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는 영화 <오션스 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션스>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영화가 젠더 스와프된 버전으로 상영된다고 했을 때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상영관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케이퍼 물과 여성 서사가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이 보였다.

케이퍼물은 기본적으로 '범죄'가 상징하는 사회 질서를 깨는 행위를 악으로 보지 않는다. 욕망의 실현 수단으로써 법을 어기는 것은 이 장르의 문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을 어기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고, 오히려 법이라는 사회망 안에 주인공을 포섭하려는 것이 주인공들에게 닥치는 위기라고 봤을 때 이 장르는 기존 사회의 규범, 질서에 맞서는 서사라고 볼 수 있겠다. 가부장적 사회만큼 '기존 사회', '규범', '질서'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오션스 8>은 남성 중심적 기존 사회에 맞서는 여성 서사임을 보여주면서, 그 배우, 캐릭터 간 케미만큼이나 훌륭한 장르 자체와의 케미를 보여줬다.

하지만, 영화 내의 아쉬운 점은 분명히 꽤 많이 존재했다. 미리 밝혀둔다, 나는 어찌 됐든 <오션스 8>을 응원하는 관객이고, 시리즈의 후속작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후속작을 위한 비판과 지지의 글이다.

'여성성' 재생산하는 여성 서사

 영화 <오션스8>의 스틸컷. 사기극을 주도하는 데비(샌드라 불럭)와 루(케이트 블란쳇)의 앙상블은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 중 하나다.

영화 <오션스8>의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오션스 8>은 여성 주인공 여덟 명을 주인공으로 내건 만큼, 그리고 여성 서사에 목말랐던 관객들의 기대를 받았던 만큼 여성주의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장 강력한 비판은, 사실 이 영화의 서사가 여성주의적으로 읽힌다기보다 '백래쉬', 혹은 안티-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해석된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배경인 멧 갈라나 극 중 강조되는 '드레스'가 그 예로 지적됐다. 물론 이에 관해 반박하는 의견도 있었다.

첫째는 이 영화가 정치적인 선언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하위 장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하기 위해서, 영화는 일종의 볼거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선언'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정치적인 맥락에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남성 중심의 '알탕 영화'를 보고 비판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드레스나 멧 갈라를 비롯하여 영화가 초점을 맞춘 '여성성'은 아쉬웠다. 데비 오션이 감옥에서 제일 먼저 나오자마자, 그녀의 도둑질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된 곳은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그녀는 이전에 구매한 물건을 환불하는 척 하고 능숙하게 물건들을 훔치는데, 이 과정에서 화면은 불필요할 정도로 전시된 색조 화장품을 모두 보여주는 카메라 워킹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격의 가석방 과정 이후, 거의 영화의 처음 시작이나 다름 없을 때에 이런 장면은 '굳이 여성 도둑이라는 점을 화장품과 백화점으로 보여줘야 하나?'하는 아쉬움을 자아낸다.

가장 큰 아쉬움은 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화제가 되는 데비의 대사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나를 위해서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아니다, 우린 미래의 도둑을 꿈꾸는 어린 소녀를 위해 도둑질을 한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대사는 분명 작지만 큰 정치적인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 대사를 뱉을 때, 데비 오션은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굳이 해당 대사와 함께 화장을 하는 데비 오션을 보여줘야 했었나. 이 대사는 구조적으로 다른 인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을 이용하여 외려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우리 영화가 이렇게 페미니즘을 신경쓰고 있답니다'하고 호소하는 듯한 말이었다.

데비 오션이라는 캐릭터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페미니스트로 그려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허나 '미래의 소녀들'에 대해 얘기하는, 분명 페미니즘적 맥락이 있는 대사에서 '여성성'으로 여성을 억압하던 화장을 하는 모습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대사를 할 때의 행동이 화장이 아니어도 됐기 때문이다. 굳이 화장을 하며 해당 대사를 읊는 장면은 최근 꾸밈 노동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는 한국의 관객으로선 더더욱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영화는 분명 여성들의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 받을 만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성 도둑'임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을 재현하는 데 그쳐버렸다. 이는 인물들의 성격에도 반영된다. 배우로 등장하는 다프네는 수많은 '여배우'에 대한 클리셰를 보여준다. 콧대 높고, 오만하며, 한편으로는 멍청하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답습한 캐릭터라는 의혹을 벗기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여배우가 알고 보니 모든 인물들의 얼굴을 기억했고 계획을 눈치챘다'는 설정은 전복적으로 보일 순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다프네의 심경 변화는 단박에 이해되지 않는다. 데비와 일당들은 목걸이를 훔치면서 자신을 용의자 선상에 올리게 한 인물들이다. 그녀가 갑자기 데비의 편에 서겠다고 하는는 것은 당최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모르겠다. 그녀 안에 어마무시한 자매애라도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 드는 이유는 자신은 외롭고, 이 도둑질이 재밌을 것 같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인종과 역할에 관한 아쉬움

 영화 <오션스 8>의 스틸컷. 각기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진 여성들의 협업이 돋보인 영화다.

