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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며칠 내리던 중에 한 이틀 햇살이 쨍했다. 미뤄두었던 빨래도 하고 집안을 거풍하며 하루를 보냈더니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싫었다. 잠자리에 더 누워있고 싶어 꾸무럭대며 시간을 보내는데 밖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지금 마음이 바쁘다. 빨리 식탁을 주방에 들여놓고 싶은 마음에 아침부터 부산하다. 아직 채 일곱 시도 되지 않았는데, 어디를 가자고 하는 걸까. 마치 손에 넣고 싶었던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 남편은 건재상에 가자고 했다. 식탁에 바를 식물성 오일을 사오자고 했다.

저어새를 만난 아침

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 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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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는 사람에게 좋은 재목을 얻었다. 길이가 270센티미터에 넓이도 두 자가 넘는 큰 나무 판자였다. 붉은 빛이 도는 홍송(紅松)이었으니 나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송판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식탁을 만들었다. 열 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송판을 다듬어야 했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열중했다. 완성한 식탁은 아주 훌륭했다.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쓰다듬는 느낌이 참 좋았다. 나무의 나이테와 옹이는 그 자체가 그림이었고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근사한 카페에서나 보던 원목 식탁을 완성했다. 더구나 한국산 소나무로 만들었으니 오죽 예쁘겠는가. 음식물을 흘려도 국물이 배지 않도록 기름을 칠해줘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배꽃 동네 삼동암리

페인트와 건축 자재들을 파는 가게로 갔다. 건축 관련 공사는 대부분 아침 일찍 시작되기 때문에 건재상도 일곱 시면 개점할 것이다. 그런데 7시 30분에 문을 연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지 뭔가. 이십 분도 더 넘게 시간이 비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오기에도,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기다리지 말고 동네 한 바퀴 둘러보자. 저 윗동네로 가볼까?"

남편이 제안했다. 그쪽 동네는 봄이면 배꽃이 하얗게 피어 온 동네가 꽃잔치를 하는 '삼동암리'였다. 해마다 봄이면 배꽃을 보러 이 동네로 오고는 했는데 올해는 어영부영 하다가 꽃 필 때를 놓쳐 버렸다. 그 사이에 탱자 알 크기의 배가 가지마다 오롱조롱 달려 있었다.

아침 일찍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새들. 저어새도 서른 마리 이상 있었다.
 아침 일찍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새들. 저어새도 서른 마리 이상 있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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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처럼 생긴 부리로 강바닥을 훑는 저어새.
 주걱처럼 생긴 부리로 강바닥을 훑는 저어새.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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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라 그런지 제법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난다. 강이 귀한 강화에서는 개울 정도의 강에도 '천(川)'이라는 이름을 달아 주는데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산이 높고 골짜기도 깊은 곳에서는 강 역시 크고 수량도 많다. 그러나 강화도에서는 물을 많이 품고 있는 산이 드문지 큰 강이 없다. 저어새가 놀고 있는 이곳 삼동암천도 그리 큰 강은 아니다.

"저기 희끗하게 보이는 저게 뭐지?"

촐촐대며 흘러가는 물소리에 빠져있던 내 눈에 뭔가가 보였다. 새들이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머리를 들었다 숙였다 하며 부지런히 물고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고개를 쳐들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새들은 왜가리일 거야. 목이 긴 걸 봐서 틀림없다. 그렇다면 고개를 처박고 계속 물속을 훑고 있는 저 새들은 이름이 뭘까? 주둥이가 너부데데한 걸로 봐서 '저어새'가 분명하다.

희끗하게 보이는 저것, 저어새?

순간 우리 부부는 횡재했다는 소리를 숨죽여 했다. 저어새를 보다니, 그것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물고기를 사냥하고 있는 것을 보다니, 완전 횡재했다. 저어새는 물고기를 잡느라고 바쁜지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쳐다보지도 않는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새들은 다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니 차 안에서 관찰해야 한다. 수백 수천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하며 새들은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겪고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화급하게 달아난다. 새가 놀라지 않도록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하지만 이미 외통길로 들어섰는지라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차의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가며 소리 없이 새들을 보았다.

