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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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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6월 1일 오후 6시]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사건으로 법원이 휘청거리고 있다. 마침내 대법원장도 사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31일 "국민 여러분께 사법행정권 남용이 자행된 시기에 법원에 몸담은 한 명의 법관으로서 참회하고, 사법부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이번 조사결과를 사법부가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입법, 행정, 사법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권력분립의 원칙을 망각한 법원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법원행정처가 지속적으로, 주도적으로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사법부가 특정 사안이나 특정 인물로 사법불신과 지탄을 받아온 사례와는 급이 다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를 풀어나갈 중요한 쟁점 몇 가지에 대해 전망해 본다.

[쟁점 ①] 사법농단 관여자 징계 넘어 형사처벌 가능할까?

사법농단 사건의 가시적인 해결책은 두 말 할 것 없이 인적 청산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관련자의 징계처분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을 비롯한 관여자들이 대부분 구속기소돼 중형을 선고받거나 아직 재판 중인 선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법원의 기류는, 초기엔 현직 인사들을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분위기가 강했으나 점차 형사처벌 쪽으로 기울어가는 추세다. 일선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법관블랙리스트' 조사결과를 발표했던 공식기구인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별조사단)은 처음엔 형사처벌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 징계절차와 재발방지 정도로 수습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거센 비난여론에 직면하자 특별조사단은 28일 "구체적인 논거에 기초한 법원 구성원들의 좋은 의견에 귀 기울여 적극적인 형사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되면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부장판사도 28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상응하는 조치 없이는 더 이상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며 엄정한 조치를 촉구했다.

법원 직원 1만여 명이 가입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30일 3453명의 법원 직원 연서명을 받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대법원도 법원 안팎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달 31일 대법원장은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각계의 의견을 종합하여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형사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차성안 판사는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형사고발은)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 법에 따라 조치할 일"이라며 "대법원장이든 법원행정처장이든 고발하여야 할 의무를 지는 공무원"이라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234조 2항)에는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형사상 소추와 조사가 불가피해져 가고 있다.

[쟁점 ②] 사법농단 수사 대상자는 누구...양승태 대법원장 조사하나?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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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징계처분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있다. 핵심인사들이 대부분이 퇴직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이들은 당시 법원행정처에 심의관 등으로 문건을 작성했던 판사들이 대부분이다. 실무자에 불과한 그들만을 대상으로는 인적청산도 진상규명도 어렵다. 더구나 현직 법관은 징계를 하더라도 파면, 해임 등으로 신분을 박탈할 수도 없다.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사법농단 문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2015년 8월~2017년 3월)이다. 그는 2012년 8월부터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한, 법원행정처의 실세였다. 임 전 차장의 기획조정실장 후임(2015년 8월~2017년 11월 근무)이었던 이민걸 고등부장 판사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했던 권순일 대법관, 강형주 변호사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특별조사단은 임종헌, 이민걸 2명 외에는 '윗선'에 대해 직접 조사하지 못했다. 강제조사 권한 없는 조사단의 한계였다.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박병대, 고영한, 차한성 전 대법관 등에 대해서 수사가 필요하다. 판사 뒷조사, 재판거래 등의 문건 작성, 청와대와의 부적절한 접촉에 그들이 관여했는지, 또한 대법원장이 지시했는지 여부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모든 사태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조사단의 대면조사도 거부한 채 침묵을 지켜왔다. 1일 오후 마지못해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재판거래'와 '판사 뒷조사' 등 의혹 일체를 부인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문건의 내옹도, 작성 지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때 대법원의 수장이었던 그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도 받아야 한다. 국정책임자인 대통령도 직무상 과오가 있으면 탄핵되고 감옥에 가는 마당에 대법원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일각에서는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해 형법상 직권남용죄, 증거인멸,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의 적용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판사들과 노조 등 법원내부 구성원 다수의 바람대로 대법원의 형사고발 등 가시적인 조치가 있을지 주목된다.

[쟁점 ③] 청와대와 '재판거래' 사건, 재심 가능할까?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2006년 해고)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양승태 구속' 촉구 대법정 농성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2006년 해고)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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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분노한 KTX 승무원들이 대법정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만나 진상규명과 직권재심을 촉구했다.

이들뿐 아니다.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쌍용차 노동자, 유신헌법 긴급조치 피해자, 내란음모 이석기 전 의원 등 재판거래에 언급된 당사자들도 분노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재심은 가능할까. 현행법과 판례로 볼 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심이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판결절차 또는 소송자료에 중대한 흠이 있을 때 다시 재판을 해서 바로잡는 절차이다. 법률에서는 재심의 절차와 사유를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단순하게 '재판이 잘못됐다'는 정도로는 재심 재판이 어렵다.

먼저, 민사재판에서는 재심 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판결한 법원 구성의 위법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법관의 관여 ▲판결의 증거로 된 문서 등의 위조, 변조 ▲증인의 위증 ▲법관의 직무상의 범죄 등이다. 또한 재심사유를 안 날로부터 30일 안에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재심소장을 접수해야 한다. 설사 재판에 하자가 있더라도 법원에서 직권으로 판결을 시정하는 절차는 없다.

형사재판은 더욱 엄격하다. 재심사유는 ▲판결의 증거로 된 문서가 확정판결로 위조, 변조로 증명된 때 ▲증언, 감정 등이 확정판결로 허위로 증명된 때, ▲유죄증거로 인용된 재판이 확정판결로 변경된 때 ▲판결에 관여한 법관, 검사 등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등이다. 
  
따라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거래 시도만으로는 그 판결이 재심대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이 위법한 재판을 했다는 취지의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겠다. 

[쟁점 ④] 법원행정처 개편, 추가 문건공개 가능할까?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식이 열렸다.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식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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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을 담당하고 재판을 지원하는 부서일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곳에 속한 판사들은 일선 판사 위에 군림해오고 때로는 대법원장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상고법원이나 법관 증원 등 대법원장의 중점 사업을 위해서 국회나 정치권에 로비를 해왔던 것도 그들이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처 차장-실장-심의관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상명하복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바로 법원행정처였다.

독립을 생명으로 여기는 판사들이 이 조직에서 관료로 변해갔다. 그곳은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역설적이게도 일선 판사들에겐 선망의 자리이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완전히 분리 ▲법원행정처 청사 이전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사법행정 담당자가 사법행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봉쇄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과연 가시적인 조직개편의 성과가 나올지 주목해보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의 추가공개도 관심사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1일 판사들의 투표를 거쳐 조사보고서에 등장하는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을 모두 공개할 것을 법원행정처에 요구하기로 했다.

공개되지 않은 문건 중에는 ▲VIP 면담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 전략 ▲문제법관 시그널링 및 감독방안 ▲세월호사건 관련 적정 관할법원 및 재판부 배당방안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조선일보 첩보보고 등 제목만으로도 부적절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

이 내용이 적나라하게 공개될 경우 또다시 파장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파기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도 복구해서 위법사항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법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법원은 지금 사상초유의 위기 상황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이 양승태 대법원과 결별하기 위해서는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관련자에 대한 수사와 형사처벌, 투명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 대책만이 법원이 살 길이다. 대법원에겐 사법신뢰 회복을 위한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다.  



태그:#양승태, #사법농단, #김명수, #법관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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