영화 <오션스8>의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인종적인 아쉬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영화에서 백인 캐릭터들과 리한나의 캐릭터 나인 볼은 아주 멋졌다. 멋질 뿐 아니라 분량과 비중 또한 훌륭했다. 팀의 리더인 데비 오션, 그녀를 돕는 루, 사건의 핵심이던 다프네 클루거, 디자이너로서 또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로즈, 일종의 위장 취업을 하며 일을 진척 시키는 타미, 해커 나인 볼까지. 그들은 멧 갈라 이전, 멧 갈라 당일 모두 훌륭한 역할 분담을 보여줬다. 데비는 큰 그림을 짰고, 그에 따라 타미는 위장 취업으로 정보를 빼냈다. 복제를 할 수 있는 안경은 옵션이었다. 그걸 가지고 로즈는 까르티에에 가서 위태롭지만 목걸이를 복제해냈고, 나인 볼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해킹을 해냈다. 멧 갈라 이전부터 그들은 함께 계획을 짰다.

이는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머리에 각인되며 직접적인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콘스탄스와 아미타는 어떠한가. 솔직히 영화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비중이 적다. 콘스탄스는 서빙을 하고, 다프네의 목걸이를 직접 빼내기는 하지만 앞서 사건 이전부터 계획을 짜는 데에 도움이 됐던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해낸 업무가 적다. 아미타도 마찬가지다. 보석을 해체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가를 발휘하긴 하지만, 그 장면은 심지어 콘스탄스의 활약보다도 짧을 뿐더러 그녀 자체의 모습이라기보다 '빨리 보석을 해체해야 사건이 해결 될텐데' 하는 식으로 거의 유일한 스릴로 남는다.

갈라쇼에 참여할 셀럽들의 리스트를 보고 "So white"라 말하는 콘스탄스를 보고 이 영화가 인종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는 시장 페미니즘에 이어, 직접 레이시즘을 해결할 생각은 없지만 레이시즘을 말하는 것이 '잘 팔리기에' 수용하는 할리우드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이 정말 백인 중심주의의 할리우드에 신경을 썼더라면, 단순히 주연들 중 하나가 아닌 좀 더 비중 있는 캐릭터에 비-백인 배우를 캐스팅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아미타에 비해 콘스탄스는 비교적 입체적이고 기억에 남지만 그녀 특유의 코믹함은 이전 할리우드가 비-백인을 활용하던 방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는 흑인 남성 캐릭터를 유쾌하고 재밌는 캐릭터로 표현하는 데에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 강하게 작용하던 집단이다. 그 스테레오 타입이, 흑인 남성에서 동양인 여성 콘스탄스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은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또한 영화 내에서 인종 차별을 어느 정도 내재화 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가시지 않는다. 물론 전형적으로 대상화 되는 동양인 여성을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은 개중 반가운 소리지만, 애초에 이 서사에서는 그렇게 그려질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옹호는 거의 무효하다.

서사적인 단점

 영화 <오션스8>의 한 장면.

영화 <오션스8>의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인물들에 대한 반동 개념은 없지만 이야기 속 악역이 존재한다면 이는 클로드 베커일 것이다. 데비 오션의 전 애인이자, 데비를 감옥으로 보내버린 그는 다프네의 파트너였다는 점에서 용의자로 지목되고, 데비와 손 잡은 다프네에 의해 범인으로 검거 되기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악역마저 여성이라면 더 완벽한 여성 서사일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상징적으로 주인공 여성을 곤경에 빠뜨렸던 남성이 감옥에 간다는 것은 꽤나 '사이다'인 서사다.

하지만 그 남성이 감옥에 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제임스 코든은 당최 필요 이유를 알 수 없다. 영화 후반에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수사에 딱히 열정을 보이지도 않는 그는 존재의 의의를 궁금하게 한다. 그가 범인을 클로드로 잡는 과정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용의자 중 한명이 보낸 문자를 받고, 바로 범인임을 확신하는 것은 데비와 손을 잡은 건지, 아니면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고 목걸이의 행방을 찾으려고 한 것인지, 뭐가 됐든 수상쩍다.

