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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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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건 일종의 흑마법 같다. 저 같은 사람도, 저 같이 석사논문 때부터 연금문제를 다뤄온 사람도 가끔씩 혼란스럽게 만드는 흑마법..."

고백 아닌 고백이었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박사)의 말이었다.
"흑마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명확한 방향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순간에 흑마법에 현혹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국민연금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인가부터 생각하자. 노인빈곤율 1위인 우리가 이 거대한 국민연금의 목표를 '반빈곤' 에서 그칠 거냐."

정 센터장이 든 사례는 뼈아팠다.
"예를 들어보자. 노후 소득 보장을 그저 '빈곤'만 방지하는 정도로만 설계하면, 노후 소득은 점점 더 불평등해진다. 무섭게도, 제도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회 제도가 그렇게 설계되는 순간 사람들은 '연금만으로는 못 살겠구나' 하고 개인 연금을 들거나 부동산을 사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연금만 받아서 겨우겨우 빈곤을 면하는 노후를 살게 될 것이다. 불평등은 더 높아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금액을 주자는 취지로 연금을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훨씬 불평등한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 센터장에 이어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도 "국민연금 논란이 치열하지만 국민연금 제도가 도대체 왜 도입됐는지, 그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 답답하다"라면서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안정적이고 존엄한 노후를 위해 만든 제도다, 애초에 기금을 쌓아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막대하게 남겨진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를 올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현장.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추계 이후 확산된 '기금 고갈' 프레임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사실과 다른 프레임 씌우기로 국민연금에 대한 막연한 불신만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토론회에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민간보험도 아닌데... '국민연금 기금 고갈'이란 프레임

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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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차 재정추계에 참여했던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 소진의 의미를 과장하고 70년 후의 기금 소진을 막기 위해 과도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라며 "지난 3차에 걸친 재정추계에서 언제나 지배적인 결론은 '기금 고갈'과 이를 막기 위한 '보험료 인상, 급여 축소'였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보수 언론 등을 중심으로 이어진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이 의도적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기금 고갈' 논란은 5년마다 이뤄지는 국민연금 재정추계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 연금 설계구조상 고갈은 당연한 것인데, 그에 대한 기본 설명도 없이 불안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앞서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지난 17일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기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고 발표했다.

정 교수는 "민간 보험사라면 기금 고갈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국민연금은 기금 유지나 가입자의 수익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기에 기금 고갈이 문제되지 않는 데도 이를 계속해서 부풀린다"라며 "지금처럼 어마어마하게 쌓는 기금이 아니라, 기금을 어떻게 소진시킬지에 대한 판단, 현행 '적립식'이 아닌 '부과식(매년 필요한 만큼 노동 세대에게 보험료를 거둬 은퇴자들한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등을 검토해야 할 때"고 강조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기금 고갈론으로 조장된 불안감을 가장 즐기고 있을 곳은 사보험 시장일 것"이라며 "적정 소득대체율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기금 고갈론만 부각된다면 결국 수익률이 오히려 더 낮은 민간연금 시장만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의원은 "소득대체율 삭감을 멈추고, 최소한 45% 수준을 유지하고 점차 50%로 높여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라고도 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또한 "기금 고갈론을 통해 불신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면 막아야 한다"라며 "지금이야말로 국민연금 강화와 공적연금 통합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기금 고갈론 같은 비생산적인 사회 논란, 국민연금을 의도적으로 세대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 등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부터

23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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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지급보장부터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기금 고갈론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 폐지를 부르짖는 등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라며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국가지급 보장 명문화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남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유재길 부위원장도 "기금 고갈론이 이어지는 배경엔 혹시나 급여가 중단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의 연금 지급부터 명문화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김남희 팀장 또한 "국민연금 지급보장 의무도 명문화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탰다.

이날 토론회에선 향후 70년 기금 상태를 추산하는 현재의 재정추계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정세은 교수는 "겨우 최근 5~10년의 트렌드와 추세로 미래의 70년을 '예측(forecasting)'도 아닌 '추계(projection)'할 수 있을 뿐이다, 매번 추계할 때마다 번번이 추계치가 틀리는 이유"라며 "70년은 너무 먼 미래이므로 불확실성을 조절하기 힘들고 제도의 목표 기간으로 삼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예측 기간을 더 줄여 단기·중기적으로 추산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추계는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경제가 부진해 미래 전망치가 낮아진 측면이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관련기사] 국민연금 고갈? 제발 쓸 생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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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민연금, #기금고갈론, #소득대체율, #노후, #노인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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