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7일 방송된 MBC 의 한 장면. ⓒ MBC


"제 입장에서는 그 22년 동안 23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어떤 나름 작은 성과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감독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아주 무자비한 방송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난 6월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두한 김기덕 감독. 앞서 그는 자신의 성폭력과 성추행 전력을 폭로한 MBC < PD수첩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 제작진과 김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 배우들을 무고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앞서 여성 배우A가 강제 추행 등의 혐의로 김기덕 감독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폭행 혐의만 인정해 500만 원에 약식기소 했을 뿐이다. 강제추행 치상 등 다름 혐의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그런데 7일 방송된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에 따르면, 김 감독이 고소한 A씨의 무고죄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범죄를 완벽하게 증명할 만한 증거는 없지만 고소장에 첨부된 자료들이나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명백하게 허위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 MBC


김기덕 감독 피해자들의 추가 증언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이후 5개월 만에 방송된 후속편 '거장의 민낯, 그 후' 편은 김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와 2차 피해를 다뤘다. < PD수첩 > 1편이 방송된 이후 또 다른 제보가 잇따랐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은 방송 직전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에 관해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 이명숙 대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아직은 A, B, C 여배우들이 누구인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신분이 잘 보호되어 왔고요. 그런데 (고소 이후) '내가 다 공개되는 건 아닌가', 그리고 '이 검찰이 과연 내가 진실이라고 말한 것을 진실로 잘 조사해줄까',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까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에 대한 검찰, 법원에 대한 불안함, 불신 이런 것까지도 있는 거죠."

이날 방송 대부분은 피해자들(과 그의 지인)의 추가 인터뷰와 영화 스태프들의 추가 제보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앞서 방송한 내용을 다시 보여주기도 하고, '거북하다'는 시청자의 지적이 나올 만큼 피해 상황 재연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직접 방송에서 인터뷰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돼 지인들이 인터뷰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다른 여배우는 그나마 방송이 나간 이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했다.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 MBC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 MBC


여자 친구와 함께 김 감독의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다는 남성, 분장 스태프였다는 여성, 또 다른 여성 스태프까지 모두 과거 영화 촬영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했다는 추행에 관해 증언했다. 그 중 한 스태프는 방송에서 "(방송 내용보다 실제가) 그보다 더하죠. 그분들 나와서 이야기한 건 수위가 많이 조절된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반면, 관련 인터뷰를 거절한 김기덕 감독은 제작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제작진은 그 중 "무엇을 방송하든 생각대로 의도대로 하면 된다", "그 방송 또한 제가 아는 사실과 다르면 소송을 추가로 해서 법적으로 밝히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내용을 공개했다.

 7일 방송예정인 MBC <PD수첩> '거장의 민낯, 그 후' 예고편.

7일 방송예정인 MBC '거장의 민낯, 그 후' 예고편. ⓒ MBC


또 다른 성폭력 논란, 조재현의 경우

이날 방송의 또 다른 축은 '김기덕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조재현과 관련된 추가 폭로였다. 제작진은 일본 도쿄에서 만난 재일교포 여성 배우와 그의 어머니 인터뷰에 긴 분량을 할애했다. 강남의 한 가라오케 화장실에서 조재현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성폭행 당할 뻔했다고 주장한 한 여성의 인터뷰 역시 방송을 탔다.

방송이 나간 직후인 8일 오전 조재현은 변호인 측을 통해 방송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조재현은 "PD수첩의 내용은 절대 사실이 아니"며, < PD수첩 >이 "실질적인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거나 반론을 하였음에도 이러한 부분은 편집되어 방송이 되지 않았"고,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을 당사자 일방의 주장만 사실인 것처럼 방송"했다고 주장했다.

"저는 미투운동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현재도 자숙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협박하면서 금전을 요구하거나 검증되지 않는 허위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보도 내지 방송과 이에 편승한 악의적인 댓글 등에 대하여는 강력하게 대처할 생각이며, 이에 따라 저는 재일교포 여배우를 공갈 혐의로 고소를 하였으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법적대응을 할 예정입니다." (조재현 측 보도자료)

앞선 지난 3월 경찰은 김기덕·조재현 사건을 내사 중이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 경찰 관계자는 "피해 내용이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며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감독이나 조재현씨를 "소환해서 조사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 MBC


부족했던 방송, 그럼에도

한편, 이번 방송에 대해 재연장면이 너무 선정적이었다거나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내용에 선정적인 예고가 과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자칫 명예훼손 소송의 당사자인 < PD수첩 >이 추가 보도에 나선 데 대해 그 진의를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날 < PD수첩 >은 현재 미투 운동과 관련된 사건의 수사, 그리고 피해자들의 폭로가 법과 여론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방송이었다.

미투 운동이 다소 잠잠해지는 사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잃어가고, 당사자들은 2차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권위자들은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거나 예고했다. 그 사이 벌어지는 2차 피해는 온전히 피해자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이선경 변호사의 충고와 용기를 내 폭로에 나섰던 한 여성 배우의 목소리를 경청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피해자) 이분들은 심지어 자기가 아주 오랫동안 피해를 입고도 말을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인 거예요. 가해 당사자가 굉장한 권력자이기 때문에 무서워서 몇 년 동안 꾹 참고 있다가 있는 용기를 다 끌어내서 말했단 말이에요. 원래 남아 있는 힘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무서워할 수 있고요. 그걸 노려요.

일단 피해자들이 겁먹고 수사에 협조를 안 하고 하면 '아, 제가 사실은 좀 기억이 잘못됐나 봐요, 잘못 말했나 봐요'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길 바라죠. 그렇게 해서 자기가 어쨌든 자기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그런 걸 회복하려고 하는 거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의 회복을 노립니다." (이선경 변호사)

"조재현씨, 김기덕 감독 피해자가 많은데 너무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제가 그것을 알아봤더니 다들 이 사람들이 가진 힘을 되게 두려워해요. 그들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고 분명히 이렇게 말을 했을 때 그 여자 배우들을 오히려 우습게 만들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제가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여성 배우 C씨)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MBC < PD수첩 > '거장의 민낯 그 후'편 중 한 장면 ⓒ MBC



김기덕 조재현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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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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