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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관계로 사람을 처음 만날 때마다 어색하다. 명함을 건네며 서로 '000입니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비즈니스에 정석 인사법인데. '안호덕입니다' 이게 잘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움츠리게 되고 우물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기껏 내 소개가 끝났는데 상대편에서 알아듣지 못해서 되물어 올 때면 목소리는 오히려 더 기어 들어간다. 이게 다, 돌림자와 음양오행을 맞춰 작명을 했다는 할아버지 때문이다. 성(姓)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름이 '호덕'이 뭔가? 호떡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내 별명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호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처음으로 불리는 별명이었다. 조금 진화하면 호빵, 찐빵이 되었고 나중에는 만두로까지 불렸다.

이름 바꿔 달라는 단식 투쟁

이름에 호(浩)자가 집안의 돌림자다. 덕(德)은 유학에서 '선하려는 인간의 의지' 정도로 풀이된다. 착한 마음(德)을 넓게(浩)하라는 이름 풀이로만 보면 나쁠 것 하나 없다. 한학자였던 할아버지가 며칠을 고심 끝에 지은 이름. 놀림의 대상이 되리라는 건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니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이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었다. 학교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다.

'파업'을 했다. 이름을 바꿔달라고(?). 중학교 때 법원을 통하면 개명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아버지에게는 무서워 말도 못하고 어머니에게 다짜고짜 이름만 바꿔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자다가 남의 다리 끍냐'는 식으로 애써 들어 주지도 않았다. 단식에 돌입했다. 한참 먹성이 왕성할 나이에 밥을 굶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김치를 와작와작 먹는 동생이 밉기도 했다. 평소 보지 못한 반찬이 올라올 때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밥상머리에 들어앉고 싶었다.

"'호덕'이라는 이름이 어떻다고 그라노? 놀리는 놈들이 나쁜 놈이지. 족보에 다 올라간 이름을 어떻게 바꾼단 말인고..."

단식을 못 본 척하던 어머니가 달래기 시작했다. 놀리는 친구들이 나쁜 것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러는 줄 알면 큰일 난다는 협박(?)도 했다. 그러나 하루도 안 돼 단식 투정(?)을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며칠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나섰다. '너 왜 밥 안 먹노?' 낮게 깔린 목소리는 공포였다. 무서웠고 서러웠다. 무작정 울었다. 아버지는 회초리들 들었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머리카락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라도 배운 아버지에게 개명은 턱도 없는 요구였던 셈이다. 처절한 단식은 끝이 났고 그날 눈물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달걀부침 하나를 밥 위에 올려 주셨다.

어머니 말씀처럼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의 놀림은 줄어들었다. 옛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별명을 불러도 그 친구 별명으로 받아 치면서 웃을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이름을 둘러싼 움츠림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명함을 받아든 상대방이 '이름이 좀 특이하시네요. 어릴 때 놀림 좀 받으셨겠네요'라고 농담처럼 말하면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늦깎이 결혼을 했다. 한여름 첫 아이가 태어났다. 공주님이었고 양쪽 집안의 첫 손주였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우리 부부보다 더 기뻐했다.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아내와 머리를 맞댖다. 여자 아이라도 집안 돌림자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 지론이었다. 돌림자는 이름 뒷 글자가 구슬 주(珠)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옥편을 펼쳐가며 며칠을 고민해서 한 글자를 골랐다. 총명할 민(慜)자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민주라고 지었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엄마 아빠의 뜻이었다.

"가가(그 아이가) 왜 민주고? 민주데기가 뭐고. 뭔 이름을 그래 지었노?"

아이 이름을 민주로 지었다고 하자 어머니의 첫 반응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민주가 어째서요? 부르기 좋고 뜻도 좋구만요' 혹시라도 아들, 며느리가 대학교 때 데모한 티내느라 애 이름을 '민주(民主)라 지었냐는 타박인 줄 알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자 풀이까지 해가며 설명해 드렸지만, 어머니는 애가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가가 왜 민주고? 놀림 받으니 바꿔라 

 늦깎이 결혼을 했다. 한여름 첫 아이가 태어났다.
 늦깎이 결혼을 했다. 한여름 첫 아이가 태어났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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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민주'는 경상도에서 행동이 느린 사람. 바보 멍청이 등 좋지 않은 뜻으로 쓰였던 방언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고어이기도 하다. 어머니 생각에서는 금지옥엽 같은 첫 손주를 '바보' '멍청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니 펄쩍 뛸 만도 했다. 지금은 그런 뜻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놀림감이 되는 일도 없다고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며칠 뒤, 아이의 이름을 전해들은 장모님 반응도 똑같았다. 사돈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우리 부부와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결혼하기까지 어머니와 장모님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와 교회 권사인 장모님, 조금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혼 과정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결혼은 당연히 교회에서 목사님 축복 속에 치러야 한다는 것이 장모님 주장이었고 어머니는 그 좋은 날 왜 교회에 가냐고 충돌했다. 예식장에서도 예식 순서를 놓고 양쪽 집안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사회를 맡은 친구가 못하겠다는 일도 있었다. 이런 두 분이 아이의 이름을 놓고 공동전선을 펴다니. 우리 부부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애 이름은 엄마 아빠가 짓습니다. 민주라는 나쁜 뜻은 요사이는 쓰이지도 않는 말이고, 그래서 놀림감이 될 리도 없습니다. 이 이름으로 출생신고 하겠으니 어머니 장모님 이해해 주세요'

우리 부부의 완강한 주장에 어머니는 '네 자식이 네가 알아서 해라'고 물러 나셨고, 장모님도 '자꾸 불러보니 나쁘지 않네'라며 수긍하셨다. 양쪽 집안의 첫 손주 이름 짓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벌써 19년 전에 일이다. 민주는 크면서 놀림감이 되는 일도 없었고, 할머니,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손자 자랑을 늘어놓을 만큼 똑 부러지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했던가? '호덕.' 나도 이제 내 이름과 조금은 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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