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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배달된 때는 5월 초순,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이자 체육대회와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성적 처리와 행사 준비에 바쁜 '현재학교' 교사인 나는 택배 포장도 뜯지 못한 채 책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

행사가 끝나자 미뤄뒀던 수행평가 과제물 채점이 기다리고 있었고, 행사 이후에 느슨해진 교실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학생 면담을 비롯한 몇 가지 방안들을 강구해야 했다. '현재학교'의 일상은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현재학교'의 교사는 늘 허둥지둥 따라가기 바빴다.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6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제야 서랍 속에 넣어 둔 책이 생각나 포장을 뜯었다. 책의 제목은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나름 경력과 연륜 좀 있다고 생각하는 '현재학교'의 교사는 뜨끔 한다.

하지만 좀 '있어 보이는' 제목에 압도되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일단 책의 내용을 짐작해 보기 위해 서문을 펼쳐 드니, 저자인 유동걸 교사 특유의 '영화를 텍스트로 삼는 비유적 어법'이 눈길을 끈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 한결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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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랑스 영화 두 편을 소개하며 영화 속 풍경이 미래 교육의 양면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고 말한다. 한 영화는 고전문학을 텍스트로 수업하며 전통과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교사와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을 넘나들며 삶의 그림을 그리는 학생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고, 또 다른 영화는 학생들을 계몽하려는 시도 대신 진리의 가치와 권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을 틀에 가두지 않는 수업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실마리로 삼아 미래 교육에 대한 유 교사의 고민을 풀어 놓은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이미 다가온 미래의 상을 염두에 두고, 현실의 변화를 갈망하며 쓴" 것이라 한다.

'인공지능 시대'란 말은 시대의 흐름에 뒤지고 싶지 않다는 조바심과 솔깃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현재학교'의 일과만으로도 고민이 차고 넘치는 '현재학교'의 교사에게 '미래학교'란 뜬구름 잡는 격이다. 게다가 '무지한 스승'이라니 어쩌란 말인지 당황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미래의 학교는 학교의 미래를 바꿀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조희연 교육감의 추천사를 보니 어쩐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나는 오늘을 사는 '현재학교'의 교사지만,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은 내일을 내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미래학교'. 유 교사의 미래학교론은 근대 국가의 성립과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산업화와 대량 생산 체제에 적합한 노동력, 표준화된 인재를 생산하기 위해 발달한 근대 학교는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

세계는 지금, 증기기관 발명과 기계화(1차), 대량 생산과 자동화(2차), 정보 기술과 산업의 결합(3차)에 이어,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어 온라인 정보 통신 기술이 오프라인 산업 현장에 적용되면서 일어나는 일대 혁신이 예고되고 있다. 이를 가리켜 제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다. '지능'과 '연결'을 키워드로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정차, 3D프린팅, 나노기술 등이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산업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새로운 산업 분야의 발흥이 가져올 세계 경제의 변화, 특히 일자리의 지각 변동에 대한 우려는 미래 사회의 변화가 언제나 달가운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학교는 준비되어 있는가? '미래학교'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일 뿐이라는 데 있다. 학교는 변하지 않고 있으며, 이미 2007년에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앨빈 토플러가 지적했음을 유 교사가 인용할 때, 절박한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유 교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는 '창의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창의성은 한 개인의 고독한 노력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과 소통과 협동심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기반으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4차 산업, 인공지능 시대의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라는 유 교사의 고민은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구성 요소가 다른 요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다양하고 유기적인 협동 관계를 형성한다는 '복잡계' 이론에서 그 답을 찾는다.

복잡계 체계는 비선형성, 비가역성, 복합적 상호작용, 불확실성, 확률론, 우연성 등의 지배를 받는 체계이다. 1984년 처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카오스(혼돈), 프랙탈(형상), 퍼지(모호), 카타스트로피(파국) 이론 등을 수단으로 삼아,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연과학 분야를 넘어서 사회과학 분야로까지 그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

학습 체계로서의 복잡계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간다. 오래된 학교의 관습을 깨는 질문을 던지고, 질문이 있는 교실에서 스스로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성찰한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배움의 주인이 되어 다양성과 잉여성을 발휘하여 스스로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가고 구성원들은 공유지(共有知)를 통해 참된 지식에 도달한다.

