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구자철, '외질을 막아라'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구자철이 독일의 메주트 외질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각 나라의 축구 실력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는 국제 축구 연맹(이하 FIFA)이 발표하는 FIFA 랭킹이다. 코카콜라에서 후원하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FIFA/코카콜라 월드 랭킹'이라 부르지만, 보통 줄여서 FIFA 랭킹이라 부른다.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포함하여 FIFA 랭킹 Top 10 중 칠레(9위)를 제외한 9팀이 본선에 출전했다. 각 조의 톱 시드에는 1위 독일부터 8위 폴란드까지 스위스(6월 기준 6위)를 제외한 7팀과 개최국 러시아가 배정되었는데, 이는 본선 조 추첨이 2017년 11월 순위를 기준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는 FIFA 랭킹 기준으로 상위권에 들었던 팀들의 성적이 영 신통치 않다. 우선 랭킹 1위에 올라 있던 디펜딩 챔피언 독일부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짐을 싸서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은 첫 경기에서 멕시코(15위)에게 패하고 스웨덴(24위)에게 간신히 승리한 뒤, 대한민국(57위)에게 충격패를 당하며 F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독일이 월드컵에서 1라운드 광탈을 겪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모든 라운드가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던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재경기까지 치르며 패한 것이 첫 번째 사례인데, 당시에는 참가국이 16팀에 불과했기 때문에 독일은 이전까지 참가했던 18번의 대회에서 모두 16강에 들었던 기록을 갖고 있었다(1930 우루과이 대회 불참, 1950 브라질 대회 전범이력 자격 정지).
FIFA 랭킹 Top 10 중 2팀은 조별리그 탈락, 현재 4팀만 생존8위 폴란드도 Top 10 중 유이하게 조별리그에서 광탈한 희생양이 됐다. 폴란드는 H조에서 세네갈(27위)과 콜롬비아(16위)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며 2경기만에 조기 탈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61위)에게 1점 차 승리를 거두며 승점은 챙겼지만, 경기 후반 공만 굴리던 일본에게서 공격권을 빼앗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만큼 의욕을 잃어버린 뒤였다.
일단 Top 10 중 7팀은 어떻게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그러나 16강전부터 상위권 팀들의 데스 매치가 성사되는 바람에 16강전의 절반인 4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살아남은 Top 10은 4팀에 불과하다.
우선 16강전 첫 경기부터 프랑스(7위, C조 1위)와 아르헨티나(5위, D조 2위)가 만나고 말았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90분 동안 무려 7골을 주고 받는 폭격 수준의 경기를 펼쳤고, 젊음과 스피드에서 우위를 보인 프랑스가 4-3 승리를 거뒀다. 4년 전 브라질에서 준우승을 거뒀던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간신히 승리한 가운데 그나마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16강전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포르투갈(4위, B조 2위)도 우루과이(14위, A조 1위)를 16강전부터 만나는 바람에 더 이상 월드컵에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조별리그 무실점의 단단한 수비력을 자랑했던 우루과이를 제대로 뚫지 못한 포르투갈은 1-2로 패하며 짐을 싸고 말았다. 16강전 첫 날부터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등의 슈퍼 스타들이 월드컵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16강전 두 번째 날에는 스페인(10위, B조 1위)이 희생양이 됐다. 포르투갈, 이란(37위), 모로코(41위)가 있는 B조를 힘겹게 1위로 통과했지만 하필이면 16강전부터 상대가 개최국인 러시아(70위)였다. 러시아는 FIFA 랭킹이 32개국 중 가장 낮았지만 홈 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는 개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스페인은 경기 초반 러시아의 베테랑 수비수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CSKA 모스크바)의 발목에 맞는 자책골에 힘입어 1점을 앞서갔지만, 전반 41분 아르템 쥬바(아르세날 툴라)에게 패널티킥 골을 허용했다. 이후 추가 득점이 없어 1-1 무승부로 끝난 경기는 승부차기를 통해 8강 티켓을 결정하게 됐다.
