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에이다이의 생전 모습

하야시 에이다이의 생전 모습 ⓒ EBS


일본이 숨기려는 역사의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일본인이 있었다. 하야시 에이다이. 그는 일본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일본으로 강제 동원한 사건을 비롯해 일본의 만행을 취재하는데 평생을 몸 바친 기록 작가다. 하야시가 조선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하야시 아버지는 탄광에서 도망친 조선인들을 도와줬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도와주는 건 그 당시 보기 드물었다. 조선인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하야시 아버지는 고문을 당했고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다. 하야시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역사의 흔적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다.

14일 방송한 < EBS 광복절 특집다큐 > '하야시 에이다이의 끝나지 않은 기록'은 하야시의 생전 영상과 기록을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일본인이면서 자국의 부끄러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저하지 않은 그의 삶을 다뤘다. 하야시는 무려 57권의 저서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조선인 강제 동원, 사할린 조선인 학살사건, 자살특공대 등을 세상에 알렸다. 국가권력에 의해 입은 피해 사례를 취재해 책을 냈다. 지난해 9월, 85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다큐멘터리에는 지난해 여름, 말기 암 투병 중인 하야시의 모습도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가 강조하는 것은 하야시의 기록하고자 하는 '취재 정신'이다. 하야시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그의 집념 있는 취재정신에 감탄한다. 돈이 넉넉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자료를 모을 수만 있다면 하야시는 나섰다. 조선인 피해자만 취재하지 않았다. 조선인을 탄압한 일본인들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그래야만 진상을 확실하게 밝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현장을 찾아 사진에 담고 기록하려고 했다.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숙소 설계도면, 조선인에 대한 협박이 담긴 조선인 기숙사 주변 벽 공사 신청서, 미쓰이 광업소 야마노 탄광 반도인 합숙소 자료 등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자료들이 공개될 수 있었던 건 하야시의 끈기 덕분이었다.

 지난해 암투병 중이었던 하야시 에이다이의 모습. 그는 평생 자신이 취재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난해 암투병 중이었던 하야시 에이다이의 모습. 그는 평생 자신이 취재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 EBS


다큐멘터리에서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는 "제가 놀란 것은 정말 무척 끈질기다는 것. 자신은 '철저히 취재한다, 목숨을 걸고 취재한다' 이 이야기를 (하야시 씨가)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 취재에 목숨까지 걸었을까. 오로지 진실을 밝히고 잊힌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알리겠다는 취재정신, 그리고 조선인을 향한 진정성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다. 그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자신의 집필실인 아리랑 문고에서 글을 썼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 중 한쪽 손에 테이프를 감아 글을 썼다.

 하야시 에이다이가 평생 취재하고 수집한 자료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야시 에이다이가 평생 취재하고 수집한 자료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EBS


하야시의 모습에서, 지금의 저널리스트나 기자들이 갖춰야 할 '시대정신'을 생각해본다. 하야시의 취재는 일종의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역사를 감추려는 권력의 힘은 강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인에 대한, 그것도 당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한국이 광복을 맞이한 지 73주년이 되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그는 심지어 기관이나 회사 소속 기자도 아니었다. 책을 내면 일본 극우파에게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아팠던 역사에 대해 공감하고 교훈을 얻는다. 취재와 기록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권력에 버림받은 이들, 잊힌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하야시 에이다이)

하야시 에이다이 강제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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