절대 권력과 독점의 지배 속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의 민주적인 자유의지가 침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학내 민주주의 실현이 보장되어야 한다.

2부는 유 교사의 교사론인 '무지한 스승 - 되기'. '<쿵푸 팬더 3>을 통해서 바라본 스승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복잡계' 이론의 복잡성으로 머리가 쥐가 날 것 같은 독자라면 책을 덮어 버리기 전에 2부를 먼저 읽는 편이 낫다. "스승더러 무지해야 한다니 말이 돼?" 하는 문제의식을 안고 쿵푸 팬더와 함께 뒹굴다 보면 어느새 "역시 스승은 무지한 게 낫겠어!" 하고 수긍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사라는 말이나 선생이라는 말보다 스승이라는 전통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교사라는 말은 특정한 직업군을 가리키는 말이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뜻하는 선생은 대개 문자나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학식 있는 사람을 가리키므로 의미가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스승'은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하며,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나 삶의 지혜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것을 의미하니, 참된 교육은 이를 말함이 아니겠는가.

유 교사 역시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이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내고 길이 되는 존재', '말로써 설명하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는 존재, 전인격적 존재로서의 삶을 실현하는 이'가 스승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교직에 종사하는 이들 중 이런 스승이 얼마나 될까. 안정된 직업으로 각광받는 현재의 교직은 대개 '교사'에 해당할 것이고, 개중에 천직이나 사명감을 운위하는 교사라면 '선생' 정도로 대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유 교사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어 버린다. '스승'을 찾기 힘든 오늘날의 교사들을 향해 '참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하는 대신 '스승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가 모두의 스승인 세계'가 저자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의 세계란다.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의 저서 <무지한 스승>에 소개된 조제프 자코토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있다."

유 교사의 문제의식은 '동일성'의 교육 그 자체에 있다. 어떤 스승이든 동일성을 가르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남들과 다른 자기 자신, 즉 '차이'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차이야말로 '고유성'이고 '다양성'이며 '잉여성'이고 '독립성'이다." 차이를 발견하게 하는 교육은 개성 넘치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게 하는 보편적 가르침이자 맞춤형 교육이다. 이렇게 해서 유 교사의 교사론은 질 들뢰즈의 저서 <차이와 반복>의 세계로 연결된다.

그리고 묻는다. 이성과 계몽을 찬양한 근대의 교육은 무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앎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과연 진정한 앎이란 무엇인가? 유 교사는 앎의 힘을 강조한 근대와 달리 모름을 강조한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한 칸트에서 참된 교육의 모습을 본다. 모름을 인정했을 때, 혼자 만들어 가르치지 않고 서로가 의지로 배우는 집단 공유 지식이 탄생한다.

유 교사의 미래학교론이 '복잡계' 이론을 끌어오듯, 교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 교사의 무지한 스승론은 들뢰즈와 랑시에르에서 그 답을 찾는다. 이 책이 지금까지 나온 유 교사의 저서들 중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론적 바탕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 크다.

더구나 토론의 전사를 자임하던 저자가 스스로 30년 교직 생활과 교육 철학의 총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교육 전반에 대한 심도 깊고 종합적인 고민을 담아내어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이 책을 가볍게 읽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주로 영화를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전달해 온 유 교사의 글쓰기 방법이 때로 복잡한 주제의 독해에 방해가 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범상치 않다는 점은 명확하다. 내가 '현재학교'의 일과에 매몰되어 있을 때 '미래학교'는 성큼 우리의 앞으로 다가와 있고, 내가 월급쟁이 교사로서 안주할 때 우리의 교육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이 책은 정리된 해답이기보다는, 생각의 가지들을 뻗어나가게 하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어 줄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유동걸 지음, 한결하늘(2018)


태그:#복잡계, #인공지능시대 교육, #무지한 스승, #유동걸,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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