만약 데비와 손을 잡았다고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제임스 코든의 캐릭터는 데비의 일행들과 같이 여성이 연기하는 게 더 좋을 뻔 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물 또한 데비의 프로젝트의 일환이 의도치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 인물이었다면 '사실 이 인물이 마지막 멤버다, 이로 인해 그들의 도둑질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라고 또 하나의 연대적 의미 부여가 됐을 테니까.

또한 하이스트 필름, 혹은 케이퍼 장르는 사회적 일탈인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에 몰입하여 그들을 잡으려는 자들에게 그들이 체포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 속에서 관객들이 느낄 스릴로 사랑 받는 장르이다. 이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위기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위기와 절정이랄 것은 없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완벽한 계획 속에 진행된다. 별 탈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팀플레이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 다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야기 속 위기는 별로 등장하지도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너무 쉽게 해결된다. 처음 목걸이가 자석으로만 열린다는 것은 그들 무리의 동생을 통해서, 멧 갈라에서의 도둑질은 완벽한 계획을 통해서,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다프네가 '심심하고 재미 있어 보여서', 그리고 클로드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수사에 별 관심 없는 제임스 코든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관객들의 머리에는 "잡히면 어떡하지?"보다 "잡히지 않고 잘 해결되겠지"라는 묘한 안도감이 앞선다. 대적해야 할 인물이 없는 것도 한 몫 했을지 모른다. 클로드는 데비에게는 악역이지만, 그들이 도둑질을 위해 굳이 맞서야 할 인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케이퍼 장르를 기대한 관객과 여성 서사를 기대한, (혹은 두가지 모두를 기대한) 관객 모두에게 아쉬운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서사가 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는다는 점은 인상 깊다. 그만큼 여성 관객들이 여성 서사에 목이 말랐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조금 떨어지는 시나리오의 영화일지라도 여성들이 이루어진 세계는 여성 관객이 그만큼 몰입하고 이입하여 관람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인종적인 아쉬움을 제외하고, <오션스 8>의 단점들은 사실 안정성을 추구하다가 외려 프레임에 갇힌 결과물이다. 마치 '걸 파워'('걸 파워'가 시장 페미니즘적인 맥락을 지닌다는 비판은 우선 차치한다)를 보여줘야지 하고 완벽하게 모든 일을 뚝딱 처리해내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의 줄임말)'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것보단, 여성들의 팀워크를 보여주는 것은 인상 깊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완벽하게, 우연히, 쉽게 해결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오션스> 시리즈는 도둑질이라는 목표 하에 팀워크를 보여주는 시리즈라지만) 때로는 서로 싸워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문제 없이 완벽한 사건 해결은 '여자들은 공격적이지 않아'라는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일일지 모른다. 여성들끼리 뭉쳐도 팀워크에 균열이 한번쯤 생길 수 있다. 여자가 싸우면서 성장할 수도 있지, 그 균열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서사에서의 것을 답습한 꼴이 아니면 된다. 장르 특성상의 해피 엔딩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여자들의 힘이고 '걸 파워'다.

<고스트 버스터즈> <스타워즈>가 리메이크 버전에서 젠더 스와프를 시도하고 오히려 비판을 받았다. 혹자는 "페미니즘이 본 시리즈의 재미를 망쳤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킨 것은 안티 페미니즘과, 가시화되지 못했던 여성 서사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성별 등 캐릭터 설정이 바뀌면 '정치적 올바름이 이야기를 망쳤다', '페미니즘이 영화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는데 시장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가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역으로, 여태껏 쭈욱 남성 중심적 시각에 파묻혀 살던 사람이 시장의 수요에 응답하여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어찌 쉽겠는가. 이 영화가 가지는 한계, 스토리의 아쉬움이나 여성주의적 아쉬움, 인종적 아쉬움 그 모두 오히려 이전 세대에 쌓인 커다란 문화적 적폐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에 가깝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쉬움이 더 많았던 영화, 심층적으로 진입하면 더 비판할 점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더 소비하려고 한다. 외려 비판점이 많기에 더욱 소비를 권장한다. 비록 한계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범죄자를 꿈꾸는 소녀들을 위한 거야"라는 문장이 가지는 힘처럼, 한계적일 지라도 이 영화가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범죄자를 꿈꾼 소녀들의 멋진 서사가 훗날 나올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그 서사들이 더 나은 서사가 되어 있기 위해서, 우리는 비판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 일단은 볼 이유가 충분하다.

 영화 <오션스 8> 포스터

영화 <오션스 8>의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오션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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