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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 아래 숨쉬기도 벅찬 나날이다. 그해 여름도 그랬을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과 9일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경남 합천에서는 한국인 원폭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행사가 진행되었고, 일본 NHK에서도 처음으로 이 한국인 추모식을 생중계했다고 한다. 매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큰 규모로 치러지는 추모식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라 할 수 있으나, 합천에서 원폭피해자단체와 지원 시민단체의 주최로 매년 문화행사 및 심포지엄 등 비핵평화대회와 함께 진행되는 이 행사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가사키에서도 조선인 원폭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식이 매년 8월 9일 아침에 열리고 있다. 일본 시민들에 의해서 말이다. 해마다 이날 아침이면 나가사키 원폭희생조선인 추모비 앞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던 이가 있었다.

군함도에 강제연행된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역사를 발굴하여 그 진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나가사키 전역을 돌며 직접 조선인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하여 보고서를 내놓았으며,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 한국인 원폭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운동과 함께 재일조선인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서 평생을 쉼 없이 헌신했던 일본인. 지난 2017년 4월, 병마로 인하여 하늘의 별이 된 그분. 바로 나가사키 대학의 교수였으며,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이자,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이사장이었던 고 다카자네 야스노리 선생님이다.

다카자네 선생님이 나가사키뿐 아니라 일본 사회와 한국, 중국 등에 남긴 선한 영향력과 감동, 그가 살아온 삶의 공적에 비할 때, 그는 한국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지난 4월에 그의 1주기에 맞춰 발간된 추모문집에 실린 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고, 또 얼마나 많은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인물인가를 알 수가 있다.

강제동원·원폭·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에 일생 바친 일본인

 2009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는 다카자네 씨.
 2009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는 다카자네 씨.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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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였던 다카자네 선생님은 일본의 전쟁 책임과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고 인정하며,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지 않고 후세에 올바르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셨다.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 핵무기를 반대하는 활동뿐 아니라, 과거 일본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 민중의 입장에서 그 진실을 밝히고 철저한 전후 보상을 실현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으셨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 원폭피해자와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 실태조사를 비롯하여 조선, 중국인 등 강제동원·원폭·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운동에 인생을 바쳤다. 실태조사뿐 아니라, 재판이나 증언집회, 피폭자건강수첩 발급을 위한 도움도 주셨다. 재판이나 피폭자 건강수첩 발급 지원의 경우는 피해자 개개인의 정신적 피해를 위로하고 실제 생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러한 시민운동의 스승이자 동지였던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님의 작고 이후, 그 뜻을 이어받아 1995년에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설립하여, 돌아가시기 전까지 20년 이상 역사와 평화교육에 힘썼다.

이 자료관은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고발하며 일본이 아시아 민중에게 입힌 피해를 전시, 교육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일본의 초중고등학생들이 이 자료관을 견학하여 공교육이 알려주지 않은 역사를 배웠고,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한국인도 이 자료관을 많이 방문했다. 군함도나 강제연행 문제를 취재하는 한국 언론도 선생님을 제일 먼저 찾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는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도 이곳을 방문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일본의 양심을 밝히던 참된 지식인이었고, 나가사키의 큰 별이었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전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전경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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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관 내 판매 중인 자료관 소장 도서.
 자료관 내 판매 중인 자료관 소장 도서.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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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관을 견학하러 온 국내외 학생들로 붐비는 자료관 로비.
 자료관을 견학하러 온 국내외 학생들로 붐비는 자료관 로비.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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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나가사키에 머물던 2009년~2010년에는 한국 언론이나 시민단체, 연구기관에서도 나가사키 평화자료관과 군함도, 원폭피해자 문제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나가사키로 자주 취재를 왔다. 그중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2010년)을 맞아 KBS <역사스페셜>팀에서 군함도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그해 정월에는 <한겨레신문> <국민일보> 등에서도 군함도와 사키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고, 여름에는 아리랑TV와 진주MBC에서도 원폭피해자 문제를 취재하러 왔다. 그때마다 다카자네 선생님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취재를 도우셨다.

이 비슷한 시기에 한일 평화 100년 시민네트워크 답사팀이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도 있는데, 이때부터 시작해 다카자네 선생님과 필자, 한일평화100년시민네트워크 이대수 대표는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를 직접 만나 증언을 듣는 일을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2011년 1~2월에 한국 내 생존해 있는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일이 성사되었고, 그중 한 분인 대전의 최장섭 할아버지(2018년 1월 작고)를 나가사키로 직접 초청하여 군함도를 함께 방문하고 증언회도 개최했다. 마침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일본어판 2011년 발행, 박수경·전은옥 옮김, 도서출판 선인, 2017 번역본 발행)이라는 책을 마무리 집필 중이던 다카자네 선생님은 이 생존자 증언과 최근 소식까지 반영하여 책을 세상에 내놓으셨다.

