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은 과연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국내외 언론을 통하여 여러 후보군의 이름만 무성할 뿐, 실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김판곤 축구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은 최대한 이달까지 감독 선임을 마무리짓겠다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근 외국에서 일부 감독 후보들과 면담을 마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협회는 원활한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위해 자세한 감독 후보군이나 협상 내용을 결과가 마무리될 때까지 비공개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협회의 보안 의지에도 불구하고 차기 감독에 대한 여러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차기 감독은 외국인? 얼마나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전 브라질 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전 미국대표팀 감독,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일본대표팀 감독, 즐라트코 다리치 크로아티아 감독, 등 이미 유명한 해외 감독들의 이름이 잇달아 거론되고 있다. 이중에는 협회 측에서 직접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거나 일부 에이전트들이 의도적으로 부풀린 소문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축구팬들은 이름만 대도 알 만한 거물급 감독들의 한국행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각오 밝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7일 오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 ⓒ 연합뉴스


현재 여론은 대체로 국내파보다는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일궈낸 거스 히딩크 감독에 비견될 만한 명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히딩크 감독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까다로운 조건이다. 이름값이 높은 유명 외국 감독들의 경우 몸값도 높을 수밖에 없다. 감독 개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봉만이 아니라 감독이 직접 자신을 보좌할 코치진이나 각종 지원스 태프를 데려오는 데도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유명 지도자일수록 까다로운 부대 조건이 붙는 경우도 많다. 2014년 당시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재택근무, 세금 대납 등 상식 이하의 조건을 대한축구협회에 요구하다가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그간의 행보를 봤을 때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이 외국인 감독 영입에 얼마나 과감한 투자를 감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또한 외국인 감독들의 기준에서 볼 때는 한국행이 지도자 커리어에 그리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도 걸림돌이다. 유럽이나 남미 기준으로 변방에 불과한 동아시아에서 차기 월드컵까지 최대 4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축구계 주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 2002년의 히딩크나 2006년의 딕 아드보카트, 2017년의 히딩크와 클린스만 등 해외 명장들이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보였던 시점은 월드컵을 불과 1년 앞두고 한국이 본선행을 확정지은 시점이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이나 중동에 비하여 연봉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닌데, 정작 성적에 대한 부담이나 극성스러운 여론의 압박은 오히려 축구 강국들 못지않다.

차기 대표팀 감독을 기대하는 눈높이는 높아지고...

문제는 축구협회가 벌써 차기 대표팀 감독에 대한 눈높이를 크게 올려놨다는 점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새로운 대표팀 사령탑의 자격조건으로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와 본선 경험, 대륙컵이나 세계적인 리그에서 성과를 낸 경험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해야 한다는 스타일의 조건까지 덧붙였다.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은 사실상 외국인 감독밖에 없다.

물론 김판곤 위원장은 이 기준이 반드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이드라인 개념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축구팬들에게는 사실상 국내파를 배제하고 해외의 명장을 영입하겠다는 '공약'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14년 당시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비슷한 조건을 제시한 바 있으나 우선순위였던 감독들의 영입에 잇달아 실패하며 결국 데려온 것은 뛰어나지 않은 지도자 커리어를 지녔던 울리 슈틸리케였다. 이번에도 국대선임위가 슈틸리케 같이 협회가 제시한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외국인 감독을 데려온다면 오히려 거센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질적으로 외국인 감독 선임에 무게를 두고 있으면서 기존 신태용 감독의 거취를 명확하게 결론짓지 않은 것도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지 벌써 시간이 꽤 흘렀지만 축구협회는 아직도 신태용 감독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7월로 계약이 만료되는 신 감독은 여전히 축구대표팀 차기감독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김판곤 위원장이 밝힌 차기 감독의 기준에 따르면 신태용 감독의 연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신태용 감독이 지난 1년간 대표팀을 이끌면서 남긴 공과나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가 여전히 신 감독을 놓아주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외국인 감독 영입이 무산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부른다. 심지어 일부 축구팬들은 '2007년 허정무나 2014년 홍명보 전 감독의 선임 사례처럼 외국인 감독 영입설을 무수하게 흘려놓다가 결국 다시 국내파 감독으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러시아월드컵 소감 밝히는 신태용 감독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팀을 2대 0으로 이겼으나,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축구대표팀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해단식을 가졌다. 신태용 감독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태용 감독의 모습 ⓒ 권우성


신 감독에 관한 평가는 비록 엇갈리지만 다시 한번 대표팀 감독직의 기회가 주어질 만한 나름의 자격도 충분히 갖췄다. 내년 1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아시안컵과의 연속성이라든가, 한 차례 월드컵 본선을 소화한 경험, 사상 최초의 월드컵 독일전 승리의 성과 등은 현재 국내파 감독 중에서 신태용이라는 인물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장점이다. 그러나 협회가 신 감독을 차기 감독 후보로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일단 지난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평가와 신 감독의 거취 문제부터 확실하게 결론을 내린 뒤에 외국인 감독 영입 등을 검토해도 했어야 맞다.

만약 신 감독이 현재 대표팀 감독 후보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면 다른 국내파 감독들도 크게 나을 게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애초에 유럽-남미 출신의 해외 명장들과 비교하여 커리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국내파 감독을 동일한 기준으로 놓고 평가하겠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신태용이나 어떤 다른 국내파 감독을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다 한들,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지 못하여 차순위로 국내파 감독을 '땜빵' 취급하는 모양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축구협회가 차기 감독 영입에 대한 부담을 스스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김판곤 위원장의 선임위원회가 팬들의 기대에 맞는 수준의 유명 감독을 가급적 빠른 시기에 얼마나 적절한 조건과 가격에 데려올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미 여론의 눈높이는 한없이 높아진 데 비하여 상황은 여러모로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축구의 새 선장을 찾는 여정은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축구대표팀 축구협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