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다시 쓰는 불면일기

sbs스페셜-다시 쓰는 불면일기 ⓒ sbs


인간은 인생의 1/3을 자는 데 쓴다고 한다. 한때 길지도 않은 인생 중 1/3이란 시간을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잔다는 사실에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 SBS 스페셜 > '다시 쓰는 불면 일기'에 나온 고3 수험생은 자신이 자는 시간을 계산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하루에 한 시간, 그걸 24일 동안 모으면 하루인데 내가 자고 있을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다고 말이다. 수험생의 말은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란 '입시괴담'의 2018년 버전인 듯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입시만 끝나면 실컷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꼴지다. 아마 이걸 보고 놀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나 7시간이나 잔다고?'말이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학교와 직장에서 잠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평균 7시간조차 꿈의 수면시간처럼 보일 것이다.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시간이 늘면서 이젠 잠을 자는 그 시간조차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잠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선 막상 잠을 자려 해도 숙면을 취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다시 쓰는 불면 일기'를 기획한 작가 최성우씨는 늘 졸음에 시달린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해야할 일은 그를 '포근한 잠자리' 대신, 자판 위에서 졸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쉽게 들지 않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잠보다 무서운 수면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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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잠'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오지용씨는 늘 졸립다. 그는 하루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지만 항상 졸음과 싸운다. 운전 중에도 졸음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운동까지 하지만, 그의 '수면'과의 전쟁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졸음과 싸움을 벌이는 이들 중 방송국 피디만한 사람이 있을까? 오학준 피디는 자타공인 '잠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미래를 위해 잠을 강탈당해야 하는 처지다. 겨우 밤을 새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을 한다. 그래서 일까, 그는 '단기 기억상실증'이 우려될 정도의 기억력 감퇴에 시달린다.

5번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조하영씨는 겨우 잠자리에 들어서도 불면의 밤을 보낸다. 잠을 줄여 공부에 보탠 시간은 그녀에게 수능 성적 향상으로 보상을 해왔었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이제, 잠은 그녀에게서 멀리 달아나버렸다.

자신의 삶에서 '잠'을 빼앗아 자신의 꿈을 위해 썼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든 작든 수면 부족에서부터 수면 장애까지 잠과 관련된 각종 스트레스와 질환에 시달린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잠과 관련된 산업의 시장이 2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등장하기도 했다.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을 위한 수면 카페가 등장했고, 숙면을 위한 각종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목침 하나 궤면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던 옛사람들의 여유는 사라지고, 침대는 과학에 이어, 베개의 과학까지 우리의 지갑을 툭 하고 쉽게 연다.

이렇게 다큐는 부족한 잠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부터, 그 잠을 줄이도록 강요된 사회에서 결국 수면 장애까지 앓게 된 현대인들의 사정을 사례별로 다룬다. 그렇다면 이제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게된 현대인들에 대한 해법은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시대가 현대인들의 부족한 잠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다큐의 처방은 또 다른 '침대의 과학'으로 귀결된다.

과학이 숙면을 인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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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등장했던 사람들을 수면 검사실로 인도한다. 수면 다원 검사를 통해 다양한 수면의 내용을 들여다 본다. 너무도 잠을 잘자서 활동명조차도 '슬리피'가 된 가수 슬리피, 검사 결과 그는 잠을 잘 자는 게 아니었다. 심한 코콜이로 인한 수면 무호흡증, 그리고 부정맥, 그것들이 그를 자도 자도 또 잠을 자도록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면 장애를 보이던 출연자들은 대부분 검사 과정에서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길었다. 또한 수면 과정 중 깨어나는 각성도 빈번했다. 반면 하루 4시간만 자도 20시간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던 이른바 나폴레옹 수면법을 쓴다는 김쌍규씨는 입면도 쉬웠으며, 수면 도중 깨는 각성도 없이 깔끔하게 수면의 사이클에 몰입했다.

사람이 잠을 자는 과정은 총 4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그 중 1, 2 단계는 주변의 소음에 무뎌지면서 잠에 빠져드는 단계인데 대부분 수면 장애에서 잠이 드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3단계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몸과 뇌가 휴식을 취하며 손상된 세포가 복구되고, 노폐물들을 배출하여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몸의 상태로 만든다. 이 단계가 순조롭게 되지 않았을 때 면역이 저하되어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나 각종 암, 감염 등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도중 자꾸 깨는 경우, 이 3단계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큐는 김쌍규씨와 같은 깔끔한 입면과 각성없는 잠의 이상적 상태를 위해 '과학'을 제시한다. 우선 슬리피나 직장인 오지용씨의 경우처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수면 무호흡증의 사례를 살펴보고, 작가 최성우씨 사례에서 나온 이갈이 치료법도 소개한다. 더불어 암막 커튼과 가습기, 안락하고 적절한 침실 환경을 제시한다.

과연 2조 원 규모의 '슬리포노믹스'는 우리를 수면 장애에서 구할 수 있을까. 밤샘 작업이 필요한 방송국 사람들, 다섯 번째 도전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남보다 한 시간 더 자는 게 불안으로 이어지는 고3, 4시간 자면 개운하다는 사장님 앞에서 작아지는 직장인들까지. 과연 이런 현실 속 스트레스를 암막 커튼과 푸근한 잠자리가 구원해 줄 수 있을까? 혹 그 무엇도 해결해 줄 수 없는 현대인을 위한 당의정같은 플라시보 해법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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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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