또 선생님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을 방문하여 '원폭의 기억과 평화자료관 건립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하신 적도 있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열리는 강연회였지만, 원폭피해자 1세, 2세 분을 비롯하여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관계자와 평화활동가, 인근 지역의 시민운동가와 학생, 연구자들도 참석하여 선생님의 강연과 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은 고령의 원폭피해자들을 만나서도 잘 어울리셨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매운 한국음식도 잘 드시며 친근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강연회를 마친 후에는 원폭피해자 2세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원폭피해자 2세인 인권운동가 고 김형률 님의 자택도 방문하셨다.

 2010년 5월 합천평화의집 방문 당시.
 2010년 5월 합천평화의집 방문 당시.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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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한 일 중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오직 한길로>(오카 마사하루 지음, 세상의 소금, 2015)라는 오카 마사하루 목사님의 자서전을 한국어로 번역해 발간한 일이다. 이 일은 한국의 기독교평화교육단체인 기독교평화센터 오상열 소장님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일인데, 감사하게도 필자가 책의 번역자로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책을 내는 사람이나, 인쇄를 하는 사람이나, 번역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재능기부, 제작 실비 기부 등 다양한 형태로 자원하여 동참하였는데, 다카자네 선생님은 오카 목사님의 자서전이 한국에서 발행되는 것에 매우 기뻐하셨다. 유족인 따님의 허락을 받는 일부터 시작해, 발간 기념사 원고도 써 보내주시고,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도무지 뜻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발생했을 때 급히 연락을 드리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선생님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나가사키의 조선인 원폭피해와 탄광섬 하시마에서 벌어진 강제노동 실태 등의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셨다. 선생님 등이 앞서 발간한 <원폭과 조선인> 등의 보고서는 위원회가 진상조사보고서를 펴내는 데도 귀중한 초석이 되었고, 조사팀이 현지조사를 실시할 때도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다. 그 결실이 위원회의 보고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조선인 원폭피해에 대한 진상조사>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 등에 담겼다.

 2011년 1월 전남 순천에 사는 군함도 강제동원 생존자 박준구 할아버지를 만나 증언을 듣고 사진을 촬영하는 다카자네 씨.
 2011년 1월 전남 순천에 사는 군함도 강제동원 생존자 박준구 할아버지를 만나 증언을 듣고 사진을 촬영하는 다카자네 씨.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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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관에 전시된 하시마(군함도) 탄광 사망자 명단.
 자료관에 전시된 하시마(군함도) 탄광 사망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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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참 인자하고 따뜻하고 신사적이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분이었다. 겸손하고 온유하지만 한편으로는 올곧은 성품을 가진 어른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늘 양복을 갖춰 입으셨다. 군함도나 다카시마 같은 강제동원 현장 답사를 갈 때는 양복 정장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매우 단정한 차림새였다. 늘 몸가짐과 언행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애연가였던 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늘 자리를 피해서 흡연하신 것은 물론이고, 항상 담뱃불을 잘 꺼서 담뱃재를 깔끔하게 버릴 수 있도록 휴대용 케이스를 가지고 다니셨다.

또 필자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감탄했습니다"라는 칭찬을 자주 하셨다. 별로 감탄할 만큼 대단치 않은 일에도 감탄사를 남발하셔서 처음에는 선생님의 습관적인 말투인가보다 오해할 정도였다. 젊은 사람에게도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흔히 말하는 크고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상대방을 열심내게 만들고 격려하셨던 것이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 80~90대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다카자네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예의있게 대하셨으며, 잘 어울리셨다.

의롭고 선한 인품 가지고, 불의에 무릎꿇지 않던 결연한 실천가

선생님은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기도 했다. 행동주의 문학으로 평가되는 다수의 작품을 내놓으며 위험 상황 속에서도 높은 인간성과 연대 책임 등을 강조한 소설가 생텍쥐페리와 그 작품 세계를 전공한 선생님은 시민운동가뿐 아니라, 불문학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뛰어난 공로를 남겼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의 예술공로훈장을 받고 '기사' 칭호를 받기도 했다. 같은 나가사키 대학에 몸 담았던 다른 교수나 제자들에게도 생각의 차이, 정치사회적 입장의 차이를 뛰어넘어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 문학자였던 만큼 샹송도 곧잘 부르셨다. 에디뜨 삐아쁘의 '인생의 찬가'도 부르시고, 어떤 날은 한국의 패티 김 노래도 부르셨다. 그렇게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감수성 풍부하고 따뜻한 분이면서도,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일 없이 철두철미하게 맞선 행동가였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부고 소식에 한동안은 망연자실하였다. 필자 역시 실감이 나지 않아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선생님은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잊지 못할 소중한 별과 같은 존재였고,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가사키라는 이국땅이 마치 제2의 고향인 듯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다카자네 선생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인생은 참 멋진 인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배우고 함께 일할 기회를 얻어 영광이었고, 선생님이 베풀어주신 많은 배려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이제는 더 이상 8월 9일 아침이 되어도 선생님이 나가사키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는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히 쉬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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