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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없는 폭염에도 에어컨 없이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에도 에어컨 없이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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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근하면 바로 귀가하여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집순이던 내가 요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늦은 시간까지 영화관과 카페를 전전하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정말 너무 덥다"라고 할 정도인 요즘 날씨 탓이다.

중복이 지난 1일 어제 서울은 39.6도의 폭염을 기록하며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별명을 가진을 대구의 37.5도보다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이제는 대프리카 대신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라는 표현을 쓰기에 모자람이 없는 더위다.

서울에서 산 33년 동안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월세 사는 처지에 설치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언제 이사를 갈지 알 수 없어 에어컨 기계값과 설치비까지 생각하면 꽤나 목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여름에 지금 사는 4층 빌라의 맨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왔을 때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에어컨 구매를 보류하였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기 위해 우리 집은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2리터짜리 생수병에 물을 넣어 냉동고에서 깡깡 얼려 수건으로 둘러 죽부인 대용으로 삼고, 침대 위에는 시원한 대나무 돗자리를 깔았다. 덮고 자는 이불도 장롱 속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다. 초복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낮과 밤 동안 가스레인지 및 다림질을 일체 하지않고, 새벽에 제일 시원할 때 집안일을 몰아서 했다. 더위로 지친 심신을 보양하기 위해 수박을 사와 냉동고에 얼려 먹고, 오미자와 한라봉청을 담아 각얼음을 넣어 마시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열대야에 잠 못 드는 1~2주를 빼고는 위에 나열한 방법으로 그럭저럭 여름 한철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1994년도 이후 최고의 폭염을 자랑하는 올해는 여름을 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는 기분이다. 벽에 손을 가져다 대면 보일러를 몇 시간 동안 튼 것처럼 따뜻하고, 침대의 매트리스는 찜질방 같은 뜨끈함을 선사해준다. 이제 몸을 지지러 사우나가 아니라 집으로 귀가하면 되겠다는 '웃픈(웃기고 슬픈)' 생각이 든다. 대구에서 날씨가 너무 더워 스프링클러가 오작동되었다는데 우리 집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 실외기 설치를 위해 벽을 뚫겠다고 집주인과 합의하지 않은 것도 무척 후회된다. 창이 크고 천장이 낮아 벽걸이형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어 이동식 에어컨과 실외기 없는 창문형 에어컨을 알아보았다. 목돈이 나갈 걸 감수하고 지금 당장 주문한다 해도 빨라야 다음 주 혹은 다다음 주에나 도착할 수 있다는 게 에어컨 회사의 답변이었다. 물건이 늦게 온다니까 어차피 덥게 살 거 올해 구매를 내년으로 미룰까 고민되었다.

더위 앞에 장사 없다고. 에어컨 없이 이 여름날을 보낼 나와 같은 이웃들이 걱정된다. 우리 집은 그래도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없지만, 노약자가 있는 가족들의 여름은 흐르는 땀보다 더한 걱정이 앞설 것이다. 사람 잡는 날씨가 따로 없다.

옥탑방에 살면 여름에 많이 덥다고 하던데 빌라의 맨 꼭대기 층인 우리 집도 옥탑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옥상에 가서 물이라도 뿌려서 건물의 열기를 식혀보려 한다. 열대야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지옥 불가마 같은 무더위로 고생할 이웃들이 부디 여름을 무탈히 보내시길 바란다.


태그:#폭염, #무더위, #에어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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