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12일 당초 예정대로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예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은 다음 기자들과 만나 "오는 12일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것이다. (회담은)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줄곧 적대적이었던 북미 양국 정상의 만남이 마침내 성사된 것이다.

회담 성사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한반도에 사는,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으로서 한편으로는 마음 졸였지만, 마침내 회담이 성사돼 기쁘기 그지없다. 이 순간은 한반도 역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정상회담과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까지 지켜보면서 문득 추억의 팝송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빌리 조엘이 1989년 발표한 곡 'We didn't start the fire'인데, 5월 말 북미 양국이 치열한 물밑 줄다리기를 지켜보며 줄곧 이 곡을 들었다.

팝송으로 역사 공부를? 

 빌리 조엘이 1989년 발표한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 커버.

빌리 조엘이 1989년 발표한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 커버. ⓒ 컬림비아 레코드


먼저 이 곡이 어떤 곡인지부터 설명해야겠다. 빌리 조엘, 우리에겐 참 친숙한 이름이다. 빌리 조엘은 'Piano Man', 'Just the way you are', 'Uptown Girl' 등 주옥같은 록 발라드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Piano Man'은 불후의 명곡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소개할 곡 'We didn't Start the Fire'은 다른 작품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 곡은 특별한 가사는 없다. 그저 해리 S. 트루먼에서 시작해 1989년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주절주절' 내뱉을 뿐이다. 얼른 귀에 들어오는 노랫말을 아래 적는다.

해리 S. 트루만 
아이히만 
로이 콘 
호밀 밭의 파수꾼 
존 F. 케네디 
브리짓 바르도 
비틀즈 
워터게이트 
미키 맨틀 
저우언라이 
아야툴라 호메이니 
나세르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과 피델 카스트로 
중국 천안문 사태
엘비스 프레슬리
우드 스탁 페스티벌

눈 밝은 이들은 이 노랫말이 그야말로 격동으로 점철됐던 20세기 세계사를 상징하는 열쇳말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물론 열쇳말이 대부분 미국 중심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 중심이라고 해도 이 곡의 노랫말만 잘 공부한다면 20세기 역사는 한눈에 꿰뚫을 수 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을 맡은 전범이었고, 로이 콘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몰고 왔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변호사였다. 우리로 치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공안검사쯤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 곡은 빌리 조엘이 1989년 발표한 11집 앨범 'Strom Front'에 수록돼 있다. 빌리 조엘은 앨범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들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49년부터 1989년까지의 주요 역사의 열쇳말을 나열해 곡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빌리 조엘이 태어나 생을 보낸 시기는 냉전과 겹친다. 이런 이유로 이 곡 맨 처음에 등장하는 키워드가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며 냉전을 선언했던 해리 S. 트루먼이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식 뮤직비디오의 배경도 예사롭지 않다. 곡 중반, 빌리 조엘은 AP통신 에디 애덤스가 베트남에서 찍은 즉결 처형 장면 사진을 배경으로 노래한다. 이 사진은 베트남 장교가 베트콩 측 고위 간부를 처형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인데, 미국에 전해지면서 반전운동의 기폭제가 됐었다.

지금 시즌2를 만든다면?

 빌리 조엘은 'We didn't start the fire'에서 20세기 키워드를 내뱉는다. 공식 뮤직비디오 배경은 AP통신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가 베트남에서 찍은 즉결 처형 장면. 이 사진은 미국에서 반전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었다.

빌리 조엘은 'We didn't start the fire'에서 20세기 키워드를 내뱉는다. 공식 뮤직비디오 배경은 AP통신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가 베트남에서 찍은 즉결 처형 장면. 이 사진은 미국에서 반전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었다. ⓒ 유투브


이제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곡 'We didn't start the fire'가 떠올랐고, 남북·북미 정상회담 국면에서 이 곡을 애청하고 있는지 말할 차례다.

이 곡엔 한반도 상황과 관련된 열쇳말이 네 번 나온다. 나오는 차례대로 적으면 남·북한, 판문점, 이승만 등이다. 한반도 분단은 냉전의 산물이고 판문점은 이 아픈 역사를 지닌 역사적 장소다. 빌리 조엘이 판문점이라고 한국어 낱말을 정확히 발음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승만의 경우는 아주 특별하다. 미국은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친미·기독교적 색채가 강했던 이승만을 주시했다. 그래서 이 곡에 이승만이 포함된 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곡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빌리 조엘이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이 곡을 구상했다면 어떤 열쇳말이 들어갈까? 아니, 빌리 조엘이 지금 'We didn't start the fire' 시즌2를 발표한다면 어떤 열쇳말들이 들어갈까?

얼른 떠오르는 열쇳말은 이렇다.

베를린 장벽 
9.11테러와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조지 W. 부시 
이츠하크 라빈 
클린턴 섹스 스캔들
월가 금융위기 
스티븐 커리 
이언 커쇼 
무아마르 카다피 
프란치스코 교황 
마크 저커버그 
이슬람국가

한반도 관련 열쇳말도 넣어야겠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싱가포르, 트럼프 대통령 등을 말이다.

이 곡 'We didn't start the fire'는 중간중간 이런 후렴구가 등장한다.

"세계가 격변할 때 불꽃이 일었지요"
It was always burning, since the world's been turning

분명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격변하고 있고, 한반도엔 불꽃이 튀는 양상이다. 이 역사적 격변기에 한국인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트럼프 대통령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이 곡 'We didn't start the fire'의 노랫말이 귀에 와 닿는다.


빌리 조엘 트럼프 대통령 에디 애덤스 로이 콘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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