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아들 발탁' 논란에 휘말렸던 허재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이 아들 허웅-허훈과 함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허재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였지만 국가대표팀의 수장으로서는 안타까운 마무리를 하게 됐다. 두 아들인 허웅-허훈도 선수로서의 이미지와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5일 대한민국농구협회는 허재 감독이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허 감독이 지난 2016년 6월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지 약 2년 3개월 만이다. 허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9년 2월 말까지였지만 임기를 아직 5개월 이상 남긴 상황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게 됐다.

'아들 선발' 논란 여파로 감독직 사퇴, 진작 소통했더라면...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의 사퇴에는 무엇보다 두 아들의 대표팀 발탁을 둘러싼 특혜 논란이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 허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2016년 이후로 허웅과 허훈도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부자 국가대표'가 한솥밥을 먹는 것이 큰 화제가 됐다. 두 선수가 이미 대학과 프로무대를 거치며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었기에 초기만 해도 논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두 선수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하여 소속팀이나 대표팀 모두 그리 월등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많은 기회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여론은 차츰 악화됐다. 심지어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185cm에 불과한 슈팅가드인 허웅이 포워드로 발탁되는가 하면, 180cm의 단신 포인트가드인 허훈까지 대표팀에 승선하자 선수선발의 명분과 공정성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시안게임이 한국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회 중 하나인 데다 금메달에는 병역 혜택까지 걸린 만큼 더욱 민감한 문제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허재 감독은 그동안 국가대표 경기력향상위원회와 선수선발을 항상 함께 논의해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발에 관련된 의혹을 부정해왔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 따르면 기술위원들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허재 감독이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끝까지 두 아들의 발탁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허 감독은 대회 전후로 여론의 비판과 문제제기가 빗발치는 와중에도 두 아들의 발탁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하기보다 말을 아끼는 쪽이었다. 이에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관한 비판도 나왔다.

허재 감독이 이끌던 농구대표팀은 2018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승선했던 허웅과 허훈은 주로 식스맨으로 기용됐지만 약팀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출전시간도 짧았다. 특히 허훈은 토너먼트 이후로는 경기에 1분도 나서지 못했다. 결국 아시안게임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쓸 전력감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더구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허웅-허훈을 엔트리에 포함시키면서 대표팀은 높이 및 수비력의 약화, 가용자원의 축소라는 핸디캡을 드러냈다. 1년 전 아시아컵에서 대등한 승부를 펼쳤던 강호 이란을 상대로 이번엔 준결승에서 힘 한번 못쓰고 무기력하게 완패했다. 이는 선수 기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허재 감독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에도 사실상 내년 2월 임기까지 감독직을 계속 유지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 4일 국가대표경기력향상위원회가 회의를 열고 유재학 위원장을 비롯한 기술위원들이 아시안게임 노골드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했던 일부 선수들도 9월 농구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 명단에서 전격 제외됐다. 허재 감독은 이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을 지는 것도 적절한 시기와 절차가 갖춰져야 마땅하다. 허재 감독이 아시안게임 직후 가장 먼저 보였어야 할 모습은 특혜 논란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반성이었다. 굳이 부정적인 논란을 감수하며 두 아들을 모두 데려가야만 했던 이유와, 대표팀 운영의 원칙에 대하여 솔직하고 명확하게 소통했더라면 처음부터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면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개혁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진정으로 책임지는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지만 허재 감독은 여론이 악화되자 감독직을 내려놓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말았다.
 
드리블하는 허훈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예선 한국과 몽골의 경기.

한국 허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드리블하는 허훈 지난 8월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예선 한국과 몽골의 경기. 한국 허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와의 관계 생각했다면 더 엄격한 잣대 적용했어야

농구대표팀은 당장 13일 요르단, 17일 시리아와의 2019년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까지 불과 2주도 남지 않았다. 당분간 김상식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끈다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감독 사퇴로 인하여 뒤숭숭해진 팀 분위기나 코치진 공백으로 인한 인력 부족을 고려할 때 대표팀은 대회 준비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농구대표팀으로서는 전임감독제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간 것도 뼈아픈 부분이다. 허재 감독은 2009년 김남기 전 감독에 이어 무려 7년 만에 대표팀에 부활한 전임 감독이었다. 김남기 전 감독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다가 낮은 연봉과 개인사정 등으로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현 고양)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대표팀은 한동안 프로농구 전 시즌 우승팀 감독이 1년씩 돌아가면서 겸임하는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농구 최고의 스타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허재 감독도 결국 계약기간을 채우지못하고 구설수 속에 불명예 낙마했다. 허재 감독이 무려 2년간 팀을 맡았지만 보수적인 팀운영을 고집하다가 '세대교체와 포지션별 장신화'라는 중장기적인 목표에서도 정체되면서 결국 야심차게 도입한 전임감독 체제의 성과는 뚜렷하게 나오지 못하게 됐다.

허재 감독은 국가대표의 수장이었다. 대표팀은 그 나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고, 농구계 전체의 모범이 되어야 할 조직이다. '감독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파장을 고려했다면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에 더 엄격하고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했어야 했다.

허웅과 허훈이 과연 감독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였는지, 혹시 이들보다 더 나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실험해볼수 있는 기회는 정말 없었는지, 허재 감독은 전임감독으로서 2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선수선발의 원칙과 공정성이 끊임없이 의심받는 데도 리더가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논란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