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 KBS


'지상의 스튜어디스.' 2004년 첫 선발된 KTX 여성 승무원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단정하고 준수한 외모, 비교적 높은 연봉, 여성의 직업으로서 사회적 인식까지 높은 스튜어디스가 가진 이미지의 힘이었다. 그러나 2년 뒤, KTX 1기 여성 승무원들이 부당한 근무 환경과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 사람들은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 승무원들이 데모를 한다는 겉모습에 집중했다. 왜 그녀들이 코레일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질긴 투쟁을 이어나가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KTX 여성 승무원들이 노동 환경 개선과 직접 고용 약속 이행을 요구한 대가는 혹독했다. 코레일 측은 승무원들을 해고했고 승무원들은 코레일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 2심에서는 KTX 승무원들이 코레일 직원이라고 인정했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어 2015년 11월 파기환송심에서도 최종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코레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지난 5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정부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던 중 '협조사례'로 KTX 해고 승무원 사건도 포함되었다는 문건이 확보된 이후, 이를 규명하고자하는 해고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파업에 참여한 이후 13년째, 여전히 KTX 해고 승무원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는 33명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에서 농성을 벌이고, 노숙도 불사한다. KTX 승무원 신분으로 파업에 나설 때는 대부분 미혼이었던 그녀들은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자신들을 해고시킨 거대한 세력에 맞서 길고 외로운 투쟁을 지속하는 것은 'KTX 승무원'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년째... 서울역서 농성하는 KTX 해고 승무원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 KBS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여성이 사회적 이슈 현장을 찾아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사토크쇼다. 4년 전, 같은 이름으로 상반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 이슈의 현장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당시 정치인들은 모두 남자였고, 여성 변호사가 함께하는 형식이었다. 반면, 2018년 새롭게 탄생한 <거리의 만찬>은 진행을 맡은 박미선부터 정의당 이정미 대표, 정치학 박사 김지윤까지, 모든 출연진이 여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세 명의 여성들은 현 여성 노동운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KTX 해고 여성 승무원들을 찾아간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박미선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KTX 해고 승무원들이 농성을 벌이는 서울역 앞으로 찾아간 출연자들은 이동 중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조금씩 털어놓는다.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인상깊은 족적을 남긴 그녀들이지만, 그들 또한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나 편견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같은 여성으로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2부작으로 기획된 <거리의 만찬>이 주목을 받은 것도, 여성이 이끄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상징성에 있었다. 전원 여성 출연자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도 보기 드문 현실이다. 보통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시사 대담 프로그램을 전원 여성이 진행한다는 것은 획기적으로 보일 정도다. 그렇기에 <거리의 만찬>에 참여하는 출연자들의 어깨 또한 저절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KTX 해고 승무원들의 이야기는 그간 어떤 방송에서도 면밀하게 다뤄지지 않았기에, 해고 승무원들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거리의 만찬>의 책임감은 막중해 보인다.

젊고 예쁜 여성의 시위? 그 너머에 있는 현실들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 KBS


KTX 해고 승무원들을 찾아간 <거리의 만찬> 출연진들은 일상의 안부부터 그동안 꽁꽁 숨겨올 수밖에 없었던 투쟁의 뒷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들의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을 때 울먹이는 해고 승무원들을 다독이며, 그녀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한다.

첨예한 투쟁의 현장을 찾아가 때로는 농담도 건네고,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에 많은 힘이 되어준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 <거리의 만찬>은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에 비해서 연성화된 느낌도 없지 않다. 허나 기존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KTX 해고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그 실체를 알리려는 시도조차 많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여성의 눈으로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바라보고 공감과 이해를 표하는 <거리의 만찬>의 접근법은 그 자체로 큰 의의를 가진다.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지난 13일 방영한 KBS 1TV <거리의 만찬> 한 장면 ⓒ KBS


KTX 해고 여성 승무원 사건은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만연해진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거리로 나선 여성 노동자들의 용감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쁜 외모의 젊은 여성들이 시위를 한다는 사실에만 눈길을 보냈을 뿐, 그녀들의 투쟁 자체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KTX 여성 승무원들의 파업이 큰 이슈가 되었음에도, 십수년째 그녀들의 복직이 요원한 이유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KTX 해고 승무원 사건 외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뒤집어쓴 사진으로 화제가 된 동일방직 사건을 비롯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등 부당하게 해고된 이후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KTX 해고 승무원 사건은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첫 단추를 꿴 것 뿐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긋난 현상을 함께 고치고자 하는 <거리의 만찬>을 좀 더 방송에서 많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리의 만찬 여성 KTX 해고 승무원 시사토크쇼 방송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