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 MBC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질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젠더에 기반한 폭력범죄"라고 명확히 정의내리고 시작했다.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동의 없이 상대방의 신체를 촬영, 유포, 협박, 전시하는 행위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이란 법적 정의에 앞서 말이다.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는 이렇게 '디지털 성범죄'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는 동시에 실제 범죄 관련 판결을 통해 법 판결과 사법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처의 미흡함을 꼬집고 있었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심위원회에 신고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신고 증가 추이도 문제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016년에 8400여 건이었던 것이 2017년엔 10000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5월까지 6900여 건을 기록했다.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최근에야 이런 문제들이 심각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산 야동'이라 불린 것들이 사실 피해촬영물인 경우가 많은데, 이전엔 그걸 피해촬영물이란 인식없이 소비했던 것 같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좋아지는 길목마다 오히려 디지털 성범죄가 늘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스타트업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물에 대한 증가 배경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에 덧붙여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대표는 "미약한 처벌"이 디지털 성범죄의 증가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사법부의 실제 판결은 어땠을까. 왜 진행자 송은이와 서장훈을 비롯해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판결 내용을 들여다보며 한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을까.

국산 야동이 바로 '디지털 성범죄'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 MBC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된 여중생 B양과 화상채팅을 하게 된 A씨. 그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화면 속 B양의 알몸을 11차례 재촬영했고, 또 다른 여중생 C양에게는 알몸 동영상을 보내라고 협박, 강요했다. 이른바 '화상채팅 알몸 영상 재촬영 사건'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여중생 C양을 강요, 협박한 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지만, B양의 알몸을 재촬영한 것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는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러한 성폭력 혐의에 대한 사법부의 완벽한 '무죄' 선고에 대해 비판이 잇따랐다.

출연자인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법이 상식을 못 따라간 판결의 표본"이라고 지적했고, 조소담 대표는 "범죄자가 범망을 피해야겠다는 결심 없이 법망이 알아서 피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러한 휴대폰 사진과 영상을 촬영, 녹화하고 유포까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에서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심지어 전직 판사까지 이런 완전무결한 무죄 판결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명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연인 간 보복성 디지털 성범죄'도 도마에 올랐다. <판결의 온도>는 이별 후 앙심을 품은 남성이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이 직접 찍어 전송했던 나체 사진을 온라인 상에 노출하고 이를 빌미로 여성과 가족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던 사건이 예시 사례로 들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성폭력 범죄 위반이 아닌 음란물 유포죄 혐의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1,2심 모두 남성의 자백에 따라 유죄를 선고했던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황당한 이유에 대해 전직 판사인 신중권 변호사는 성폭력 특례법 14조 중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해야 한다는 법조항을 들었다.

대법원은 남성이 자신의 온라인 프로필에 게시한 나체 사진이 여성이 스스로 직접 촬영한 사진이라는 점을 들어 성폭력처벌법 위반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검찰 측이 정보송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죄로 공소장을 변경한 뒤에야 처벌이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 역시나 상식선이나 온라인 환경은 물론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란 비판이 역시나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를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하는 것과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는 것의 의미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 역시 지적됐다. 하지만 현재 법률상으로 음란물 유포죄는 형량이 현저히 약하다. 위에서 예로 든 사건과 같이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이 불가한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이날 출연한 표 의원이 고개를 숙이며 "법 개정" 약속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까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 MBC


마지막으로 다뤄진 사례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었다. 이들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해 형량이 낮은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음란물 유포 방조죄로 기소되기 때문이었다. 신중권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가뜩이나 음란물 유포죄가 법정 형량이 약한데 거기다 (정범이 아닌 방조범이란 이유로) 감경까지 하니 당연히 (형량이) 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진짜 어이가 없다. 이 사이트에서 피해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사이트만 만들었다거나 이렇게 악용될지 몰랐다, 유저들의 책임이다 라는 말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거다. 판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

프로파일러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대 불법 음란 사이트 운영자들의 변명에 대해 "엄벌"을 요구했다. 패널들의 주장도 대동소이했다. 출연자들은 결국 돈을 목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법 음란 사이트에 대해 "인터넷 성매매업소 개설" 등의 죄명으로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다.

수사기관의 의지와 그에 선행하는 강력한 판결에 대한 요구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입증하게 하는 현재 경찰의 수사 태도 역시 피해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는 현실이었다.

정부는 최근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 변형 카메라 관리 강화 ▲ 성적인 영상물 유포 시 처벌 강화 ▲ 가해자에게 해당 영상물 삭제 비용 부과 ▲ 불법 촬영 및 유포 관련 교육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불법 영상물 피해자들 위해 국비를 들여 영상물 삭제를 위한 지원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지가 10년이 거의 안 된다. 특히 온라인의 경우 실제 접촉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성범죄 피해에 노출이 되게 된다. 이렇게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정신적 상해를 인정하기 위한 많은 설득이 필요한 단계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끔찍한 피해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는지, 단지 가해자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수정 교수의 조언이다. 이날 패널들은 판결을 필두로 법 현실은 물론 경찰의 수사 태도나 솜방망이 처벌과 같이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사회적 빈틈'을 특히 지적하고 있었다. 이날 <판결의 온도>가 요약 정리한 내용은 이러한 신종 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동시에 사회적 인식을 촉구하는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제 범죄로 인식된 지 10년이 채 안 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범사회적 환기를 촉구하는.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3일 방송된 MBC <판결의 온도>의 한 장면. ⓒ MBC



판결의온도 디지털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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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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