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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온통 무지개 빛으로 물들었다. 거리는 가족, 친구와 함께 모여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화려한 분장을 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외치며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몸치인 나도 절로 몸이 움직여졌다.

이른 아침부터 교통이 통제된 캐나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주요 거리와 저녁 이벤트가 열리는 선셋비치 부근엔 시민과 관광객 등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유난히 햇살이 따가운 더운 날씨였다. 평소 붐비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의 성향상 이 정도면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올 법한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여유로웠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휠체어를 탄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반려견과 함께 참가한 가족이 더디게 발걸음을 옮기고 길을 막더라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축제를 즐기는 데는 성적지향도, 나이도, 인종도, 사회적 배경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적 다양성 존중은 우리의 자부심

지난 5일(밴쿠버 현지시간) 진행된 밴쿠버 프라이드 퍼레이드(Vancouver Pride Parade)의 풍경이다. 밴쿠버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은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 올 해로 40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들의 축제다. 이미 7월 27일부터 10일간 밴쿠버 전역에서 성소수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고 이날 퍼레이드는 대미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였다.

 2018 밴쿠버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한 장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왔고, 시민들에게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2018 밴쿠버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한 장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왔고, 시민들에게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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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축제는 성소수자들만 즐기는 축제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도 10살 난 아들과 함께 참석했지만, 더 어린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모두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며 축제를 즐겼다.

그도 그럴 것이 올 해 축제의 주제는 'Be You, Bring All of You'.  한국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인 뜻은 '너 자신이 되어라.' 그러니까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며 이를 서로 존중해주자는 의미다.

축제에 참석한 시민들의 표정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에 앞장서는 캐나다인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런 자부심은 몸이 불편하거나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다른 관람객들의 움직임을 방해해도 불평하기보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표현됐다.

많은 사람들과 이런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음에 서로 밀려 걷기 힘든 상황조차 즐기는 듯 했다. 때문에 더위 속에 많은 인파들과 부딪히면서도 우리 가족 역시 짜증이 나기보다는 오히려 즐겁게 축제를 즐길 수 있었으리라.

공공기관부터 앞장서는 성적 다양성 존중

도대체 밴쿠버 시민들의 다양성 존중에 대한 자부심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 이 축제가 40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회성 축제나 이벤트만으로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밴쿠버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자 성적다양성을 존중하려는 노력들이 이미 일상 속에서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밴쿠버 시내의 한 스타벅스에 표시된 성소수자 'safe place' 마크
 밴쿠버 시내의 한 스타벅스에 표시된 성소수자 'safe place' 마크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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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밴쿠버 시청 건물에는 캐나다 국기는 물론, 성적 다양성 존중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트렌스젠더를 상징하는 하늘색, 분홍색, 흰색의 띠무늬 깃발이 함께 걸려 있다. 시 자체에서 성적 다양성 존중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밴쿠버 시는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모든 공공기관의 화장실에 'transpeople welcome' 이라는 문구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시민들에게는 '차별금지'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밴쿠버 경찰이 담당하는 중요한 업무 역시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밴쿠버 경찰은 시내 곳곳의 커피숍 등을 성소수자들의 '안전한 장소(safe place)'로 지정하고 성적 정체감을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을 때 이곳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인 행위를 하거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연출됐을 경우, 즉각 경찰이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차별금지'

아이들 역시 성소수자 존중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받는다. 아이가 만 9살이던 지난해. 이곳의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사회수업의 첫 번째 주제는 '차별'이었다. 아이는 캐나다의 역사 안에서 벌어졌던 차별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그것들이 왜 잘못됐는지를 가장 먼저 배웠다. 그리고 동성결혼에 대해 조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소수자에 대해 교육한다는 이유로 교사가 비난받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다양한 성정체성 존중을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장식한 밴쿠버공공도서관 로비
 다양한 성정체성 존중을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장식한 밴쿠버공공도서관 로비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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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 역시 이맘때면 도서관 로비를 무지개 색으로 장식하고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알린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에 대한 어린이 도서 역시 여러 종류가 발행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학체험관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특별 행사를 자주 연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법을, 인종, 장애유무,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그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됨을 확실히 배워간다.

이런 존중에 대한 메시지는 상업적인 장면에서도 일상화되어 있다. 밴쿠버의 각종 매장에서 판매하는 결혼축하카드 중에는 '남남' '여여' 커플의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부를 남녀커플로만 한정짓지 않고 동성결혼도 결혼의 한 유형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밴쿠버의 유명기업과 상점들은 성소수자 지원을 통해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를 높인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직원들을 채용하고,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번 축제 때도 캐나다에 살면 누구나 알 만한 기업들이 대거 퍼레이드에 참여해 이벤트를 벌였다.

 동성결혼 커플들을 위한 축하카드
 동성결혼 커플들을 위한 축하카드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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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밴쿠버에서 사람들은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다른 사람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몸에 익힌다. 물론, 마음속으로 호불호를 가지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 전체의 이런 분위기는 마음 속 차별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을 방지한다. 아마도 밴쿠버가 매년 살기 좋은 도시 리스트에 드는 이유는 수려한 자연환경, 편리한 도시 인프라 외에도 이 같은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 했으리라.

나는 캐나다 영주권자도, 시민권자도 아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연수를 오게 되어 아주 잠시 머물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가족은 밴쿠버에 잠시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밴쿠버의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사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이 곳 사회의 단점과 어두운 면도 많이 만난다. 하지만, 서로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고,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은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심지어 동물까지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이런 노력에 자부심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각양 각색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캐나다 밴쿠버 사회가 신뢰감을 형성해가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퍼레이드에서 돌아온 후 우리 가족은 뻐근한 다리를 서로 주물러 주면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번 퍼레이드에 참여해 우리가 느낀 것들, 이곳에 살면서 배운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결코 잊지 않기로, 한국에 돌아가서도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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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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