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

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 ⓒ 부천영화제


"기존 틀 안에서의 개선이나 해결은 불가능하다. 오직 법제화만이 답이다."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영화산업 불공정 문제에 대해 영화인들이 생각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법제화'였다. 2012년부터 체결된 동반성장협약도 무용지물이었고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률도 영화산업 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부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천 판타스틱 큐브에서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 주관으로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영화인들은 "입법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영화계 인사들은 "그간 영화계가 상생을 모색한 주요 협약들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공정거래위에서 고발한 불공정 행위 역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라며 지금 구조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스크린독과점 등 영화산업의 심각한 문제들의 경우 입법 외에는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지켜지지 않는 협약

 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

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 ⓒ 부천영화제


정인선 영화진흥위원회 객원연구원은 "배급 상영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 외에 기획개발과 제작 투자 등에서도 다양한 불공정행위가 발생한다"라며 "표준계약서가 마련된 시점 이후에도 결코 감소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정 연구원은 예매가 열리는 시기와 상영관 배정 및 최소 상영, 정산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2014년 체결된 영화 상영 및 배급시장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에 따르면 상영관은 개봉하는 주의 월요일을 예매 개시일로 명시해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전송해야 한다.

그러나 직배사와 CJ, 롯데 등 대기업 배급사들은 이 규정을 유리하게 보장받고 있으나 규모가 작은 영화사들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정 연구원은 밝혔다. 핵심 상업영화와 대기업 배급사들의 작품을 군소 배급사들과 비교하면 보장율은 최대 2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기대감이 높은 영화들은 개봉 일주일 전부터 예매를 할 수 있도록 창이 열리는 반면, 중저예산 영화들은 80%가까이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연구원에 따르면, 상영관 배정에서도 '최소 1주일의 상영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협약에 있으나 하루 5회의 상영을 1주일 동안 보장받는 영화는 주로 CJ, 롯데, NEW, CGV 아트하우스, 쇼박스와 직배사 작품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7일간 35회 이상의 상영을 보장받고 있으나 기타 배급사 작품들 중에는 이를 보장 받는 것이 5%도 채 안 된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에 상영을 배정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협약에 따른 상영 보장율은 80.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통계적 착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홍보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데 있어 투자배급사가 제작사와 협의도 하지 않고 집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수익에 대한 정산도 동반성장협약에 규정된 60일이 아닌 90일~100일 이상이 걸리는 등 협약 자체가 무색할 정도지만 어떤 개선의 전조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영화산업의 협약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대응 방향으로 협약의 수정 및 보완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나, 이를 통해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영과 배급만 분리해도 60% 이상 해소

 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에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영화시장에서의 독과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5일 오후 부천시청 내 판타스틱 큐브에서 열린 ‘한국영화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할까? 토론회에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영화시장에서의 독과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부천영화제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정 연구원을 통해 드러났듯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나 공정거래법, 자율협약 등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규제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률 제조와 시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배 이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영진위, 영화계의 협의체인 가칭 '영화산업민주화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행위규제와 구조규제를 법제화 시켜 영화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상영과 배급을 분리하자는 주장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의 통과에 주력하자는 의미다.

이준동 영진위 부위원장 역시 "이명박 정권 때  당시 대기업과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지만 대기업들의 변명 자리에 불과했다"며 "이를 어겨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30여 개의 협약  내용 중 상영과 배급만 분리돼도 60%이상 해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CJ와 롯데, 메가박스 등 3개사가 상영시장의 93%, 투자배급시장의 60~80%를 점유하면서 차별적 부율과 무료초대권 등의 불리한 조건을 업계 표준으로 제시해 중소배급사들의 이윤을 압착하고 있다"라며 "상영배급 겸영 금지와 상영배급 합산 점유율 제한 등을 통해 동시과점적 수직계열화를 구조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일부 영화인들은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도 비판했다. 영화인들은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해 관련 조처를 취해도 법원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영화 산업에 있어 대기업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법부와의 연관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독과점 영대위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영비법 개정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법률 개정안이 지금도 국회에 계류중이기 때문이다. 자칫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경우 개정안은 폐기되고 다음 국회에서 새로 발의돼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만 더 심화될 따름이다.

반독과점 영대위의 한 관계자는 "각 단체나 영화인들 간의 이해가 달라 영화계 전체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영화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영비법 반독과점 영대위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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