인이 설 수 있는 자리와 위치는 좁고 낮아 보인다. 가령 김숙을 첫 게스트로 내세운 <대화의 희열> 또한 진행을 맡은 출연진(유희열·강원국·김중혁·다니엘 린데만) 모두가 남자다. 

진행자 모두 남자로 구성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화의 희열>은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힌 남성 중심적 문화를 비판하고,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성 역할의 전복을 시도한 김숙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화의 희열>에 김숙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온 여성 진행자가 참석했다면, 조금 더 흥미롭고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1인 토크쇼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로 그 어떤 토크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간 <대화의 희열>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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