러시아의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CSKA 모스크바)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근호(현 울산 현대)의 슛을 잡다가 놓치는 등 그렇게 강한 이미지의 골키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2번이나 선방하며 소련 해체 이후 첫 8강 진출(마지막 8강 1970 멕시코 대회)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FIFA 랭킹 Top 10 중 2일(한국 시각) 기준으로 16강전을 치르지 않은 팀은 브라질(2위, E조 1위)과 벨기에(3위, G조 1위) 뿐이다. 브라질은 2일 23:00에 멕시코(15위, F조 2위)를 상대로, 벨기에는 3일 03:00에 일본(61위, H조 2위)을 상대로 16강전 경기를 시작한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브라질과 벨기에는 승리가 유력하다. 멕시코가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스웨덴에게 무기력하게 패한 점을 들면 브라질과의 경기력 차이가 현저하게 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콜롬비아를 상대로 승리한 경기가 경기 초반부터 상대 선수 퇴장에 패널티킥 찬스를 얻었던 점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확실하게 경기력 우위를 보이며 승리한 경기는 없었다.
대회 성격마다 다른 가중치, 월드컵 본선 끝나면 랭킹 크게 변해FIFA 랭킹은 각 국가의 A매치 경기 결과들에 따라 매치 포인트를 부여한 뒤, 상황별 공식에 따라 계산하여 1년 단위로 매치 포인트의 평균을 낸다. 최근 4년 동안의 경기에 기간별 가중치를 부여하며, 이 포인트들을 모두 합산하여 높은 점수를 받은 순서대로 순위가 결정된다. 보통 1개월 단위로 순위를 발표하며, 월드컵이 열릴 경우 대회 개막 직전과 폐막 직후에 순위가 발표된다.
우선 경기 결과에 대한 승점은 월드컵 조별리그와 동일하게 승리할 경우 3점, 무승부는 1점, 패배는 0점으로 처리한다. 승부차기가 이뤄질 경우에는 상위 라운드에 진출한 팀에게 승점 2점을 부여한다. 그 승점에 경기의 중요도를 곱하는데, 일반적인 친선 경기는 그대로 1을 곱하고, 월드컵이나 대륙 대회 예선은 2.5를 곱한다. 대륙 대회 본선이나 컨페더레이션스컵에는 3을 곱하며, 월드컵 본선 경기에는 4를 곱한다.
다음은 상대 팀 랭킹을 감안한 점수를 곱하는데, FIFA 랭킹 1위 팀을 상대한 경우 200을 곱하며, 다른 랭킹 팀을 상대한 경우 200에서 랭킹의 숫자만큼 뺀 점수를 곱한다. 여기에 두 팀의 대륙별 가중치의 평균 값을 추가로 곱하여 4가지 수를 모두 곱한 점수를 매치 포인트로 인정한다. 대륙별 가중치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바뀌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 직전까지는 남아메리카가 1, 유럽이 0.99, 나머지 대륙이 0.85였다.
정확한 계산 공식을 항상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FIFA 랭킹을 관리하는 방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기에 패하면 그 경기에 대한 점수는 0점이 되기 때문에 포인트 합산에 악영향을 준다. 그리고 최근 4년 이전의 경기 점수는 시간이 흘러 랭킹 반영 점수에서 빠지게 되므로 경기를 꾸준히 치르며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월드컵은 우승 점수 300점과 준우승 점수 50점이 보너스로 반영된다. 이 때문에 대륙 컵 대회나 월드컵 본선에서 성적이 좋은 팀들이 랭킹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한민국의 FIFA 랭킹이 2018년 6월 기준 57위에 그친 이유 중 하나로는 최근 4년 동안 2015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준우승을 제외하면 다른 국제 대회에서 성적이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FIFA 랭킹 판도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1승 2패로 월드컵을 끝냈기 때문에 FIFA 랭킹 1위 자리를 새로운 챔피언에게 내줄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년 전 우승을 통해 얻었던 포인트가 완전 소멸되어 점수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에 2위로 한 계단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꽤나 큰 폭으로 순위가 내려갈 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부터 엘로(Elo) 평점, FIFA 랭킹 신뢰도 상승할까?사실 FIFA 랭킹은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높은 신뢰도를 얻기 어려웠다. 대표적인 예로 이번 월드컵의 개최국인 러시아를 들 수 있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32개국 중 러시아가 FIFA 랭킹이 제일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월드컵 본선 규정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월드컵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유럽 예선을 전혀 치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친선 경기에 비해 2.5배의 가중치가 반영되는 경기들을 상당수 치르지 않으면서, 유럽 예선을 치렀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립한 포인트가 적었고 랭킹 관리에 손해를 본 것이다.
