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최고의 경기였다.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던 양 팀은 경기 초반부터 전 포지션에 걸쳐 피 튀기는 싸움을 이어갔다. 맞대결의 승자는 프랑스였다. 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인상적인 경기력을 펼친 페루는 용감한 패자로 남았다.

22일 오전 0시(한국 시간)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조별 예선 C조 2차전 프랑스와 페루의 맞대결에서는 전반 34분 음바페의 결승골에 힘입어 프랑스가 1-0 승리를 따냈다. 100%의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결과의 실리를 챙긴 프랑스는 일찍이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지난 덴마크전에 이어 인상적인 공격력을 뽐낸 페루는 지독한 골 결정력의 부재로 아쉽게 16강 도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21일(현지 시각)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오른쪽)가 페루를 상대로 득점한 뒤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오른쪽)가 페루를 상대로 득점한 뒤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양 팀은 경기 전부터 총력전을 예고했다. 프랑스는 1차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C조 최약체로 분류되던 호주를 상대로 미진한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 나아진 팀워크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들의 목표치인 우승은커녕 문턱도 밟아볼 수 없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번 경기에서 지루를 필두로 공격에 큰 힘을 싣고 나섰다. 국가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그였기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1차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페루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남은 두 경기인 프랑스와 호주전에서 반드시 호성적을 거둬야지만 16강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승리를 위해서 페루는 어떻게든 프랑스의 수비벽을 뚫어야 했다. 프랑스 수비수들의 경험보다 페루 공격수들의 경험치가 높다는 점이 그나마 희망요소였다. 페루 축구의 에이스 파르판과 지난 경기 후반 교체 출전으로 체력을 비축한 게레로가 몇 차례 되지 않는 기회에서 얼마만큼의 결정타를 날려주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강호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던 페루, 결정력 부재는 '옥에 티'

상대적인 전력 차에서 열세를 보이는 페루의 전술적 선택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많은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사용한 선 수비·후 역습이 그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었다. 페루는 예상치 못한 맞불 작전으로 나섰다. 사실 페루가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페루의 이러한 '닥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 1차전 덴마크전에서 시종일관 날카로운 공격력을 선보이며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은 바가 있었다. 남미 특유의 조직력과 기동력을 마음껏 뽐낸 경기였다. 대회 시작 전 크로아티아, 아이슬란드 등 유럽팀들을 꺾으며 프랑스전 대비 스파링도 끝마쳤다.

페루는 경기 초반부터 프랑스를 몰아붙였다. 그들은 프랑스의 약점이라 꼽히는 좌·우 윙백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오른쪽 윙어로 나선 카릴로가 에르난데스와의 매치업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페루의 공격을 이끌었다. 후반전에는 공격 숫자를 한 명 늘리며 또 다른 유형의 공격을 시도해 갔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미드필더인 요툰을 빼고 공격수 파르판을 투입했다. 중원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기보다는 빠르게 전방으로 공을 붙인 다음 게레로와 파르판의 결정력을 노리겠다는 가레카 감독의 의중이었다. 전반과 같이 측면 쪽에서 상대 수비를 벗겨내는 플레이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위험 지역에서의 슈팅 숫자를 늘려가며 상대 골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또한 페루는 역습 시 많은 선수들이 공격에 가담했다. 최전방 공격수와 게레로와 쉐도우 스트라이커 쿠에바는 물론, 플로레스와 카릴로가 빠르게 전방으로 올라서며 수적 우세를 쉽게 만들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양측 풀백인 트라우코와 아드빈쿨라까지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페루의 공격에 힘을 더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는 위험 부담이 컸다. 프랑스에도 그리즈만과 음바페 등 스피드에 강점을 보이는 공격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역습 시 속수무책으로 뒷공간을 노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루는 수비 전환도 빨랐다. 공격권이 상대에게 넘어가면 곧바로 선수들이 수비 진영을 갖추며 상대가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페루에게 아쉬웠던 단 한 가지는 역시 골 결정력이었다. 그들은 득점을 위해 90분 내내 분전했으나, 상대 골문을 여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 1차전에서도 페널티킥을 놓치면서 통한의 패배를 당했는데, 이번 경기에서도 충분히 득점을 성공할 수 있는 찬스가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전반 30분 게레로가 단 한 번의 터치로 움티티를 벗겨내면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나 요리스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했다.

후반 5분 아퀴뇨의 회심의 중거리 슈팅은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는 등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2연속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그친 페루는 승점을 따내지 못하면서 조별 예선 탈락이 확정됐다. 아쉽게 짐을 싸고 만 페루지만 그들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축구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1차전 부진 씻고 16강 진출 확정지은 '뢰블레'

프랑스는 전반 중반까지 허둥댔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좌·우 수비가 흔들리며 수비 전체가 밸런스를 잃었다. 수비가 안정되지 않으니 공격으로 쉽게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반 20분 전·후로 안정감을 찾았다. 프랑스가 진영을 정비하고 수비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던 데는 캉테의 공이 컸다. 소속팀에서도 지독하리만큼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으로 정평이 난 그는 이번 경기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십분 발휘했다. 

캉테의 헌신 덕분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의 공격력이 살아났다. 그리고 19살의 신예 공격수 음바페가 상승된 분위기에 방점을 찍었다. 전반 34분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지루의 슈팅을 손쉽게 처리하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경기 초반부터 번뜩이는 개인기와 드리블, 패스 등으로 환호성을 내지를 만한 플레이를 보여준 그는 이번 득점으로 트레제게가 가지고 있던 프랑스 최연소 월드컵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득점 장면에서 지루의 움직임도 칭찬할 만했다. 포그바가 중앙에서 공을 끊어 냈을 때 지루와 음바페가 서로 다른 루트로 뛰어 들어가며 상대 수비의 혼선을 가져온 것이 주효했다. 

득점 이후부터는 데샹 감독의 지략이 페루를 묶었다. 그는 상황마다 각기 다른 라인 컨트롤을 주문하며 페루의 공격에 맞서 적절한 수비 대응을 보여줬다. 그는 결코 허둥대지 않았다. 전반 초반 페루가 거세게 프랑스를 밀어붙였을 때도 조급한 볼 처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공격 시 앙투안 그리즈만이 자유롭게 움직이긴 했으나 원톱 올리비에 지루를 필두로 4-2-3-1 포메이션을 유지했고 수비 시에는 우측면 공격수 킬리앙 음바페가 내려앉으며 4-4-2를 유지했다.

페루가 파르판을 투입하며 4-4-2로 전형을 변경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라인을 위로 올려 페루의 공간을 더욱 좁게 만들었다. 지난 1차전 이후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이 나아질 수 있다"라며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한 데샹 감독이 이를 증명해냈다.

후반 막판 페루의 강공이 펼쳐졌으나, 프랑스는 음바페의 선제골을 잘 지켜내며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지난 1차전 호주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비하지 못한 프랑스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지난 1차전보다 향상된 경기력으로 승리를 따냈다. 물론 아직 숙제는 많다. 포그바와 마투이디, 페키르 등 공격적인 2선 미드필더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치르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20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뢰블레' 군단 프랑스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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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C조 프랑스 페루 경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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