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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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국제다큐영화제 로고 EBS 국제다큐영화제 로고 ⓒ EBS 국제다큐영화제


01.

실재하는 대부분의 일에 명과 암, 양면의 모습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어느 지역을 개발하는 일은 그 두 모습의 편차를 극명히 보여줌과 동시에 해당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 편차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언제나 문제가 된다.

개발 혹은 재개발의 문제는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개발이 진행된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일부 지역의 갈등으로 남아있지만, 2000년대 이후로 급격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에서는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앙당의 의지와 주도로 도시 계획이 이루어지고 철거 및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중국에서 이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은 그렇지 못하다.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은 프랑스 감독인 헨드릭 뒤졸리에가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에 놓인 중국 충칭의 시바티 지역을 6개월 간격으로 3차례 방문한 기록이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 무너져 가는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노상에는 정리되지 못한 짐들로 가득한 초라한 동네. 얼마 후 곧 철거될 공간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는 감독은 이미 재개발이 이루어져 번쩍이는 현대식 건물들로 화려하게 변모한 일월광 광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이 지역의 마지막 모습을 이 작품에 담아낸다.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2.

작품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외국인 감독의 카메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이질적인 말과 태도의 이중적 태도, 자국의 발전에 대한 자부심과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픔의 이중적 심리들이 함께 뒤섞여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하지 말라는 강력한 항의와 동시에 밥은 먹었냐고 이런 걸로 먹고 살수는 있냐고 걱정하는 마음에는 중국이 여전히 가난하다고 여기는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반감과 현재의 초라한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은 물론, 개발이 된 후 바뀌게 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혼재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마을에 대해 초라하게 느끼는 그 마음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아니 촬영 얼마 전까지, 강제 철거가 처음으로 이루어지던 첫 날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활기가 넘쳤다고 말하는 시바티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터전을 사랑한다.

오랫동안 이발소를 운영해 온 리 씨의 가족은 철거와 강제 이주로 인해 많은 단골들이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고, 당의 결정에 따라 이발소의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문을 닫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나마 운영이라도 가능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는 리 씨. 그는 이 지역에서 자신이 찾는 마지막 손님이 사라질 때까지 이 수고로움을 덜지 않을 생각이다.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3.

촬영 기간 내내 함께한 어린 소년 조우 홍 역시 자신이 태어나 자라난 마을을 사랑하고 있다. 수박 과일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도와 가판대를 설치하는 소년에게 시바티는 초라한 동네가 아니라 따뜻함과 정서적 안정을 주는 곳이다. 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일월광 광장으로 향하던 날, 그는 자신과 달리 전자 오락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좋은 옷과 좋은 가방을 가진 또래 아이들을 만난다.

역시나 그들은 소년과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바닥마저 반짝거리는 일월광 광장에서 초라함을 느낀 홍은 마을로 돌아가 줄넘기나 해야겠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시바티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려다 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잃은 채 마약을 하며 오늘을 보내는 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또 한 사람. 촬영 기간 내내 감독을 '프랑스 친구'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줬던 리안 부인 역시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월광 광장의 사람들이 보면 쓰레기나 주우러 다니는 못사는 마을의 노인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삶과 시바티에서의 시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녀에게 철거와 재개발이란 자신이 좋아해 모아온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하고, 사랑하는 동네를 떠나야 해서 슬픔을 주는 일일 뿐이다.

이처럼 헨드릭 감독은 시바티 지역의 철거 상황이나 과정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는 직접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지나온 것들의 삭제와 새로운 것의 생성이 만들어내는 묘한 감정들을 이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자 한다. 이 과정은 감정의 삼각주가 형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과도 같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감정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감정의 출발점은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04.
감독은 자신의 터전이 사라지는 일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중앙당의 결정에 순응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에 느끼지 못한 복잡한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바티의 주민들은 담담히 주택관리국으로 나가 자신이 앞으로 살게 될 아파트를 배정받는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다른 대처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다. 한편으로는 순박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순수하기도 하다. 홍의 부모가 원하는 아파트의 조건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저층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에 바라는 그들의 요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홍과 만난 감독은 그가 이사하게 될 집으로 향하는 장면을 작품 속에 담는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지하철을 타고, 어릴 적 우리가 기차 여행을 하듯 아버지로부터 콜라 하나를 건네 받은 홍의 표정. 새로 지어진 산업단지의 웅장함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산업화의 대표적인 대상일 것인데 홍은 자신이 살게 될 초고층 아파트에 들어서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일월광 광장에서 느낀 초라함을 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시바티를 사랑했던 것이다. 어린 그에게도 이런 감정의 대상이 되어준 시바티가 더 오래된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리가 있을까.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5.

다큐멘터리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은 이 지역이 개발되기 전의 모습도 아니고 개발이 끝난 후의 모습도 아닌, 철거로 인해 그저 황폐해진 시바티 지역의 어중간한 시점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난다. 감독의 그런 선택은 이 작품이 어떤 목적을 갖고 완성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데, 이는 사라져 가는 시바티 지역에 대해 마지막까지 특정한 결론을 짓지 않으려는 모습과도 같다.

지금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무작정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습에 대한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들이 곧 누군가의 자부심이자 빛이 되어가는 과정의 안타까움과도 같은 것들. 그는 그저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모든 혼재된 감정들을 모두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9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영화 무비 EBS EIDF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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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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