이 때문에 랭킹 포인트를 쌓지 못했던 브라질(2014년 개최국)도 2013년에 FIFA 랭킹이 한때 20위권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다만 브라질은 2013년에 월드컵 모의고사라 할 수 있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개최했고, 당시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스페인을 꺾으면서 랭킹을 다시 회복했다.
아시아 대륙 팀들의 FIFA 랭킹이 다른 대륙 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축구 실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각 대륙 축구 대회가 열리는 빈도 때문이기도 하다.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유역의 국가들이 치르는 북중미 골드컵 대회, 남아메리카 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회인 네이션스컵은 2년마다 열린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아시안컵보다 대륙 대회를 더 많이 치르는 만큼, 예선 경기를 포함해 가중치가 높은 경기를 아시아보다 더 많이 치르는 다른 대륙의 팀들은 그 만큼 FIFA 랭킹을 관리하기 수월하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난 뒤 반 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이 열리는 이유로 아시안컵의 예선은 월드컵 2차예선을 겸해 치른다. 이 때문에 아시아는 가중치 높은 경기를 할 여유가 그 만큼 더 적다.
이러한 각 대륙의 사정 때문에 FIFA 랭킹은 특히 아시아와 북중미 팀들의 실력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큰 신뢰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FIFA 측에서는 랭킹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부터 톱시드 배정에 기존 월드컵 성적을 배제하고 FIFA 랭킹만을 반영하고 있지만, 유럽과 남아메리카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톱시드를 받은 경우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유일했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FIFA에서는 이번 월드컵이 종료되고 발표되는 7월 FIFA 랭킹부터 Elo 평점 시스템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Elo 레이팅은 미국의 물리학자 출신 체스 선수였던 아르파드 엘뢰 박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실력 표현을 위해 개발한 평점 시스템이다.
Elo 평점을 반영하면 상위권 팀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경우 점수가 많이 오르고, 패배하더라도 점수가 조금만 떨어지게 된다. 반면 하위권 팀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점수가 많이 오르지 않지만, 패배할 경우 점수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새로운 랭킹 산정 시스템, 대한민국에게 영향은?
▲ 러시아월드컵 소감 밝히는 신태용 감독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팀을 2대 0으로 이겼으나,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축구대표팀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해단식을 가졌다. 신태용 감독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새로운 랭킹 산정 시스템이 도입되면 대한민국도 FIFA 랭킹 관리가 이전보다 크게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독일을 격파한 대한민국은 Elo 레이팅 부문에서 45위에서 26위로 급상승, 아시아에서는 이란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월드컵이 종료된 후 발표되는 7월 FIFA 랭킹에서 큰 상승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대한민국은 당장 2019 아시안컵에서 톱시드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과 최종예선에서 톱시드를 배정 받아 본선 진출 과정이 훨씬 쉬워진다. 이러한 시스템에 맞춰 2021년 11월에도 순위를 유지한다면 월드컵 본선에서도 4포트가 아닌 3포트에 배정되어 다소 까다로운 상대들을 일부 피할 수 있다.
특정 대륙에게 불리하게 적용된 FIFA 랭킹이 개선될 경우 일어나는 변화들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다양한 리그로 교류가 이뤄지면서 세계 축구 평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전통 강호들이나 FIFA 랭킹 상위권 팀들이 월드컵에서 조기에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이 크게 변할 가능성이 생겼다.
축구의 흐름이 변하는 가장 결정적인 시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인 월드컵이라 할 수 있다. 상위권에 든 팀이나 우승한 팀의 전술을 벤치마킹하고 배워가는 흐름도 많고, 기존 전략으로 큰 손해를 봤던 팀들이 이후 어떠한 모습으로 팀을 바꿔 월드컵에 재도전하는지 그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는 대회다.
독일은 월드컵 본선에서 F조에 배정된 뒤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대표팀 감독이었던 요하임 뢰브는 2004년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 때 코칭 스태프로 자리에 함께하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봤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패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더욱 철저히 독일의 약점을 파고 들었고, 결국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여 지치게 만든 뒤 역습하는 소모전에서 승리했다. 각 국가마다 독특한 컬러의 축구가 어떤 때에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다만 그 기록들이 누적되어 반영되는 포인트가 FIFA 랭킹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이번 FIFA 랭킹의 개편은 이전보다 더욱 각 국가들의 축구 실력을 현실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다만 단점은 향후 강호들이 낮은 랭킹 국가들과의 A매치를 회피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단점들을 FIFA가 어떻게 해소해나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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