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머물고 있는 549명의 난민 문제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중순께부터 현재까지 이 문제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찬반양론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나 법무부는 명확한 입장이나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가운데 난민 관련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배우 정우성이다. 정우성은 그간 사회적인 발언을 소신 있게 해오면서 대부분 찬사와 지지를 받았다. 한데 난민 관련 발언만큼은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되레 그의 인터뷰 기사엔 모욕성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정우성은 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20여분간 난민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구하는 견해를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는 난민 반대 입장을 지지하는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사려 깊고 차분한 태도로 반박했다.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두 번, 세 번 꼼꼼히 들여다봤다고 했다. 악성 댓글들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했으나 조심스러운 음성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청취자들의 신뢰를 사고자 노력했다.   

발언하는 배우 정우성 배우 정우성이 지난 6월 26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난민 문제와 관련해 소신을 밝히고 있다.

▲ 발언하는 배우 정우성 배우 정우성이 지난 6월 26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난민 문제와 관련해 소신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정우성의 호소

난민 문제는 편견을 배제하고 정확한 정보와 사실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우성은 이날 방송을 통해 말레이시아는 난민지위협약 비준국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예메니(예멘사람)들이 같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점, 브로커의 존재와 이들이 하는 일 등 일반 시민들이 잘 몰랐던 사실들을 전달했다. UN난민기구 친선대사로 4년째 활동해온 정우성은 난민을 포용하고 취업 알선 등을 통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결국 한국사회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임을 호소했다.  

"편견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불행하게도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게 우리 사회의 문제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또 난민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리하려고 하더라고요. 그 부분은 조금 안타까웠어요. 2007년에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라는 한국 사람이 총기 난사를 했을 때, 당시 미국 사회에선 '한국 사람들은 다 총기 난사범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쟤네 한국 애들 조심해' 이랬을까요? 그러지 않았거든요. 그냥 '그 사람은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인 거야'라고 했죠."

이들이 한국사회의 냉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떠돌다가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게 하려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고, 우리 사회의 문화와 규범 등에 대해 재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우성은 또 "난민 문제는 한 개인이나 한 국가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같이 책임을 동반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을 얘기하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책임을 지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상담 순서 기다리는 예멘 난민신청자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상담 순서 기다리는 예멘 난민신청자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난민, 찬반의 문제 아냐

예메니들은 제주에 도착한 이상 국제사회의 약속인 '유엔난민협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최대 3~5년간 국내에 머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찬성 혹은 반대 논리로 접근하기 보단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유럽에서 10년간 이방인으로 살면서 직접 보고 겪은 난민 문제를 바탕으로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에 "예멘 난민 남성이 내국인 남성 집단의 기준에서 약자화되어 있으며 이를 난민에 대한 유일한 인식법으로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남성중심적 인도주의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해당 글에 따르면 난민공동체 내에도 '위계'가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한 성인 난민이 미성년자 난민을 갈취하거나 구걸·좀도둑질을 강제하는 경우가 유럽에서 흔히 관찰된다고 한다. 해당 글은 개인 SNS에 올라온 것임에도 게재 즉시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러왔다. 난민을 순진한 존재로 보고 "낭만화하는" 입장과 배제·혐오하는 입장 양쪽을 모두 경계했기에 더 공격받기 쉬웠다. 윤김 교수는 이들의 재사회화, 한국어 교육, 미성년에 대한 교육기회 제공, 내국인 인권교육 등을 제안했다.    

이렇듯 난민 문제는 한국 현실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타 종교에 대한 존중, 전쟁·학살·기아를 피해 탈출해온 이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제주도민들의 심경도 다독여야 한다.

순서 기다리는 예멘 난민신청자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순서 기다리는 예멘 난민신청자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국내 난민 인정률은 약 4.1%다. 세계 평균인 38%에 한참 못 미친다.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해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국내에 머물 수 있지만 이마저도 7.6%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외에서 난민 인정률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 앞서 정우성이 방송에서 지적했듯 난민 심사가 수년을 끄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담당자가 38명으로 적은 편이고, 심사에 통역관도 부족하다.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등을 재교육하는 것도 시급하다. 다행히 제주특별자치도에선 이들에 대한 취업박람회뿐 아니라 재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또 천주교 사제들이 예멘 난민들과 일반 제주시민 가정을 일대일로 연계해 머물 곳을 마련해주는 등 정부의 조치와 정책에서 오는 한계와 사각지대를 종교 등 민간에서 보조하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제주는 만성적으로 구인난을 겪는 지역이다. 감귤 수확철이 되면 일당 외에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곳이다. 이외에도 농어업·서비스직에도 일손이 상시적으로 부족하다고 알려졌다. 한편에선 난민들의 출도 제한을 해제하는 것이 낫다는 활동가들의 주장도 볼 수 있는데, 경기지역에 이슬람문화권 커뮤니티가 이미 형성돼 있어서 그곳에 가서 같은 문화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취업하고 적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다

정우성은 <뉴스쇼>에서 난민이라는 외부 요소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번 문제를 계기로 더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로 삼자고 호소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난민은 난민 문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늘 불평등하고 불합리했어요. 그리고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던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갑자기 난민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문제가 커진 것 같은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런 갈등, 이런 것들도 잘 해결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좀 만들면 좀 더 성숙한 대한민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난민을 보살필 수 있는 국가도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회 안에서 이렇게 소외된 계층을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는 분위기로 이번 기회를 통해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망명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를 '난민(Displaced Persons)의 세기'로 규정했다. 20세기 전반에 주로 식민 지배와 세계전쟁, 정치적 전체주의가 무수한 난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재일교포인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돌베개·2007)에서 "20세기 후반기엔 냉전과 국지전쟁, 다국적기업의 지배와 수탈, 대규모 환경파괴, 미디어의 폭력 등에 의해 그보다 더 많은 난민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 "오늘날 전 세계가 단일한 시장경제권으로 편성돼 가는 현실은 이 같은 흐름을 폭발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우성은 20일 자신의 SNS에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게재했다.

정우성은 20일 자신의 SNS에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게재했다. ⓒ 정우성 인스타그램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난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전 세계의 난민이 6000만 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도 난민이었다'는 말을 한다. 전쟁과 분쟁이 있는 한 과거에 난민이었던 우리도 다시 난민이 될 수 있다. 정우성의 아래와 같은 발언은 한나 아렌트 및 서경식의 견해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결국엔 난민을 얘기하고 난민을 돕자라고 하는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분쟁과 전쟁은 없어져야 된다라고 난민들이 얘기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난민에 대한 관심은 그냥 어려운 사람을 돕자라는 그런 단순한 온정의 얘기가 아니라 이 분쟁을 어떻게 하면 없애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라는 그런 의사 표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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