삼동암천을 찾아온 저어새들.
 삼동암천을 찾아온 저어새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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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암천을 찾아온 저어새들.
 삼동암천을 찾아온 저어새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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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는 아주 귀한 새다. 이 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위기종(EN)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로 지구상 생존 개체 수는 2014년 동시센서스에서 2726개체가 확인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205호이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을 조사하여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 II급'으로 분류하였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하여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이다.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저어새

현재 50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 야생동식물 I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포유류는 11종으로 늑대·대륙사슴·반달가슴곰· 황금 박쥐로 불리기도 하는 붉은박쥐·사향노루·산양·수달·스라소니·여우·표범·호랑이가 해당된다. 조류는 12종으로 검독수리·넓적부리도요·노랑부리백로·두루미·매·참수리·청다리도요사촌·크낙새·혹고니·황새·흰꼬리수리가 있다. 저어새도 그중 하나다.

저어새의 영어 이름은 'Spoonbill'이다. 부리가 숟가락처럼 납작하고 길어서 생긴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에서 가을까지 지내는 여름 철새로 일본, 대만, 홍콩, 인도차이나, 베트남 등에서 겨울을 보낸다. 강화를 포함한 경기만 일대가 세계 최대의 저어새 번식지이고, 강화도에 딸린 무인도에서 주로 번식해 11월까지 지내다 떠난다.

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 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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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삼동암천에서 만난 저어새.
ⓒ 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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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는 너무나 귀한 새여서 쉽게 볼 수 없다. 강화에 산 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저어새를 본 적은 몇 번 안 된다. 몇 년 전에 볼음도의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저어새를 대여섯 마리 본 적이 있고 재작년에는 석모도가 건너다보이는 건평리 바닷가 갯벌에서도 두어 마리 보았다.

이렇게 보기가 어려운 새인데  수십 마리의 저어새를 만나다니, 이건 필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우리에게 하늘이 준 선물일 거야. 우리는 물속을 열심히 부리로 젓는 저어새를 숨죽여 구경하였다.

'2018 강화갯벌 저어새 축제'에서 저어새를 만나자

저어새는 강화군의 군조(郡鳥)다. 강화군에서는 세계 최대 저어새 번식지인 강화도를 널리 알리며 보전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다가오는 8월 4일부터 5일, 이틀간 '2018 강화갯벌 및 저어새축제'가 개최된다. 

'생태교육허브 물새알'이 주관하고 문화재청과 강화군청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동막해수욕장에서 열린다. 그곳에서 1.2㎞ 떨어진 바다에 저어새 번식지인 각시바위가 있는데, 배를 타고 그 근처까지 가서 관찰하는 시간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각시바위 앞 200~300m까지만 접근한다고 했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많아져서 아무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많아져서 아무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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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또 저어새를 보러 갔다.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댓 마리 정도의 저어새들이 고개를 숙이고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새들과 함께 강바닥을 부지런히 훑고 있었다.

새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저어새를 봤다고 했더니 "강화도는 나가기만 하면 천연기념물 저어새를 볼 수 있으니 정말 좋은 동네입니다"라고 했다. 그 분 말대로 강화도는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들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보호종인 저어새에게는 강화도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나 보다.

저어새가 강화도에 찾아와서 알을 낳고 번식을 해서 참 고맙다. 서식지 보전이 잘 되어서 강화도 이곳저곳에서 저어새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2018 강화갯벌 및 저어새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기를 기원한다.

'2018 강화갯벌 및 저어새축제'가 8월 4일에서 5일까지 동막해수욕장에서 열립니다.
 '2018 강화갯벌 및 저어새축제'가 8월 4일에서 5일까지 동막해수욕장에서 열립니다.
ⓒ 생태교육허브 물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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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저어새, #강화도, #생태교육허브물새알, #멸종위기야생동식물, #천연기념물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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